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스릴러' 라고 하면, '하드 보일러'가 대세였다. 강한 남성 주인공이 등장해
능동적인 추리와 과감한 액션, 거친 언행을 보이며 범인을 잡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통성 있고 유명한 스릴러, 해리 보슈 시리즈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요즘 장르물에 여성독자가 많아진 만큼, 스릴러에도 다양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대세가 '도메스틱 스릴러'이다. 도메스틱
스릴러는 보통 여성, 특히 주부가 화자인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 소재로 삼으며, 우리의 일상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관계'와 '비밀'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러다 보니 지극히 현실적이고,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친밀한 관계나 사소한 비밀이 문제가 되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질때, 독자에게 흠뻑 빠져들수 있는 공포감을 선사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나를
찾아줘> 등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부탁 하나만 들어줘>도 도메스틱 스릴러 형태를 보인다. 만약 도메스틱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이 책을 주목하자.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니.
"그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다.
고해성사하듯 고백을 하면 나의 벌이 가벼워질 거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나쁜
사람에게 그 고백을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벌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 그것도 나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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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모든 것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친한
친구의 실종, 그리고 실종전 마지막 친구의 부탁.
나와
친구, 그리고 친구의 남편이 간직한 비밀, 그리고 치밀하고 계획된 각본들.
스테파니는 과거
남편과 의붓 남동생을 사고로 잃었다. 그리고 현재, 코네티컷 교외에서 다섯 살 아들 마일스를 키우는 싱글 맘이다. 스테파니는 다정한
남편이라던지, 우수한 커리어라던지, 부유한 재산이 있지 않다. 다만 사랑하는 아들과 아들과의 일상을 올리는 블로그만이 인생의 낙이다. 이런
그녀는 이미 '맘'들에게 나름 유명한 블로거로,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인생의 소소한 행복에 또 하나의 행복이 찾아온다. 외로운
그녀에게 친구가 생긴 것이다.
스테파니의 친구
에밀리는 아들친구의 엄마이다. 아들 마일스의 단짝 친구 니키의 엄마가 에밀리라서, 그런 인연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에밀리는 특별한 여자이다.
스테파니가 동경하는 모든 것을 가진 친구기 때문이다. 유명 디자인 회사를 다니고, 출산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처녀같은 몸매, 그리고 항상
화려하게 꾸미는 명품 의상과 소품들, 거기다 잘생기고 돈 잘버는 남편 숀까지. 에밀리는 고급저택에서 우아하게 살면서 여성으로써의 삶과
주부,엄마로써의 삶을 완벽하게 해내는 롤 모델같은 여자이다. 스테파니는 그런 에밀리를 동경하면서 그녀를 둘도 없는 친구로 대한다.
그러던 어느날
에밀리는 스테파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을 대신해 아들 니키의 잠시 돌봐달라는 것이다. 에밀리가 워킹맘이기 때문에 간혹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니키를 부탁하곤 했다. 스테파니는 별 다를 것 없는 부탁이었기에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어느날, 에밀리는 거짓말
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 부탁이 친구의 마지막 말이 되버리고, 스테파니는 혼란에 휩싸인다. 에밀리는 왜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그녀가 스스로
사라진 것일까? 아님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것인가?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남편 숀에게 소식을 전하고, 출장 중이던 숀은 아내의 실종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수사에는 진전이 없고, 스테파니는 에밀리
대신 그녀의 남편 숀과 니키를 돌보며, 에밀리의 행방을 찾기로 한다. 블로그에 에밀리에 관한 글을 올리기 시작하는 스테파니. 그리고 어느날
블로그의 글을 본 '누군가'가 전화를 한다. 과연 누구일까? 에밀리는 어디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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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도메스틱 스릴러의 전개를 따른다.
그러나
뻔한 키워드를 쓰되 알수없는 전개가 진행된다.
도메스틱 스릴러의
전형적인 키워드를 뽑아내라면? #비밀 #과거사 #치정 #불륜 #배신 이다. 자, 이 모든것은 정말 전형적으로 쓰이는 소재이다. 스포라고 할 것도
없이 항상 일종의 '공식'처럼 쓰여왔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도메스틱 스릴러'를 따르기 때문에 이 키워드를 충실하게 따른다. 친구 에밀리의
실종, 그리고 에밀리를 찾는 과정에서 가까워지는 스테파니와 친구의 남편 숀. 여기까지는 누구나가 예상가능한 이야기 이다. 그런데 에밀리의 실종과
죽음을 두고 벌어지는 계획과 스테파니가 숨겨온 비밀, 그리고 남편 숀의 속내까지. 인물들은 제 각기 자신만의 과거과 치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친밀한 누군가에게 발설한다. 마치 고해성사처럼, 이로인해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세사람의 관점에서
1인칭으로 전개하는데 기막히기 짜여진 막장 반전 각본같다. 도메스틱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