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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생 책 읽는 샤미 52
김화요 지음, sujan 그림 / 이지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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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돌림당하는 아이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다면 어떨까? 그 관계의 끝은 구원일까, 파멸일까?


소설 <전학생>은 이 매력적이면서 서늘한 질문을 현미경 같은 시선으로 파고든다. 소녀들의 세계 속에서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결을 페이지마다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이야기는 평범한 소녀 서아현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교실의 정적을 깨고 등장한 전학생 이하도는 고양이 닮은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졌다.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하도는 반 아이들에게 쉬이 곁을 내주지 않는다. 하도는 반의 권력자인 강혜정의 호의를 단칼에 거절하고, 그 순간부터 투명 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 외딴섬처럼 반에서 고립된다.


아현은 하도를 향한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짝사랑하는 소년의 시선이 하도에게 향하는 것을 목격하고 느끼는 질투와 침묵으로 집단 따돌림에 동조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를 동시에 느낀다. 이렇게 그저 방관자로 머물던 아현의 세계는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통해 하도와 엮이며 균열을 맞이한다. 학교라는 공간 밖에서 마주한 하도의 모습은 아현의 예상과 정반대이다. 얼음장 같던 얼굴 뒤에 숨겨져 있던 다정한 얼굴과 오직 아현에게만 허락된 하도의 세계는 아현의 마음을 속절없이 무너뜨린다. 아현은 아무도 모르는 진짜 하도를 알아가는 기쁨과 함께 이 비밀스러운 관계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끝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소설은 아현의 시선으로 시작해 하도와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을 좇다가, 돌연 다른 화자인 강혜정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이야기의 결을 순식간에 뒤바꾼다. 완벽해 보이는 가정 안에서 투명 인간처럼 살아온 혜정에게 가만히 있어도 모두의 시선을 받는 하도라는 존재는 자신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혜정은 그런 거울을 깨트리고 자신의 발밑에 두고 싶어 한다. 혜정의 내면에 도사린 결핍과 상처를 통해, 혜정이 왜 그토록 하도를 증오하고 파괴하려 하는지를 촘촘한 서사로 보여준다.

아현은 혜정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하도의 가장 큰 비밀인 전학 오기 전 학교의 이름을 폭로하고 만다. 그리고 그 비밀은 장애가 있는 학생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라는 소문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소문을 진실일까? 하도가 그토록 숨기려고 했던 과거는 무엇이며, 아현은 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전학생>은 한 사람을 구원하고 또 파멸시킬 수 있는 비밀의 무게와 선의와 악의가 기묘하게 뒤섞인 소녀들의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관계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때문에 특히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는 초등 중고학년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아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강렬한 흡입력을 지닌 청소년 소설을 만나 무척 기쁘다. 다음 장을 넘기기 전까지, 나는 이 이야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본 서평은 출판사의 사전 서평단 활동을 통해 도서의 일부(가제본)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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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 - 블랙홀부터 암흑 물질까지, 코페르니쿠스부터 허블까지, 인류 최대의 질문에 답하는 교양 천문학 드디어 시리즈 8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 지음, 이강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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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SF 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SF 소설을 읽을 때마다, 활자 너머의 우주가 궁금해지곤 했다. 책에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황량한 행성의 모래바람, 우주를 가로지르는 워프 항법, 외계 지성이 보냈을지 모를 의미 모를 신호들과 거기서 파생된 이야기들이 가득히 담겨 있다. 그 모든 이야기에 매료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래서 진짜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저 이야기들은 어디까지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상상일까? 이런 장면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장면일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항상 천문학을 공부해 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좀처럼 시간과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서평단이라는 좋은 기회로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의 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바로 SF 소설의 장면이 현실 가능한 장면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을 얻게 되었다. 읽으면서 잘 짜인 우주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겨 놓은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딱딱하지 않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첫 번째 천문학 책이 되었기도 하다.

 

 이 책은 단순히 천문학에 관한 내용을 딱딱한 사전처럼 나열하지 않는다. 책장을 넘기는 행위 자체가 우주를 여행하는 여정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읽은 내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은 우리가 사는 태양계에서 시작해서 인류의 오랜 로망이자 SF의 단골 무대 중 하나인 수많은 행성을 거친다. 천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과연 혼자인가?’라는 인류의 궁극적인 질문에 관한 이야기도 던진다. 개인적으로 바다 밑에도 인류와 같은 생물이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우주에도 분명 인류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 생각에 대답하는 것 같아 즐겁게 읽었다. 그렇게 흥미진진한 자세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끌려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천문학이라는 낯설지만, 거대한 세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책의 첫머리를 여는 천문학을 읽기 위한 첫 지도라는 파트가 기억에 좋게 남았다. 광년(light-year), 파섹(parsec), 천문 단위(AU)처럼 우주의 광대함을 측정하는 낯선 단위들을 차근차근히 설명한다. 우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도구를 나의 손에 쥐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좋았고, 인상 깊었다. 덕분에 나는 수동적인 관람객이 아니라, 저자와 함께 우주를 여행할 수 있었다. 다만, 아무래도 낯선 개념이다 보니 조금 어려웠던 측면은 있다. 그래도 여러 번 다시 읽으면 되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과학적 사실에 따뜻한 인문학적 온기를 합했다는 점이다. 저자의 그런 온기가 느껴져 책을 더욱 편안히 읽을 수 있게 했다. 특히 한 걸음 더라는 파트에서 그런 감상이 들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준다는 지점에서 책을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어 구성이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


