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 그의 소설은 대부분 같은 맥락으로 진행되며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은 항상 고난, 시련, 역경을 겪으며 땅바닥에 곤두박질 쳐지다 못해 지리멸렬한 삶을 살게 된다. 가면 갈수록 너덜너덜해진 그의 주인공들은 이런 가운데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것은 매우 명쾌하다 못해 단순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에 따른 고난은 살아가는 삶속에 녹아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적이자 동반자이다. 그는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이 아니라 고난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이번 소설 역시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이 어떻게 변모하며 잘못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비극과 해답을 담은 짤막한 12편의 소설은 이상, 현실, 좌절, 고뇌, 성공, 실패 등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삶의 단편을 강렬하고 흥미롭게 담고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픽업의 줄거리를 잠시 이야기 해보자면 <픽업>은 유령회사를 만들어 고객들의 돈을 사기 치는 사기꾼의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을 ‘쓰레기’라고 칭하며 사기는 살아가는 방식이며 세상은 적자생존의 법칙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의 결혼 생활 역시 계산대에 놓인 인간관계며 영원한 사랑이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오로지 돈만이 그의 전부이고 영원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삶’이 경고라도 준 것일까? 사기횡령으로 고소를 당하고 재판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면 사기꾼은 자신의 직업처럼 돈으로 배심원을 매수해 유유히 빠져나간다. ‘삶’이 우습기라도 한 듯 말이다. 무죄로 풀려난 그는 승리에 취해 낡은 술집에서 그만의 자축파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연 같은 필연으로 어떤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고 그로 인해 ‘삶’은 그의 모든 것을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아마 작가가 이 이야기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는 가장 그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평소 인과응보와 약자의 편에 서서 글을 써온 그의 내력과 같은 맥을 가진다. 이 이야기는 선택에 따른 결과는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는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비극의 끝에서 절망만이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읽어낸다면 그 삶은 앞으로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예견하기도 한다.
그 외의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와 냉정하고 실리적인 여자가 결혼한 뒤 이혼을 하고 남편이 고가의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를 다시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팽팽한 심리전을 그린 <크리스마스 반지>, 젊은 시절 운명의 여인을 만나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원하는 사랑이 기회로 찾아왔을 때 도망쳐버린 남자의 비애와 후회를 그린 <여름 소나타>, 한통의 전화를 받은 후 평소라면 후회라는 예고제에 겁을 먹을 법한 과격한 일탈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남자를 그린 <전화> 등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의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라는 명언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 들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이런 뻔한 주제, 비슷한 맥락을 각각의 다른 스토리로 옷을 갈아입혀 다양한 연출을 함으로 결코 지루하지도 고루하지도 않다. 이 단편집은 멋진 컬렉션 같다. 디자이너들이 그 시즌에 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구사해내는 것과 같다. 나는 조금의 지루함을 못 견뎌 가독성 있는 소설류를 즐겨 읽으나 핀치를 겪을 때는 나와 비슷하거나 더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실화를 다룬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그것은 일종의 공감과 돌파구를 얻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다. 만약 나와 같은 패턴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이번에는 이 소설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실화가 주는 생생함이나 따뜻함이 때때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느껴질 정도로 삶이 팍팍할 때 이 소설을 읽어보아라. 당신에게 방향은 물론이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와 대화와 독백으로 스피드 있게 절정에 다다르는 결코 지루하지 않고 골머리 썩지 않을 이야기로 멋진 쇼를 선사해줄테니 말이다. 지금 만약 당신이 <핀치>라면 이 책을 <픽업>하는 것은 좋은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