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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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영중이며, 2019년 하반기 가장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영화는 조남주 소설가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34살의 주부 김지영씨가 어느 날 다중인격처럼 주변인물들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내는 정신질환을 앓는 이야기로,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주부이지만, 엄마와 아내라는 주부로써의 삶을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속으로 곯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적나라게 보여주며,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번 소개할 책은 이처럼 자신이 아닌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젠더적 성향이 있는 소설이다. 비록 20세기이면서 서양권을 배경으로 하나, 남성이 중심인 사회에서 자신을 잃어버려가는 주인공을 그린 소설, <보이지 않는 삶>을 소개한다.


 

버림받은 후 몇 년간 기다는 결혼 생활을 곱씹어보았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 많은 것을 잘못한 것인지,

그래서 남편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는 찾을 수 없었고, 결론은 늘 같았다.‘

 

에우리시 구스망은 안테노르 캄펠루와 결혼한다. 해군 클럽의 가면무도회에서 둘만의 춤을 추었던 그 3분동안의 사랑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끝은 첫날밤에 끝나버린다. 침대보에 얼룩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처녀성을 의심한 남편은 그녀에게 걸레같은 년이란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일동안 상황은 나아졌다. 안테노르는 자신의 아내가 집안일을 잘하며 성적욕구를 해결한다는 쓸모있는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의 가정은 평범하지만 비참하게 유지되기 시작한다.

 

어릴적에는 영특하고 재주많은 그녀였다. 입이 부르트고 손가락이 마비되도록 실컷 연주하고 싶은 욕구와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반대로 기회를 놓치고, 현재는 은행원 남편과 결혼한 그녀. 비록 두 아이를 키우며 안정된 삶을 꾸리게 됐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 기계적인 일과에 점점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에루리지시는 그 공허함의 끝을 찾고자, 억눌러왔던 다양한 자아를 바라보게 된다. 뛰어난 요리 솜씨로 요리 책 한권을 만들기도 하고, 솜씨 좋은 재봉사로 이름을 알리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남편의 반대에 부딪치고 그녀가 이룬 성과들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은 그녀는 무관심과 무시속에서도 도서관에 출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어렵지 않은 문체, 얇은 두께라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동양권이든 서양권이든, 지금이든 과거든 변함없는 남성 중심의 사회라는 점이 안타까움과 함께 묵직하게 전해져온다. 물론, 현재는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많은 사회적 제도로 보호받고 있지만, 여성에게 주어지는 역할인 가사나 육아 부분은 여전히 여성들만의 일로 여겨지며, 가사분담을 할 경우도 몇몇 남성은 도와주는 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물론 여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제도적 문제가 간혹 역차별로 적용되어 남성에게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만약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나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인상깊게 읽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듯하지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아닌 자신 그대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보이지 않는 삶>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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