 책의 파트 중에서는 우주의 기원과 별의 소멸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이야기하는 파트가 있다. 이 내용에서는 영겁의 시간 속에 놓인 우리라는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환기하게 만든다. 그중 책에서 우주와 나의 연결고리에서 찾아내는 구절이 바로 들어가며에 인용된 막스 에르만의 시라고 생각한다.

 



너는 수많은 나무와 별들처럼

이 우주에 마땅히 속한 존재란다.

너는 이 우주에서 온 아이란다.

You are a child of the universe,

no less than the trees and the stars;

you have a right to be here. (p. 15)

 



 이 부분을 통해 우주와 인간은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책을 읽으며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이 더 이상 진부한 수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한때는 저 멀리서 빛나는 별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 구절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따로 필사를 할 정도로 말이다. (유명한 말이라던데 나는 몰랐다) 그동안 천문학을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 학문으로만 접근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더 어렵게 느껴졌나 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나의 존재를 우주적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될 수 있었다.



 

인류가 화성에 계속해서 탐사선을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외계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p. 76)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이 있다. 바로 다른 책들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수많은 SF 소설 속 화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소설가들이 상상했던 생명체의 흔적들을 현실의 과학자들이 퍼서비어런스와 같은 탐사선들을 보내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에게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즐거운 경험하게 했다.

 

 『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은 우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삶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동시에 채워주는 특별한 책이다. 천문학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던 천린이(천문학+어린이)’부터 나처럼 SF 소설의 과학적 배경이 궁금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서 색다른 관점에서 위로를 얻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끝으로 이 책은 나에게 우주를, 그 안에 우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했다.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은 지도 정말 오래된 것 같다. 끝 선이 흐릿한 달을 보면서 책에 나왔던 인류의 오랜 질문과 탐험의 역사 그리고 나 자신을 이루는 원자들의 아득한 고향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과 이 책을 읽고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어제의 하늘과는 다르지 않겠지만, 나의 시선이 달라졌으니 분명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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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토끼가 떨어진 날
서동원 지음 / 한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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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감정에 형태가 있다면 당신의 감정은 어떤 모습일까? 나라면 바다 깊이 가라앉은 난파선과 그 안에 놓인 낡은 나무 상자를 떠올릴 것 같다. 표면에는 물이끼가 무성하고 단단한 산호초가 뿌리를 내린 그런 상자의 모습 말이다.

 

서동원 작가의 눈물토끼가 떨어진 날은 열일곱 살 소녀 한유리와 눈물토끼 무토가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담이다. 이야기는 눈물 유출이라는 낯선 혐의로 재판장에 선 눈물토끼 무토의 모습에서 막을 올린다. 눈물토끼 종족에게 눈물을 만드는 일은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사명이다.

 


눈물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닌 감정의 흐름이며 우리가 눈물을 만들고 사람들이 눈물로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생명의 순환과도 같다.” (14p)

 


눈물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무토는 아무리 외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자포자기한 상태다. 그는 수많은 감정이 태어나고 자라는 눈물이 정작 주인에게 닿지 못한 채 폐기되는 현실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심지어 헛된 욕심으로 더 많은 눈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의 가치를 근본부터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태 간절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믿었던 것들은 정말 가치가 있던 걸까?”(15p)

 


무토가 던진 질문의 답은 한유리라는 소녀에게 있다. 작품은 무토라는 커다란 원이 한유리라는 또 다른 원을 품는 동심원의 구조로 전개된다. 유실된 눈물을 찾기 위해 인간 세상에 만들어 놓은 수족관에서 마주치게 된 한유리가 바로 그 중심이다. 함께 눈물을 찾아 나서는 두 존재의 그 이후 이야기는, 부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외면했던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불어넣는 성장 서사라 할 수 있다.

