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로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 달려있는 책이다. 홍세화의 신간 에세이인데, 한번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이상하게 무력하고 화가 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영화 크래쉬에서 나온 대사다) 보면 좋은 책이다.

 

글 중에서 두 군데를 인용해 본다.

 

1.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 직접 견문과 성찰은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 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고 채워진다. 나는 유소년 시절에 할머니 할아버지 뻘 되는 분들이 "나는 무식해. 아무것도 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종종 들었다. 오늘날엔 그런 분을 만날 수 없다. 국가권력이 장악한 제도교육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미디어에 의해 넘칠 정도로 채워지는 의식세계는, 특히 한국처럼 제도교육이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이 요구한 것으로 채우게 된다..... 지배세력에 대한 복종의 자발성에서 과거에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보다 오늘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더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진다'는 뜻인데, 역사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귀족은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았다. 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으면 지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배하기 위해 의무를 져왔을 뿐이다. 그게 역사의 진실이다. 따라서 귀족이나 사회상층이 스스로 의무를 얼마만큼 지느냐는 국민의 비판과 견제 능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역에서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데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가당키나 한가.

 

나는 1판 1쇄를 출간일에 샀는데 그덕에 홍세화 선생님의 자필 사인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스스로 묻는 소수와 함께,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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