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로 속 남자 ㅣ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평점 :
추리 스릴러 장르를 꽤나 읽어본 독자라면 특이한 이력으로 알만한 작가가 있을 것이다. 바로 도나토 카리시이다. 그는 국내에서 <속삭이는 자>라는 데뷔작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것은 바로 ‘리얼한’ 스릴러를 썼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범죄학자특히 행동과학 전문가로 이탈리아의 실존 연쇄살인범인 루이지 키아티(폴리뇨의 살인마)에 대한 논문을 작성 중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고, 다섯명의 소녀들의 실종과 팔 여섯 개의 발견이라는 충격적인 도입부와 더불어, 실감나는 묘사력과 흥미진진한 전개, 놀라운 반전을 겸비한 멋진 스릴러로 독자에게 선공적인 첫인상을 남겼다. 이런 그가 오랜만에 돌아왔다. 이번에 소개할 <미로속의 남자>는 읽는 즉시, 아! 역시 도나토 카리시라는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브루노는 누구든 사이코패스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하면 경찰로서는
아주 소중한 증인을 확보하는 셈이다. 아울러 범죄자의 머릿속에 그려진 복잡한
범죄 지도 속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통행권이 생긴다고도 볼 수 있다.
환상과 억누를 수 없는 충동, 그리고 음란한 변태적 욕망과 본능이
다양한 형태로 얽히고설킨 세상을 상대해야 했기에
경찰은 사만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문가까지 불러들였을 것이다.‘
13살 소녀 사만타 안드레티는 친구를 만나러 가던 도중 주차장에서 납치를 당하게 된다. 그 후 그의 가족은 거액을 주고 사립탐정 부루노 첸코를 고용한다. 하지만 어떤 증거나 정황도 없을뿐더러 애당초 사만다의 실종을 믿지 않았던 브루노는 그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이 일은 흐지부지 15년이란 세월이 지나게 된다. 이제는 28살 성인 여성이 된 사만타는 벌거벗은 재 골절된 다리를 하고 도로에서 발견된다. 사만타는 몸에 난 상처며 사라진 10여년의 세월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이고, 그녀의 가족은 이미 붕괴된 상태이다. 어머니는 딸(사만타)을 잃어버린 죄책감에 병에 걸려 사망하고, 아버지 이미 이곳을 떠난 후이다. 결국 그녀가 의지할 곳은 심리 전문가이자 프로파일러인 그림박사와 예전 그녀의 사건을 담당한 탐정 브루노이다.
실종된 소녀가 10여년만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부루노는 실낱같은 증언 한 가지를 듣게 된다. 사만타를 발견한 최초 신고자가 토끼가면을 쓴 사람에 대해 말하고, 부루노는 그와 유사한 유괴케이스를 조사하고, 경찰 데이터 속에 20년전 로빈 설리반이라는 소년의 납치 사건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는 피해자와 제보자가 생겼다. 버니맨의 유괴살인사건, 과연 버니맨은 누구인가? 사만타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읽는내내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스릴러 소설은 오랜만이다. <속삭이는 자>에서 내면에 숨은 살의를 부추겨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잠재의식 속 연쇄살인마’를 보여주고, <이름 없는 자>에서 실종되었던 피해자들이 갑자기 돌아와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의 배후를 그려내는 등 전에 볼 수 없었던 스릴러소설을 출간했던 도나토 카리시가 후속작 <미로 속 남자>. 개인적으로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마치 <룸>을 떠오르게 만들며, 사이코패스의 잔인함보다는 그 잔인함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이야기함으로 더한 공포감을 몰아온다.
이 <미로 속 남자>는 두가지가 교차되면서 진행되는데, 한가지는 기억상실이 된 사만타의 몸의 흔적과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며 그린 박사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쫓는 것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브루노가 피해자가 돌아온 일련의 경위와 제보자의 제보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함께 그려진다.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되며, 마치 영화 <룸>의 여성피해자처럼 토끼굴안에서 여전히 헤메이는 고통받는 피해자와 그 피해자를 만든 범죄자를 추격하는 탐정의 추적, 그리고 극악한 범죄자인줄만 알았던 가해자가 어떤 숨겨진 이야기를 가졌는지, 다양한 의문점을 풀어나가며 쉴새없이 진행된다. 아, 간만에 정말 재밌게 읽었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볼 욕구가 셈솟는 소설!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