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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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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협찬


환상의 유니콘 같던 '꿀잠'을 선물 받았습니다

 

 꿀잠을 구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내가 기억하는 날 중에 정말 '잘 잤다'라고 느꼈던 날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잠을 잔다"라고 하면, 잠들고 싶은데 들지 못해 새벽 내내 울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이런 나에게 '꿀잠'이란 환상의 유니콘 같은 단어이다.

 그런데 이런 꿀잠을 선물하는 가게가 있다는 글을 인스타에서 보았다. 실제로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갔을 테지만, 책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에서나마 꿀잠을 얻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

 첫 시작은 매력적이고 멋있는 부엉이 '자자'가 마당을 쓸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게 내부가 묘사되는데, 이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달빛 시장에서 사 온 부드러운 양탄자 옆으로 벽난로가 타닥이는 소리를 낸다. 그 옆에는 오슬로 전용 안락의자와 손님을 위한 소파가 놓여 있어 편안한 느낌을 더한다." (11)


 '달빛 시장'이라니, 듣기만 해도 은빛 물결이 파도치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다. 도입부터 보여주는 이 가게는 현실에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이미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 있었다. 우드 브라운 톤의 목재로 된 가게 안, 한쪽 벽면에서는 벽난로가 따스하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주인 '오슬로'는 오픈형 주방에서 사과파이나 브라우니를 굽다가 내게 다정히 인사를 건네고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자자'가 꿀차를 타 앞발로 조심스럽게 건네줄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가게의 포근한 분위기만큼이나,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따뜻하다.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한 명 한 명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재미가 있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희수'의 이야기는 유독 깊은 공감과 함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동료들이 현실을 위해 꿈을 포기할 때도 희수는 꿋꿋이 배우의 길을 지켜온 인물이다. 하지만 서른이 된 희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날카롭기만 하다. 사람들은 100세 시대라며 서른은 젊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괄목할 만한 성과나 안정된 가정을 기대하곤 한다. 배우로서 성공하지도 벌이가 일정치도 않은 희수는 바로 그 이중적인 잣대 한가운데 놓여 있다. 어른들은 결혼과 돈 얘기를 묻고 친구들마저 '우리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데 아르바이트나 하는 걸 보니 알만하다'라며 그녀에 관한 생각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희수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은 아르바이트로 했던 사진 일에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도 재미를 느꼈다는 사실이다. 오랜 꿈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오디션과 새롭게 발견한 재능 사이에서 그녀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가게 주인 '오슬로'는 섣불리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저 희수의 선택을 응원하며 '용기를 주는 잠옷'을 건넬 뿐이다.


 희수의 모습에 나 자신이 겹쳐 보였다.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탓에 사회가 말하는 '서른의 삶'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번듯한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실패자처럼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멈출 생각도 남이 만든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출 생각도 없다. 희수가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는 모르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차라리 모든 길을 다 겪어보고 후회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이 들었다.

 작품에서는 희수 외에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잠들고 싶지 않은 아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희수의 고민에 깊이 공감했지만 다른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내가 잊고 있던 또 다른 감정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이처럼 책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잠 못 드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비춰내고 있다.


