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중간의 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부부 및 가족관계,
그리고 타인의 범죄를 통해 반추하는 자신의 일상
더 깊고 더 농밀한 수준 높은 서스펜스
“사랑하는 딸을 죽인 엄마는 나일지도 모른다!”

리사코는 세 살된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평범한 전업주부이다. 전에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나름 인정받은 그녀였지만 다른 여성들처럼 아내가 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전업주부로 전향한 것이다. 결혼 당시에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지만 뜻하지 않게 결혼 후 바로 임신을 했고 극심한 입덧과 빈혈로 반강제로 자신의 커리어를 접어야만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여전하나 퇴근 후 아이를 돌봐주는 자상한 남편, 고집이 세지만 사랑스러운 딸아이로 인해 힘든 시기를 스스로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렇게 스스로 나름의 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리사코. 헌데 이런 그녀의 일상에 균혈이 가기 시작한다.

시작은 형사재판의 보충 재판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작년쯤에 재판원 제도 공문이 온 것을 반송하지 않은 탓에 수락된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리사코에게 배정된 사건은 영유아 학대사 사건. 도쿄 도내의 삼십 대 여성이 물 받은 욕조에 생후 8개월 된 딸을 떨어트렸고, 퇴근한 남편이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러 딸을 병원에 데려갔으나 이미 사망한 사건이었다. 아기 엄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떨어뜨렸다’고 사고가 아닌 고의였음을 인정했고. 그녀는 살인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이미 리사코가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아동학대 뉴스는 매일같이 있으나 훈육상 때린다거나 몸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물속에 빠뜨려 자신의 친딸을 익사 시켰다는 내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임으로.

어떤 싸움이건 간에 양측의 말을 모두 들어야 한다는 말처럼 이 사건을 두고 첨예한 갈등과 반론이 일어난다. 법정에서 검사측은 피고가 악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로 살해의도를 가진 살인사건으로 말하고 반면 변호인은 피고가 연약하고 가여운 엄마이기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참극이라 말한다. 사건을 두고 재판원들의 생각도 각각 다르다. 이런 복잡한 가운데 무엇보다 복잡한 것은 리사코의 심리상태이다. 같은 엄마로써 피고를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어떻게 자신의 딸을 돌보기는커녕 죽일수 있을까 싶었지만 피고를 알면 알수록 공감할 수 없는 사건에 스스로를 대입하여 점점 피고와 자신이 동일시 되어감을 느낀다.

리사코는 피고가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음을 알게 되고 점점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피고를 향한 혐오감과 분노는 어느새 동정과 연민으로 바뀌어져 간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를 하나 둘씩 떠올리게 된다. 모유로 키워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주장에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남편에게 푸념을 하면 남편은 시어머니를 감싸기만 하고, 보건사와 의사는 아이를 평균치로 비교하는 등 혼자 육아와 살림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는 그녀에게 위로가 아닌 칼날 같은 언행들을 쏟아 내렸고, 리사코는 지금까지 그것에 대한 분노를 무의식중에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쩌면 리사코 자신도 그 피고처럼 딸아이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그 피고를 리사코만은 이해하게된다.

 

이 소설은 리사코의 육아 일상과 재판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영유아 살해사건을 제외하고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한 주부가 겪는 지극히 일상적인 언행이 주는 분노와 상처를 접할 수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하는 은밀하고 계산적인 괴롭힘, 말의 애매함과 다양성으로 칼보다 무서운 혀의 놀림은 어느 공포소설 보다 서늘하고 찝찝하고 참담하다. 괴롭고 충격적인 살인사건의 주인이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 언덕위의 집들 중 가운데 그 집이 당신이 집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작가는 한 여성의 심리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에 공감을 하게하는 무섭게 압도적이며 고약한 소설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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