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형사 베니 시리즈 2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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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여행 중 참혹하게 살해된 미국인 10대 소녀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또 다른 소녀를 구해라!

 

한 소녀가 달리고 있다. 가파른 언덕과 등산로의 자갈을 휘저으며 달리고 있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무언가를 피해 무작정 달리고 있다. 친구의 죽음을 알고 있는 소녀, 그리고 그녀를 쫓는 거대한 무언가, 달리지 않으면 자신도 집어 삼켜질것만 같은 소녀는 두려움을 안고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같은 시각 수사관 베니 그리설에게 한통의 전화가 온다. 멘토링을 하는 후배 경위 부시였다. 사건이였다. 루터교회의 앞마당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전화를 끊고 베니는 어젯밤 뜻하지 않은 외도를 떠올리며 후회한다. 현재 베니는 강제적 별거중이다. 열심히 일하면 정의를 구현할 수 있고 진급도 할 수 있다는 평범한 꿈을 가진 이 착한 형사가 25년째 경위다. 매일같이 보는 살인사건 그리고 가족을 볼 때 마다 가족이 이와 같은 시체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탓인지 술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처연한 형사다. 급기야 술김에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고 결국 아내는 6개월 동안 술을 끊고 금욕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그를 쫓아낸다. 이제 술을 끊은지 156일째다. 아내와 저녘 약속을 하고 화해를 할 수 있는 이 시점에 외도라니 의도한 것이 아니다. 이상형의 여자를 만난건 단지 운이 나빴던 거다. 하지만 정말 운이 나쁜건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목에 자상이 남겨진 시체 한구. 배낭여행을 온 미국인 소녀였다. 자신의 딸 카라와 비슷한 또래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뒤에 오는 씁쓸한 감정은 불길한 기운을 뿜는다. 그리고 곧 이여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에게 또 다른 사건의 멘토링이 요구된다. 그것도 하필 재수없는 후배 프란스만 데커의 사건이다. 똑똑한 머리 하나만 믿고 자신을 무시만하던 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사건은 손만 대면 대박을 터뜨린다는 음반계의 큰손 애덤의 살인사건이다. 애덤의 아내인 알렉산드라는 알콜중독자이고 그날밤도 술에 쩔어있었다. 술에 깨보니 남편은 총상을 입은채 죽어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총이 그녀의 손 옆에 있다. 술김에 남편을 쏴 죽이기라도 한것일까? 하지만 베니 그리설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 알렉산드라가 범임을 아님을 직감한다. 쫓기는 소녀, 살해된 소녀, 죽은 음반계의 큰손. 전혀 달라 보이는 세 조각이 어떻게 맞춰져 하나의 퍼즐을 완성할지 답은 초라한 노땅 경위 베니 그리설에게 달렸다.

 

 

- ‘히어로가 아니여도 괜찮습니다.’ : 독자가 기다려온 평범함보다 초라함이 어울리는 주인공

 