 만약 여러 걱정과 고민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면, 이 책이 마법 같은 위로와 다정한 응원을 선물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당신의 밤을 지켜주겠다고 속삭여주는 다정한 책이다. 이 책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내 마음에게 포근한 꿀잠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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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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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다이빙, 고카트, 사격, 그리고 연극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인생들이 아직 한참 남아 있다.–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치듯 넘기다가,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도무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이라니. ‘사교 클럽이라는 단어도 흥미로웠지만, “웬만해선 죽을 수 없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은퇴한 첩보 요원이 나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온갖 불운을 피해 가는 행운의 주인공일까?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내가 상상한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한국이 아닌 외국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엔 노인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삶을 품은 구체적인 인물로 변화해 간다. 어디선가 마주쳤을 법한 얼굴이지만, 동시에 누구도 닮지 않은 사람들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등장한다가 아니라 등장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만델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인 사교 클럽이다. 사교 클럽이 열린 첫날에 인물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이 이야기는 차를 마시고 빙고 게임을 하고 뜨개질을 하는 다정한 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런 불쾌하고 상투적인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클럽의 운영자인 리디아는 처음에 전형적인 교양 활동을 기대했지만, 모인 이들은 그녀의 상상을 아주 시원하게 깨버린다. “무슨 활동을 해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스카이다이빙, 고카트 레이싱, 수중 발레, 사격 연습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노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생기 넘치는 대답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지 못할 이유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 안에는 여전히 청소년, 청년, 중년의 자신이 남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 ‘노인에게는 낡은 시간만 있을 뿐이야. 모두 지나간 시간이겠지.’ 이 이야기를 읽으면 그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이었는지 알게 된다. 낡은 시간이라니! 우리는 모두 흐르는 시간 위에 존재하고 있다. 아주 공평하게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대프니라는 인물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녀는 요즘 젊은이들은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는다고 말하며, 자신은 젊었을 적 도서관에서 마이크로피시를 뒤지고, 정보원을 포섭하고, 열차 안에서도 정보를 얻기 위해 애썼다고 회고한다. 읽기 전 떠올렸던 은퇴한 첩보 요원의 이미지가 겹치며 대프니가 더욱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대프니는 사람들 속에 섞이기 위해 서툴게나마 계속 노력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흐르면서 점점 마음을 여는 방법을 알게 된다.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고 또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변해간다. 이 변화는 성장이란 것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

우리는 흔히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지만,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까지 그렇게 모순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청소년 미혼부인 지기의 이야기도 내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지기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겨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아이였다. 그러나 파티 날,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는 그 책임을 떠안고, 아이 케일리를 홀로 키운다. 반면 아이의 친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복귀하고 친구들과 웃으며 지내며 SNS에 사진을 올린다. 지기는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감당할 뿐이다. 그런 태도는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지기는 자신의 미래가 당연히 케일리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성장하고 나아가는 삶을 상상하다가도 이내 그 꿈을 접는다.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의 가능성조차 지워가는 지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에게 과외를 제안하는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 무척 고맙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지기는 정말 대견하면서도 마음 아픈 인물이었다.

 왜 이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할까. 왜 이른 출산과 양육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책임을 한쪽이 감당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걸까. 그런 생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트’. 그는 무대에서 오래 활동한 단역 배우다. 연기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나이가 들며 점점 기회를 잃는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음에도 사회는 하지 말아야 할 나이라며 조용히 선을 긋는다. 그의 모습은 단지 한 인물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고령화 사회의 현실과 자꾸만 외면하게 되는 감정들이 아트 안에 담겨 있었다.

 아트는 도벽이 있는 인물이지만, 복지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연말 연극을 준비하며 아이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고 복지관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다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 당일, 그동안 자신이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가장 진심이었던 무대 위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아트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곁엔 오랜 친구 윌리엄이 있고, 언제나 당당하고 생기 넘치는 대프니가 있다. (물론 대프니는 다소 신경질적인 면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면조차도 그녀의 매력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지만, 동시에 이 사회가 껴안고 있는 현실과 문제들을 날카롭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인물들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무거워지거나 어두워지지도 않는다. 이게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한 사람의 외로움과 용기에 대해 말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간임을 깨닫게 한다. 그것도 아주 쾌활하고 기발한 장면들로 말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책임과 회복, 성장의 방식에 대하여 질문하게 만든다.


 이 책을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본다면, 자전거를 타는 노인일지도 모른다. 느릿하게 가 아닌 아주 빠르게 자전거를 타며, 앞 바구니에는 계란후라이꽃을(개망초) 가득 담고, 뒤에는 색색깔의 풍선들을 잔뜩 묶어두었을 것 같다. 멋있는 선글라스를 모조 보석 반지를 낀 손으로 내리며 물어볼 것 같다. 아주 장난스러운 어조로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그러고는 옆으로 맨 카메라가 떨어질 듯이 흔들려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 같다.


