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의 범위 중 유독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공포,
책을 읽다보면 어느 장르에 넣어야 할지 고민스러운
장르들이다. 독자에게 ‘충격’과
‘의문’을 선사하는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 그 경계가 간혹 희미해 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그나마 구분이 쉬운 건
‘추리’와 ‘공포’인데, 그 둘은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어떤 미스터리를 도전적으로 논리성을 가지고 해명해야하는 게
‘추리’,
그 미스터리를 괴기나 환상으로 취급해 설명 불가능한 비현실로 그려내야하는 게
‘공포’이다. 여기 아주
난감한 소설이 있다.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귀신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논리와 과학으로
풀어내야하는 ‘추리 소설’.
기가 차지 않은가? 읽다보면 더 기가 찰
노릇이다. 작품의 분위기는 시시때때로 긴장과 웃음으로 극과극을 달린다. 곽재식의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과연 어떤 퓨전음식으로
독자의 입맛을 사로 잡을 것인가?
"이야기가 그만하면 신기하고 결말도 특이하네요.
무서운
이야기, 신기한 떠도는 소문,
뭐
이런 게 비싼 값은 안되지만 항상 팔리는 이야기잖아요.
이번에는 이거 한번 파서 장사해보지, 뭐."
"장사는, 무슨, 뭐, 장사요?"
"그거
우리가 캘 거라고요"
- 음산한 폐공장에는 기묘하게 웃는 거꾸로 매달린 귀신이 있다.
누구나 한 번 보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기괴하고도 끔찍한 모습.
결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그것’을 추적하는 수수께끼 회사의
만담커플?
얼마 전 해고된
한규동. 이곳저곳 면접을 보지만 합격되는 곳은 없다. 좌절과 패배감만 맛보던 어느
날, 수상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을 보러간 회사는 폐건물에
차려진 ‘차세대 인터넷 미디어 벤처’. 인터넷 광고나 기사에 관한
회사인 줄 알았는데, 면접관 꼴을 보아하는 그것도 아닌 사기업체 같다. 허름한 면접실에 반쯤 누워
하품을 찍찍하는 면접관인 이인선 여사장.
그녀는 이상한 질문으로 면접을 시작한다. ‘돈 번
이야기, 바람난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중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라는
것. 한규동은 황당하지만 면접관의 태도에 괜한 오기가 생겨 자신이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1940년대 일제의 지배 아래 임만섭은 일본군의 군복생산을 도맡아 하면서 날로 부유해
진다. 그는 유학간 아들을 생각하며 좀 더 부유해질 방법을 찾고, 끊임없이 일거리를 받아 밤새도록
공장을 돌린다. 생산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직원들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한 직원의
두 팔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임만섭은 위험한 방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직원들에 각성제를 주사하기로 한
것. 각성제로 인해 공장은 폭발적으로 돌아가지만 직원들은 미치거나 죽어나간다. 그러던 중
한 여직원이 죽어도 좋을 만큼 마약을 주사하고,
고통과 쾌락의 절정에서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임만섭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폐공장에는 거꾸로 매달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기괴한 여인의 웃음소리와 서로 한 몸인 듯 흉물스럽게 엉겨붙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계속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이인선은
이야기가 돈이 될거라며 한규동을 고용하고, 그와 함께 괴담의 정체를 조사하기로 하는데...
- 비현실적인 괴담을 논리적으로
파헤치다.
'당신은 귀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나요?'
초기 미쓰다 신조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콜라보 같은 소설?
이 소설은 문제, 풀이, 해결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현실적인 괴담을 ‘문제’로
제시하고, 그 괴담의 실존여부를 추적해나가는 ‘풀이’, 그리고
괴담의 수수께끼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해결’이다.
구성자체는 본격 추리 소설 같지만, 결코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내용과 분위기는 시시각각 그 얼굴을 달리한다, 어떤 한
장르의 요소를 깊게 파고드는 것을 기대한 독자는 다소 배신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도입은 문제가 되는
괴담을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심각하고 무섭게 전한다. 중반에는 겁많은 남직원 한규동이
열정적이지만 돌아이 같은 여사장 이인선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괴담을 추적하는데, 개성 넘치는 두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만담풍의 전개가 제법 코믹스럽다. 마지막 괴담의 진상은 씁쓸하고도 날카로운 사회비판과 함께 논리적인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자, 이걸 어떤 한 장르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
불가항력이다. 이게 매력일수도
실망일수도 있겠다만, 확실한 것은 새로운 구성과 형태를 갖춘 추리소설임은 분명하다. 미쓰다
신조(토속적인 소재의 공포소설작가)가 괴담을
쓰고, 히가시노 게이고(이공계출신의
추리소설작가)가 이 괴담을 풀어낸다면? 아마 이 소설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