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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이색적인 북유럽 소설을 읽었다. 블랙 유머 코드가 가미된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북유럽 소설하면, 그 특유의 서늘함, 오싹함이 매력이 아닐까? 매서운 추위, 앙상한 가지뿐인 숲, 띄엄 띄엄 놓인 오래된 집들, 그리고 범인의 발자국마저 지워버리고 마는 한밤의 진눈깨비. 이번에 소개할 책은 2017년 스웨덴 올해의 범죄소설상, 2018년 북유럽 최고 유리열쇠상, 2019 리브르 드 포슈 독자상을 수상한 북유럽 범죄소설가 카밀라 그레베의 <애프터 쉬즈 곤>이다.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하지만 그 매서운 추위가 살깥을 파고드는 살벌한 범죄소설이다. 모든 것을 알고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인, 과연 그 여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09년 10월, 고등학생 말린은 남자친구와 친구들과 함께 오름베리로 향한다. 우거진 숲 마구잡이로 들쑥날쑥한 돌바위. 어른들의 눈을 피해 그곳에서 술을 마시기 위함이다. 한 껏 취기가 오른 말린은 소변을 보러 돌무덤을 끼고 돌들을 따라 일행과 몇미터 떨어진 곳으로 향한다. 케니나 안데르스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르자 소변을 누기 위해 청바지를 내리는데, 뭔가가 그녀의 허벅지를 간질거린다. 이끼인지, 돌인지, 버섯인지... 정체모를 무언가가 냉기섞인 바람과 함께 느껴진 것이다. 호기심에 라이터를 키고 그 물체를 바라봤고, 감싼 낙옆을 걷어내자. 비명을 지르는 말린, 그것은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두개골이었는데...
8년후. 제이크는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곤하는 소외된 소년이다. 그에게는 이런 따돌림 보다 더 위험한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아빠와 누나몰래, 죽은 엄마의 스팽글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행위. 그렇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게 그의 비밀이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드레스를 입고 밤늦게 산 속을 거닌다.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두렵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해방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순간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소리가 들리고, 늑대인 줄 알았던 것은 피와 흙으로 뒤범벅된 여인이다. 순간 마녀가 미친 살인마가 아닐까 공포에 휩싸였지만, 그녀는 도와달라는 말을 전했고, 그러는 사이 그녀는 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에 뛰쳐나갔다. 얼마 후 그녀가 콜드 케이스를 조사중인 프로파일러 한네라는 것을 알게됬고, 제이크는 그날 그녀가 떨어트린 사건 노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소설은 담당수사관인 말린과 마을 소년 제이크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그리고 말린은 자신이 학생시절 발견한 사체의 미제살인사건을 조사중이며, 이 수사에 프로파일러 한네와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 수사관인 페테르가 함께 한다. 문제는 이 사건을 조사하던 한네가 눈덮인 숲속에서 찢겨진 옷가지와 맨발에 피와 흙으로 얼룩진 채로 구조되는데, 그녀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며, 함께 조사중이던 페테르까지 실종된 상황이다. 한네는 전부터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고, 사건의 기록을 노트로 기록했는데, 그 사건의 열쇠가 될 노트가 소년 제이크에게 넘어가게 된다.
<애프터 쉬즈 곤>은 이런 상황에 매우 적합한 시점으로 번갈아 서술된다. 제이크가 그날 밤 주운 한네의 사건 노트이자 일기장. 그 내용이 말린의 수사와 교차되면서 서술되는 독특한 구성임으로 단순히 인물을 번갈아가는 교차서술이 아니라, 인물과 시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다중적인 교차서술로 진행되며, 이 복잡하고 탄탄한 플롯들이 거미줄처럼 엮어 하나 둘씩 맞물리게되고 사건은 반전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은 서술적인 면과 난민에 대한 적의와 공격성을 경고하는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북유럽 특유의 서늘한 배경묘사가 잘 어울려진 범죄소설이다. 읽어보면 구성이 참 잘 짜여진 범죄소설이며, 북유럽 특유의 낮은 온도를 선사하는 스릴러 소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