 요즘 당신의 삶은 어떤가. 잘 흘러가고 있나? 잘 흘러가게 행동하고 있나? 하지만 못 흘러가고 있거나 고여있어도 괜찮다. 이 책을 펼치면 대프니, 지기, 아트가 자신의 삶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당신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대프니의 모조 보석 팔찌를 걸치거나 케일라를 품에 안거나 연극 대본을 손에 쥐거나, 늙은 개를 옆에 두거나. 그 형태가 무엇이든,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이미 그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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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문이 열리면 마음이 자라는 나무 44
범유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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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도서관은 문이 아니라, 마음이 열리는 장소였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자정이 되면 비밀의 문이 열리고 감춰졌던 감정이나 과거가 흘러나오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상상했다. 도서관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마자 그런 상상은 조용히 접혔다. 이 책은 상상력보다는 현실에 가까웠고 상처보다는 회복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조용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크게 내 마음에 울렸다.『도서관 문이 열리면』은 네 명의 중학생이 등장하는 인물 중심 옴니버스 소설이다. 이야기들은 서로 조금씩 겹치며 이어지고 인물들은 각자의 고민을 품은 채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변화해간다. 크고 강한 사건은 없지만 변화의 방향이 진심이라 오히려 오래 남는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은솔은 소문을 좋아하는 아이다. 하지만 자신이 퍼뜨린 말이 친구와의 관계를 무너뜨리며 말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차린다. 그 후 은솔은 도서관에서 『미스 마플』 시리즈를 읽으며 소문도 누군가를 돕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고 싶은 말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말만 해야 한다”는 종이접기 선생님의 말은 이 책 전체를 통과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은솔은 결국 “도서관에 유령이 숨겨 놓은 책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아이들이 도서관을 찾게 만든다.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던 아이가 말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존재가 된 변화였다.


두 번째 이야기의 중심에는 수빈이 있다. 겉으로는 반 분위기 메이커지만 그 밝은 모습은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쓴 가면이었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수빈은 항상 밝은 척, 재밌는 척을 해왔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모모』를 만나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할래.” 그 장면은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수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어릴 적엔 이렇게 나를 연기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진짜 내 감정을 눌러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 번째 인물인 단아는, 친구 아영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을 점점 지워온 아이였다. 좋아하는 그림도 남몰래 그렸고, 자꾸만 스스로를 작게 만들며 살아왔다. 그런 단아에게 “좋아하는 데 자격은 필요하지 않아”라는 사서 선생님의 말은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단아는 도서부 포스터를 만들며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건 결국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읽고 나 역시 내가 한때 꾹 눌러놓았던 마음을 조금은 풀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 범준. 그는 조용한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표현하지 못한 외로움과 분노가 쌓여 있다. 형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이후 가족의 모든 관심은 형에게 쏠리고 범준은 거실에서 살아간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도서관마저 다른 아이들로 채워지자 불안과 분노는 책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단아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꿈을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고 처음으로 자기 입으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이 모든 변화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이 소설 속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는 곳, 숨겨두었던 감정에 다시 말을 걸 수 있는 곳이다.


『모모』, 『미스 마플』, 『마이 시스터즈 키퍼』처럼 실제 책들이 인물의 감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책에서 책으로,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다리가 된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은 단순한 청소년 성장소설이 아니다. 중학생이라는 세계를 이미 지나온 어른들에게도 그 시절을 여전히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오래전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그때 너의 고민은 작지 않았어. 아무도 바보 같았던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도, 꽤 괜찮아.”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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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클 (반양장) -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34
최현진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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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찬란하게.”



 책을 펼치기 전,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멈춰 섰다. 원하는 대로, 실패하지 않고, 찬란하게 사는 삶. 누구나 원하지만, 다짐조차 어렵고 실현은 더욱 아득한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책은 어떤 서사를 갖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이 이 책에 마음을 열게 된 계기였다.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라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조건을 요구한다. 최소한 두 가지는 필요하다