 

눈물토끼라는 독특한 설정을 가진 무토와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한유리의 성장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고 그 기대는 온전히 충족되고도 남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문장이다. 눈물토끼가 사는 세계를 닮은 알록달록하고 몽글몽글한 문장들은 익숙했던 감각마저 새롭게 일깨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문장이 가진 아름다움 그 자체가 이 책의 커다란 매력이자 장점이다. 특히 마지막 한유리가 무토를 돕는 장면들은 내 세상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며, 그 안에는 수많은 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사람들은 감정에 좋고 나쁨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좋은 감정나쁜 감정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댄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책 속 한유리의 생각처럼, 타인에게 드러내도 약점이 되지 않는 감정, 약해 보이지 않는 밝고 기쁜 감정만이 좋은 감정이고 나머지는 모두 나쁜 감정으로 치부되어야 할까.

 

감정을 밖으로 꺼내 보인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과 같다. 그리고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만큼 힘든 일도 드물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기에 모든 존재에게는 흠집과 상흔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 상흔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의 것이라면, 그 흠집은 유독 더 크고 아프게만 보일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딛고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은 하나의 세계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과 같다. 만약 그 세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면 더욱 그렇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더욱 단단하고 거대해진 세계와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분명 우리가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어디인지 보지 못한다면, 내 발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또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그것이 내 감정에 언제나 솔직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 또한 내 안의 보기 싫고 힘든 부분들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은 척살아간다.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생각보다 쉬워서 우리는 곧잘 그것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곤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만 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이 책은 그런 우리를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오후와 저녁의 사이에서 나긋하게 말하는 음유시인처럼, 그저 곁에 앉아 다정히 이야기를 풀어낼 뿐이다. 그럼과 동시에 괜찮다고, 너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도 된다고, 조용히 기다려준다. 마주 봄의 물꼬를 터주려는 이 사랑스러운 움직임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나를 마주 볼 순간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스스로를 직면하다 설령 나의 일부를 잃더라도 나의 세계는 계속 흘러갈 것이고 나는, 분명 괜찮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무토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서사가 조금 더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 정도다. 물론 이 자체로도 이야기는 충분히 완벽하다. 다만 내가 무토라는 인물에 그만큼 깊이 빠져들어,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엿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에는 많은 감정이 산다고 했던가. 그 의미를 알 거 같았다.”(261p)

 


현실의 감각과 판타지의 상상력이 더없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마다 애써 고개를 들거나 입술을 깨무는 습관을 지닌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리고 한때 열일곱의 시절을 지나온 모든 어른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감정의 형태가 있다면, 당신의 수조 속 감정은 이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책을 덮고, 당신만의 감정의 형태를 가만히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저의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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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의 사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5
설재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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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떠오른 게 없어서 아민은 그만 아무 말이나 내뱉고 말았다.

 약속해.

 놀라운 사실은, 그 말을 들은 누구도 무얼 약속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227)


 책을 덮고 한동안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에 휩싸였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이 어지럽게 엉켜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 이 오묘한 감각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이 책은 열일곱 살의 자퇴생 '아민'을 중심으로 네 명의 인물이 사계절처럼 얽히며 흘러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듯, 이들의 관계 또한 하나의 조밀한 세계를 이룬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은 빈틈이 없다. 잠시 쉬어갈 여백 없이, 지문과 대사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작가는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주인공 아민의 삶에 단 한순간도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아민. 그의 절박한 상황이 책의 모든 구성 요소를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여놓은 것이다.

 아민의 끈질기고 맹목적인 생존 욕구는 타인의 세상을 돌아볼 여력을 앗아간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 역시 아민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모습에서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민의 탓일까? 이 책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지점은 아민을 지지하고 이해해 줄 '온전한 어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열일곱 살 아민을 동등한 성인으로 취급하며 명확한 이유 없이 적대감을 보이거나 그의 가난마저 멋대로 재단하고 의심한다.

 

 “나를 속이기 위해 자네의 가난을 과장한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면 왜 돈 잘 주는 좋은 과외 자리를 마다하고 스스로 몸값을 낮추는 짓을 하는 거지?” (165)

 

 이렇듯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건네는 존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민이 가르쳤던 학생들이었다. 어른들이 아민을 코너로 몰아붙일 때, 아이들은 그에게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아민 한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민과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봄이 되어 품어주고, 여름이 되어 추위를 녹이고, 가을이 되어 깨닫게 하고, 겨울이 되어 함께 버텨내는 그 '관계' 자체가, 아이들끼리 지켜낸 그 '세계'가 진짜 주인공일 것이다.

