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곤베리 소녀
수산네 얀손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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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스릴러 소설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다. 혹한의 살을 애는 듯한 추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고요한 설원, 바람소리마저 유령의 울음소리 같은 적막한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살인의 풍경. 북유럽 소설가로 알려진 요 네스뵈의 <스노우 맨>이나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연상되는 이미지들이다. 북유럽 스릴러는 이런 서늘한 날씨에 적막하고 건조한 잿빛도시를 배경으로 하며, 마약, 연쇄살인, 킬러, 범죄조직 등을 등장시켜 무게감 있는 적나라한 범죄소설을 선보여 왔다. 헌데, 이번에 소개할 북유럽 소설을 다르다. 이 소설은 ‘북유럽 스릴러 소설의 가능성을 넓혔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태까지의 북유럽 스릴러와는 확연한 색다름을 선보이는 소설. 습하고 기묘한 늪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라와 인신공양 풍습, 알 수 없는 공포심의 늪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소설 <링곤베리 소녀> 소개한다.



삽이 단단한 물체에 부딪혔다.

그러자 마야는 삽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뒤로 나자빠졌다. 그곳에 뭔가가 있었다.

‘뭔가가 있어…….’
그녀가 몸을 숙여 방금 손에 닿은 물건이 뭔지 살펴보았다.

차갑고 뻣뻣하고 길쭉한 것이 마치…….
손가락 같았다. 하나, 둘, 셋, 넷. 

사람의 손이 땅 위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 제물을 원하면 날씨가 험해진다. 제물이 정해지면 분노는 평화가 된다.

늪이 집어삼킨 여덟건의 시체와 한건의 살인미수, 유령의 짓인가? 사람의 짓인가?

 

 

늪지로 유명한 스웨덴의 외딴 마을 모스마르켄. 그 곳 출신인 생물학자 나탈리에는 십여년만에 마을로 돌아온다. 온실효과와 습지의 부패과정에 관한 연구논문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십여년전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증발하듯 마을을 떠났어야만 했던 이유. 그녀는 남모를 과거사가 있다. 가족의 죽음과 자살과 관련이 있는 사건. 아직도 그 진실을 모르는 그녀는 답을 찾기 위해 복잡한 심경으로 고향땅을 밟는다. 그리고 그녀는 또 한 번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나탈리에는 마을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근처에서 한 남성을 만난다. 그는 근처 예술학교의 학생인 요한네스로.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늪지 주변을 달린다. 그렇게 만난 둘은 우연히 말을 섞게되고 호감을 가진채 함께 밤을 보낸다. 하지만 과거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싶은 나탈리에는 복잡한 심경에 빠지고,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난다. 나탈리에가 그를 피하던 어느날, 갑작스럽게 날씨가 변한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황급히 그를 찾아간다. 무언가를 예감한 듯이. 그리고 그 예감대로 그가 평소 달리던 늪지에서 둔기로 인해 머리가 으르러진 채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마야는 가끔 경찰을 도와 사건 현장을 찍곤 하는데, 요한네스의 사건 역시 그녀가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찍은 현장사진에서 기원전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진 미라화된 소녀 시신 ‘링곤베리 소녀’와 요한네스 사건간의 연결고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 찾아간 현장 부근의 늪지, 마야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데.... 늪 속에서 차례로 떠오르게 되는 사람들. 마치 늪지의 제물인 듯, 떠오르지 못하게 장대와 주머니 속 가득한 동전은 기묘한 공포의 냄새를 풍기는데... 과연 사람의 짓인가 유령의 짓인가? 



- 피 한 방울 없이 오컬트적 상상력으로 공포감을 몰고 오는 범죄소설!

불가사의한 늪지의 알 수 없는 죽음, 저주처럼 번져가는 살인의 냄새...

 

 

읽다보면 왜 이 소설이 주목받았지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신선함’ 때문이다. 북유럽소설은 주로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시체 또한 꽁꽁 얼어 그 피해자가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는 순간의 생생한 표정을 담은 채로 발견된다. 또한 추운 기후에 걸맞은 냉혹한 연쇄살인마의 등장, 잔혹한 시그니처, 피가 낭자한 살인사건 현장을 묘사한다. 하지만 이 북유럽 소설은 다르다. 잿빛도시가 아닌 안개가 자욱하고 통제할 수 없는 아름답지만 기분나쁜 늪지, 그 신비스러운 공포의 공간이 배경이다. 또한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령의 이야기, 인신공양이라는 마을 풍습, 마치 저주가 실존하며 현재도 진행중이라는 듯한 불가사의한 실종과 계속된 시신의 발견, 여타 북유럽소설이 하드함과 노골적인 범죄사건 묘사로 스릴러를 표현했다면, 이 소설의 알 수 없는 기괴함과 기묘함을 빚어내는 오컬트적인 분위기 묘사로 서스펜스를 표현한 것이다. 

 

<링곤베리 소녀>가 범죄소설인 만큼, 분명 사람의 행위일텐데 저자의 풍경과 분위기에 대한 묘사력이 훌륭하고,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올것 같은 저주(괴담)나 (제물에 관한)보편적인 역사를 살인 사건과 연류시키면서, 독자가 그것의 정체가 인간이 아닌 혹 초자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서서히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뿌연 안개속을 걷는, 갈피를 못잡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이 이랄까? 반면, 저자의 데뷔작인 만큼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는 데, 범죄소설이라 범죄자와 동기가 있지만, 그것들이 다소' 미신적'이기 때문에 독자가 인정할 만한 합당한 트릭이나 이해가능한 동기나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진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는 허무하다거나 허술하다(뜬금없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스릴러나 서스펜스를 즐겨읽는 매니아독자라면,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이유는 여태껏 보지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북유럽스릴러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과 공포소설과 범죄소설의 분위기를 두루 느껴볼 수 있는 저자만의 개성넘치는 분위기 주도력과 이색적인 소재로 흥미로움을 유발할 '희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오싹오싹한 늪지의 미라, 과연 사라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시체로 떠오르는 늪과 마을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독자의 초자연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눅진눅진한 공포소설로 시작해,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으로 끝나는 범죄소설, 스릴러 매니아라면 도전해보시길! 단, 대중적인 스릴러를 기대하진 말것!


+@ 이색적인 북유럽 소설을 찾는다면, 스릴러소설의 매니아로 여러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오컬트로 시작하나 범죄소설로 끝난다.

트릭, 복선, 반전적인 요소는 기대하진 말것! 초자연적인 소재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다소, 케바케인 작품. (주변에 이 책을 읽고 좋다는 사람과 나쁘다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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