마흔이 넘도록 쥐꼬리만한 월급을 버는 25년차 경위, 강력계 동료들에게 신뢰를 잃은 술주정뱅이, 멘토링을 하는 후배들이 무시하는 노땅 형사, 주구장창 늘어지는 철야 덕분에 자식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아빠, 알콜중독에 끝내 아내에게 손찌검까지한 남편, 수트케이스 하나 달랑 들고 집에서 쫓겨난 쓸쓸한 가장, 어쩌다보니 별거 중 외도라는 실수도 하는 인간적인? 남자, 큰 가슴과 큰 입술에 패티시를 느끼는 보통 남자, ‘씨발’이라는 욕지거리가 인사보다 친숙한 마초적인 남자, 희끗희끗한 머리, 눈가주름, 슬라브족의 특징이 담긴 외모를 가진 못생긴 남자, 자, 여기까지 쭉 나열해보니 정말 매력없는 캐릭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베니에게 빠져든다. 대부분의 예전 소설은 반대였다. 여심을 저격할만한 매력적인 외모, 명석을 넘어선 천재적인 두뇌, 다부진 몸매와 액션극에 적합한 격투실력, 어쩌면 평범한 우리들은 비범한 히어로를 꿈꾸며 마치 우리가 형사인냥 히어로라는 극중인물의 옷을 입고 머릿속에 상상을 펼치며 살인범을 잡길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베니를 보라. 평범한 경위가아니라 초라한 경위다. 가족과 직장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모든 것에서 실패한 늙은 경위다. 늙었는데 존경과 경외심조차도 받지 못하는 초라한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 초라함에서 문득 위로를 받고 응원을 하게된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초라함을 베니만큼은 아니더라도 한두개 쯤은 가지고 살아가지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 초라한 형사가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부딪쳐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응원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감정이 이입 된다. 우리는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가 한 두개쯤 가진 치명적인 초라함으로 무장한 안타깝지만 치열하게 싸우는 열정적인 캐릭터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만으로 이 소설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 ‘벽돌책이어도 괜찮습니다.’ : 두께를 능가하는 작가의 영리한 진행력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반가운 편은 아니였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요네스뵈의 헤리홀레 시리즈를 떠오르게 하는 이 방대한 분량은 나처럼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독서가에게는 그리 반갑기만은 하지 않았다. ‘이게 역사대하소설도 아니고 대체 무슨 할말이 그리 많다는 거지?’ 나처럼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 추리 스릴러 같은 장르소설에 빠지는 이유는 대부분 1권 분량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이 두권 같은 한권짜리가 아니란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범인이나 숨겨진 트릭이 뒷장을 궁금하게 만들어 책장을 넘기는 원동력이 되며 끝끝내 갈무리를 지었을 때 보이는 복선과 반전들이 일종의 상장처럼 느껴지는데서 오는 쾌감은 남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떠한가. 간단히 결과부터 말하자면 훌륭하다. 디온 메이어는 요네스뵈처럼 벽돌책을 읽게 하는 영리한 진행력을 가졌다. 일단 전혀 상관없는 사건들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상관성을 만들어 내는데 이 점이 중간의 지루함을 가질 무렵 필연적으로 시점이 교차되어 책을 붙잡게 만든다. 또한 13시간이라는 타임리밋과 목차의 장마다 약 1시간에서 1시간반가량의 분량을 넣어 마치 자신이 그 시점을 지배하는 등장인물이 된듯한 긴박감을 선사한다. 매력적인 소재가 소설의 첫인상이라면 좋은 첫인상을 가진 소설은 많다. 그 첫인상을 뛰어넘어 사귀고 싶고 알아가고 싶은 인상을 심어 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것은 디온 메이어는 보여준다.

 

 

- ‘한가지만 담아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소설

 

일을 함에 있어서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한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라’ 그래, 한가지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반은 성공한 셈이 아닌가!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반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그 반이 흐지부지하냐 그것도 아니다. 독자들이 생각하는 추리의 요소인 가독성, 진행력, 타당성, 스토리, 반전, 캐릭터 등이 두루 갖추어진 소설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사건이 가져오는 가독성, 벽돌책을 뚫게 만드는 교차 서술이 주는 진행력, 인물들에게 공감을 가져올 수 있는 타당성, 아프리카라는 독특한 배경에 흥미로운 소재를 더한 스토리, 벽돌책 많큼 부풀려놓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반전,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개성있는 케릭터들의 집합까지... 더 말해 무엇하랴, 재미있고 훌륭한 추리소설임이 분명한 것을. 그렇다면 나머지 반은 무엇이냐, 그 반은 아프리카라의 실정을 고발하는데 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종차별문제, 절대빈곤문제, 무의미한 치안, 통제불가능한 범죄, 정의가 아닌 비리가 판치는 현실. 추리소설에 아프리카의 현실을 여실히 담아내는 이 소설은 단지 장르소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추리소설에 아프리카소설을 더한 소설이고 고구마를 먹은 듯 팍팍하고 답답한 현실이 추리소설의 장애요소로 등장하며 따분할것만 같은 한 나라의 실정 고발을 이질감없이 매끄럽게 녹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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