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 킬 - 이재량 장편소설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9월
평점 :
지구가 멸망하면 어떤 생명체가 남을까? 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예전 어떤 과학자가 주저없이 ‘바퀴벌레’라고 한 기억이 어렴풋 나면서 보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테라포마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로 까지 이어진 이 만화는 ‘바퀴벌레 vs 인간의 생존전쟁’을 다룬다. 먼 미래 지구의 종말을 예감한 인류가 화성에서의 생존가능성을 알기위해, 미리 바퀴벌레를 화성에 풀어놓았는데, 이 바퀴벌레들이 진화되어 괴물이 되었고, 인간을 학살하자, 사람에게 곤충의 유전자를 심어 대항한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바퀴벌레가 공포, 혐오의 대상이 된 이유는 더러움과 극한의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생존력과 더불어 우리 주변에서 언제라도 출몰가능하다는 접근성에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올 킬>은 이런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심을 소재로, 이웃에 대한 기피와 혐오를 건드리는 근질거리고 오싹거리는 소설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근데 바퀴벌레를 박멸하는 데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크다 이겁니다.
과연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박멸을 해야 하느냐,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바퀴벌레는 인간의 친구다 생각하면서 함께 산다는
그럼 마음가짐으로 공존공영의 길을 가느야.
이렇게 봤을 때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말은.‘
- 이웃과 함께 찾아온 공포의 바퀴떼들!
세상 끝까지 쫓아가 더러움을 박멸한다는 궁극의 서비스는?
어릴적 해병대 출신이자 환경미화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결벽증의 완벽주의자인 고광남. 그는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한 시간의 사투 끝에 변기에 잡아 버린 뒤, 각종 집기들을 세척하고 태우고 몇 번씩 손을 씻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런 강박적인 성격으로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 운좋게 결혼까지 성공하지만 결국 그의 이런 성격으로 아내에게 이혼요구를 받고, 아들을 둔채로 홀로 산자락에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다.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조차 용납하지 않은 그. 이런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혐오 그 자체인 ‘바퀴벌레’가 등장한다.
얼마 전, 유명 건축가 부부가 자신의 오두막 옆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언론에 친환경집으로 소개된 전원주택의 실상은 더러움과 소란 그 자체이다. 그 이웃이 온 뒤로 디젤차 연기가 피어오르고, 음식물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온갖 벌레들이 꼬이게 되고, 몇날 며칠 시끄러운 굉음같은 소음이 시작된다. 그리고 고광남의 집에 등장하기 시작한 바퀴벌레들. 결국 고광남은 ‘해충 구제 전문회사’인 ‘올 킬’에게 바퀴벌레 소탕을 위한 서비스를 신청하게 되고, 하얀 방호복을 입은 올 킬의 직원은 이 모든 사태가 이웃이 원인이라며, 수상한 VIP 프리미엄 서비스를 권하게 되는데...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 박멸한다는 궁극의 프리미엄 서비스의 정체는?
- 읽는 내내, 닭살이 돋고 온 몸이 근질근질한 공포 소설
그 안에 담긴 이웃에 대한 공생과 혐오에 관한 사회이야기는?
최근 들어 한국소설은 문학적인 아름다움, 뭔가 꾸며지고 의미를 덧붙이는 ‘작품성’보다는 ‘신선함’ ‘충격적’인 소재로 눈길을 끄는 것들로 승부수를 띄우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도 그렇다. 우리에게는 익숙하고도 불편한 대상인 ‘바퀴벌레’와 ‘이웃’을 한 데 묶어 버리는 작가의 역량에 놀랍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블랙 코미디와 사회적인 공포감을 친숙하면서도 불쾌감있는 소재로 소화하다니, 실로 놀라울 수 밖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로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공영공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 것이 개인의 이익과 편리와 부딪힐 경우, 불편함과 혐오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제거하느냐 인내하느냐에 대한 문제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은 청결함을 인생의 최대 가치로 생각하는 강박증적인 한 인물의 평온함을 깨트리는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로 시작되지만, 이 바퀴벌레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웃’에 대해, 박멸 할 것인가와 공생할 것인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공포나 스릴러장르를 좋아하고, 기괴함과 불편함을 즐기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독자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로테스크한 묘사력이 마치 온 몸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닐 듯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바퀴벌레를 방역하는 서비스가 시작되자, 사라지는 이웃 부부와 돼지를 키우는 양씨 축사 앞에 배달되는 ‘의문의 고기가 든 택배 두 상자’는 독자의 온갖 상상력을 발동시키며, 점점 바퀴벌레 환상에 시달리며 정신과 삶이 파멸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한 편의 호러 소설을 읽는 듯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또한 그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 이웃의 이사와 계속되는 방역서비스는 인간이 자기 원칙과 윤리를 지키면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드는 나름의 주제성도 가지고 있으니 꽤나 멋진 한국소설이다.
단순 공포소설로 시작되지만 알고 보면 공포는 물론 유머와 비장함,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잘 버무린 소설. 이재량작가와의 첫 만남이라 확실히 평가할 순 없지만, 이 작품으로만 보면 다음작품이 기대되는 저자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