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이 열리면 마음이 자라는 나무 44
범유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 속 도서관은 문이 아니라, 마음이 열리는 장소였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자정이 되면 비밀의 문이 열리고 감춰졌던 감정이나 과거가 흘러나오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상상했다. 도서관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마자 그런 상상은 조용히 접혔다. 이 책은 상상력보다는 현실에 가까웠고 상처보다는 회복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조용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크게 내 마음에 울렸다.『도서관 문이 열리면』은 네 명의 중학생이 등장하는 인물 중심 옴니버스 소설이다. 이야기들은 서로 조금씩 겹치며 이어지고 인물들은 각자의 고민을 품은 채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변화해간다. 크고 강한 사건은 없지만 변화의 방향이 진심이라 오히려 오래 남는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은솔은 소문을 좋아하는 아이다. 하지만 자신이 퍼뜨린 말이 친구와의 관계를 무너뜨리며 말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차린다. 그 후 은솔은 도서관에서 『미스 마플』 시리즈를 읽으며 소문도 누군가를 돕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고 싶은 말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말만 해야 한다”는 종이접기 선생님의 말은 이 책 전체를 통과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은솔은 결국 “도서관에 유령이 숨겨 놓은 책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아이들이 도서관을 찾게 만든다.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던 아이가 말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존재가 된 변화였다.


두 번째 이야기의 중심에는 수빈이 있다. 겉으로는 반 분위기 메이커지만 그 밝은 모습은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쓴 가면이었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수빈은 항상 밝은 척, 재밌는 척을 해왔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모모』를 만나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할래.” 그 장면은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수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어릴 적엔 이렇게 나를 연기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진짜 내 감정을 눌러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 번째 인물인 단아는, 친구 아영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을 점점 지워온 아이였다. 좋아하는 그림도 남몰래 그렸고, 자꾸만 스스로를 작게 만들며 살아왔다. 그런 단아에게 “좋아하는 데 자격은 필요하지 않아”라는 사서 선생님의 말은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단아는 도서부 포스터를 만들며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건 결국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읽고 나 역시 내가 한때 꾹 눌러놓았던 마음을 조금은 풀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 범준. 그는 조용한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표현하지 못한 외로움과 분노가 쌓여 있다. 형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이후 가족의 모든 관심은 형에게 쏠리고 범준은 거실에서 살아간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도서관마저 다른 아이들로 채워지자 불안과 분노는 책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단아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꿈을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걸 자각하고 처음으로 자기 입으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이 모든 변화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이 소설 속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는 곳, 숨겨두었던 감정에 다시 말을 걸 수 있는 곳이다.


『모모』, 『미스 마플』, 『마이 시스터즈 키퍼』처럼 실제 책들이 인물의 감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책에서 책으로,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다리가 된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은 단순한 청소년 성장소설이 아니다. 중학생이라는 세계를 이미 지나온 어른들에게도 그 시절을 여전히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오래전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그때 너의 고민은 작지 않았어. 아무도 바보 같았던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도, 꽤 괜찮아.”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