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뭘까? 개성 만점인 캐릭터? 위트 넘치는 재치? 가슴 한구석을 데워주는 감동? 이런 그의 장점은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어이없게 우스꽝스럽다가도 어느 한 포인트에 울컥함을 지닌, 아마 그의 소설은 종잡을 수 없이 독자의 마음을 잘도 흔들어 놓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단조롭고 딱딱한 일상, 스스로가 무언가를 느끼고 하염없이 흠뻑 빠져들어 정신없이 흔들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까칠한 괴짜 중년이 이웃과 화해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오베라는 남자>, 나이에 비해 성숙해 되바라진 7살 소녀의 케케묵은 가족 갈등 화해기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까다롭고 깐깐하다 오해받지만 늘 남을 위해 살았던 여자의 온전한 자신 찾기 프로젝트 <브릿마리 여기 있다>. 이번에는 '이별'에 대해서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은 단어만으로도 울적한 '이별'을 완벽하고 찬란하게 그려낸다.

"노아야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니?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아직 남아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건

끔찍한 일이거든"

- '완벽한 이별'을 준비하는 할아버지와 손자.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천천히 헤어짐을 배워나가는 아이의 동화같은 이별 이야기

노아와 할아버지는 어느 손자와 할아버지 같지 않다. 노아에게 할아버지는 친구같고 아빠같다고나 할까? 노아의 아버지는 언어와 악기를 좋아하지만 노아는 수학을 잘하고 좋아한다. 이는 할아버지를 더 닮은 것이다. 그래서 둘은 닮은만큼 더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이런 둘사이에 이별이 가까워 온다.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것이다. 할아버지는 노아와 이별을 준비한다. 그러면서 그의 기억 속에서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할아버지는 문득 아내에게 반했을 때 그리고 아내를 떠나보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아직 처음만난 그 순간은 생생하지만 곧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까 두렵기만하다. 할아버지는 죽음과 기억의 상실을 앞에 두고 두려워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이 죽기도 전에 기억을 잃어가며 손자를 떠나야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혼란스럽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머리 속의 공간을 여행하며 그곳에 남아있는 추억을 되짚으며 세상에서 가장 느린, 그리고 완벽한 이별을 준비하기로 하는데...

-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그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동화처럼 그려낸다.

치매보다 잔인한 병이 있을까? 서서히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버리게 되고, 함께 쌓아올린 삶의 추억이 부서지는 과정. 그것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끊임없이 절망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이야기. 치매를 소재로 다룬 영화나 소설은 이렇듯 이별을 '슬픔'과 '절망'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진행이 된다. 하지만 이번 <하루하루가 이별하는 날>은 다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할아버지의 머리속의 풍경을 함께 여행하며 조금씩 천천히 멀어져만 간다. 서서히 이별하는 광경을 소소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동화처럼 달콤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이별'='슬픔'이 아니라 '이별'은 그냥 '이별'일뿐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조용하고 따뜻해서 괜스레 울컥한다. 문장문장 하나하나가 기억에 박히는 특별하고 반짝이는 책, '이별'을 슬픔만으로 표현하지 않은 책을 읽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