  하나,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다짐

 나는 그 두 가지를 온전히 품은 적이 있었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어렸을 적부터 나의 관심사는 단 한 번도 예술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장래 희망을 적을 때, 인생 그래프를 그릴 때, 미래의 나를 상상할 때, 그 모든 방향은 유사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는 예술이라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이 예술에 종사한 것도 아니고, 예술적 환경이 마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을 때 이미지를 떠올렸고,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때는 문장으로 나를 바닥까지 쏟아냈다. 그렇게 나에게 표현은 언어가 되었고, ‘표현의 방식은 곧 삶의 감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언어를 예술이라 불렀고, 나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안 학교에서 들었던 수업 중에, ‘나를 알기라는 수업이 있었다. 하루는 미래의 자신을 생각하며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는 수업을 했었다. 모두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꿈이 없어서,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어릴 적에 반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넌 꿈이 있네. 부럽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부러워할까? 다들 자기가 원하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 친구의 말은 삶의 방향을 명확히 알고 있지 않다는 불안과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걸.

 내가 느낀 그때의 사회는 아이들을 자원으로 만들 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원이 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방향을 찾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문제라는 이름의 키워드를 달았다. 아이들이 학교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상관없었다. 사회가 만든 거대한 구조는, 아이들을 너무 쉽게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갔다. 키워드는 빠르게 달렸고, 그 키워드는 새로운 문제를 계속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작 사회는 자신이 문제를 만든 주체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감췄다. 키워드는 형태가 없지만 무겁고 집요하게 작동했다. 삶의 방향키를 아직 스스로 쥐지 못한 아이들이 본인 스스로 혹은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나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존재의 방식은, 자신이 어디에 있던 상관없이 스스로를 옥죄는 기준이 되었다. 그 방식은 학교라는 공간과 어른이라는 존재를 통해 아이들의 삶에 깊게 스며들었고, 그 영향은 세대를 타고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 분명했다.

 키워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아이들은 두 종류였다. 부모가 곧 방향이 된 아이, 그리고 이미 스스로 방향을 정해 걷고 있는 아이. 나는 그 어디쯤에 있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그 틀 안에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 해석되는 것을 불편해했고 궁극적으로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회적 구조는 나를 끊임없이 위축시켰고, 스스로를 실패자라 느끼게 만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 배유리는 그런 시대적 구조와 마주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자신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인물이기도 하다. 배유리는 아빠의 죄책감이라는 돌덩이를 등에 지고, ‘최하위반이라는 계급적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런 무거운 공간에서도 배유리는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눈송이라는 감각적인 언어와 미지수라는 수학적 감각, 적란운, 대기라는 과학적 사실 등을 통해 자기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되어 발화된다. 이 언어들은 배유리의 고립감과 자신감, 세상을 향한 미세한 반항의 감정을 보다 논리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말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배유리는 세상이 준 정체성이 아니라, 스스로가 해석하고 정의 내리는 문장들 속에서 들려오는, 자기만의 언어를 따른다. 흐릿하고 미약했던 언어는 점점 선명해지며 결국 삶의 방향키가 되어준다. 배유리의 곁에는 끝까지 함께 걸어준 동행자 이시온이 있었고, 작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조언자 이영준이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이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을 생각하며 삶을 계속 살아낼 수 있었다.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나는 이 책의 28페이지에서 멈춰 섰다.


 “꿈을 꾸면 지금도 심전도 소리가 울려.”


 책은 묻어두었던 감정을 들춰냈다. 죽었다고 생각한 나의 순간들. 깊게 고인 채 다시는 흘러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마음이, 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당연해 존재조차 잊었던 심장의 소리처럼, 기척을 숨기고 끝없이 뛰고 있었다. 책 속의 문장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끝이 헤진 편지처럼, 나를 한동안 멈춰 서게 했다. 그 순간, 내 안의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날이 다시 떠올랐다.

이 책은 말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성공의 루트, 그리고 사회가 키운 어른의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죄책감의 타자화속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고, 지금 살아 있는 나는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을 조용하고도 집요하게 따라가야 한다고. 이 책은 나에게 그런 물음을 던졌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그 시절의 나에게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시각이 절대적인 정답이라면, 실패자라는 말은 성립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인 시각이 없기에 실패자라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는 단어야.” 삶은 정답이 아니라 문장이다. 내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이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진다. 이 책은 내가 나의 또 다른 언어를 알게 되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아직 부끄럽지만, 작은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찬란한 삶이 될 수 있게 방향을 조정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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