 

 “지금 그 애를 맡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226)


 유정, 희준, 성현, 지원. 이 네 명의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민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다. 누군가는 아민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이유 없는 사랑을 알려주며, 누군가는 굳게 닫혔던 아민의 세계를 바깥으로 연결시키고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아민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 상호작용의 결과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너무도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고 상처받는 아민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적인 어른이 아닌 현실의 어른들을 미리 보여주는 것 또한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혹한 삶 속에서도 실낱같은 빛을 따라가 보고 싶은 이들, 인물들의 관계성에 깊이 주목하는 이들, 그리고 어른들이 말하는 세상이 두려운 청소년들이라면, 이 입체적인 세계를 꼭 한번 기꺼이 길을 잃고, 마침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경험을 꼭 한 번 해보길 추천한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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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 인권 최전선의 변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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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과연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가. 이 책은 우리가 애써 쌓아 올린 그 단단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권 변호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한 열 가지의 치열한 기록들은, 단순한 사건 보고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느끼게 될 불편함과 분노는 역설적으로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증명한다. 이 책은 법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끈질기게 던진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가해자 중심적 문화의 실체를 고발하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은 그 문제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대목에서 그 문제의식은 극에 달한다. 저자들은 디지털 성폭력은 촬영기기와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한 온라인 공간의 비대면성, 익명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가해자가 느끼는 죄책감도 사회가 평가하는 가벌성도 상대적으로 덜한 듯 여겨집니다.”(69) 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인식은 사법 시스템의 판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범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해자의 개인적 서사, 즉 그의 아픈 가족사나 경제적 어려움은 너무나 쉽게 법정의 동정과 감형의 사유가 된다.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과 삶은 단지 몇 장의 사건 기록으로 납작하게 축소되고,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가해자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변호할 기회를 얻지만, 피해자는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종잇장만으로 자신의 존엄과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 걸까. 이는 결코 동등하거나 공평한 싸움이 아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법 집행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미성년 피해자에게 한 수사관은 "스폰서를 소개받기 위해 사진을 먼저 보낸 게 맞냐"(71)고 질문했다. 이는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의사, 즉 동의 여부는 성착취물 제작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71) 는다는 명백한 법규를 인지하지 못한 직업의식의 부재이거나, 혹은 성폭력 피해자는 순진무구 또는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환상 혹은 편견”(83)이 무의식중에 발현된 2차 가해이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이는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회 시스템이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칼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장면이다. “피해자가 소리 없이 상대하고 있는 가해자들은 고소장에 적힌 가해자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겠습니다.”(71) 라는 저자의 탄식은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야말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또 다른 거대한 폭력이다.

 

 책은 또한 디지털 성폭력의 본질이 가진 교묘함을 파헤친다. “누군가는 불법 촬영물을 만들고, 누군가는 이를 공유하며, 누군가는 봅니다. 각 행위마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태도가 배어 있습니다.”(81) 라는 지적처럼 이 범죄는 단일 행위가 아닌 개별적 행동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방관도 가해라는 것을 배우는 우리 사회에서, 유독 디지털 성범죄의 유포와 소비는 큰일이 아니라는 안일한 태도 속에 용인된다. 이는 결국 피해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놀잇감이나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는 끔찍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성폭력이 기존의 성폭력과 달리 지니는 큰 특징은 피해의 무차별적 확산성, 반복성 그리고 지속성입니다.”(69) 라는 저자의 분석은 이 범죄가 피해자의 영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새기는 행위임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법의 경계 밖에 놓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즉 미등록 이주 아동의 현실을 다룰 때 더욱 확장된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1991년에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본 협약은 국내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102)라고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혈통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법에 따라 이주 아동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출생 등록조차 되지 않아”(112) 강제 출국 조치 등이 취해진다. 그 결과 이 아이들은 보건, 의료, 교육 등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혹자는 이 문제에 대해 부모의 불법체류 문제를 먼저 거론하며 아이를 이용한 편법을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시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어른들의 문제는 어른들의 선에서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부모의 법적 신분이 아이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아동 권리의 가장 기초가 되는 법인 아동복지법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시책의 수립과 시행, 아동 이익의 최우선적 고려를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 국적의 아동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110)라는 현실은 우리가 보편적 인권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선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보호와 돌봄에는 국경이나 장벽이 있을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하나의 목소리로 귀결된다. “사건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사건의 결론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과정마저 엉망진창으로 남지 않게끔 완충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80) 이 문장은 차가운 법 조항 너머에 있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들의 사명이자,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일깨운다. 그들은 말한다. “피해자 변호사로서 당장 함께 쓸 수 있는 우산을 찾아 펼쳐봅니다.”(65) 이 책은 바로 그 우산을 함께 펼쳐 들자고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 책은 고발장인 동시에 연대의 초대장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우리의 범주를 넓혀가며 인권, 사람의 권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진정한 포용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혐오와 증오, 차별과 침해가 만연한 혐오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112)라는 기로에 서 있다. 그 갈림길 위에서 이 책은 당신의 안온한 일상을 뒤흔들 가장 불편하고도 가장 절실한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세상의 변화는 이러한 불편함과 마주하는 당신의 시선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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