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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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드라마 <라이브>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라이브는 전국에서 제일 바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의 휴먼드라마로, 주인공들은 갓 배속된 형사들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배우 정유미가 연기한 한정오 캐릭터였다. 한정오는 비상한 두뇌로 다른 동기보다 경찰업무에 뛰어난 성과를 보였으며, 냉정하고 철두철미하며 때론 그것이 지나쳐서 당돌해 보이기 까지 한다. 이런 그녀가 한 피해자앞에서 거침없이 무너지게 된다. 그 피해자는 한 어린 학생이자 성폭력피해자이다. 한정오는 사실, 같은 성폭력 피해자였다. 후에 임신을 해 남몰래 불법낙태시술을 받다 죽을뻔한 과거가 있다. 이렇듯, 성폭력은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가 범죄사실을 숨기려한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흐른뒤에도 그 아픔은 고스란히 피해자 혼자만의 것으로 남는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이런 또 다른 한정오들이 나온다. ‘피해사실은 있지만 피해자는 없는 범죄’ ‘몸이 아닌 영혼을 살해하는 범죄’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소개한다.



‘성폭력은 이미 가장 신고율이 낮은 범죄로 알려져 있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나선 사람을 믿지 않고 허위 신고라고 단정짓는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진술을 꺼리게 되고,

범인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며, 재범 확률도 높아진다.

많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거짓말을 한다는 잘못된 편견에 부채질을 할 수도 있다‘

2008년 8월 시애틀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홀로사는 10대 여성 마리는 성폭력을 당하게 된다. 범인은 무단으로 그녀의 아파트에 침입해, 그녀를 제압한뒤 눈가리개를 하고 팔다리를 결박한 두 재갈을 물린 후 강간했다. 당시18세의 어린 마리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신고했지만, 경찰과 그녀의 주변사람들은 그녀를 의심할 뿐이다. 어린 소녀가 관심을 받기위해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고. 경찰은 그녀를 압박수사하듯 진술을 강요했고, 공포스럽고 불편한 상황을 다시 기억해 내며 묘사해야만 하는 마리는 진술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의심가득한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허위신고를 한 것이라 고백한다. 그러나 몇 년 뒤 마리를 성폭행한 강간범이 다른 여성을 강간하면서 검거되고, 그 후에서야 모든 사람들은 마리가 진짜 강간 피해자임을 알게되는데... 왜 마리는 허위신고라 거짓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책의 이야기는 대부분 실제사건과 인물들에게 바탕을 두고 있다. 마리의 이야기는 미국 인터넷매체 퍼블리카의 저널리스트인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이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으며, 각종 강간 피해사례의 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뷰한 해당보도는 2016년 언론인들에 최고로 인정하는 퓰리쳐상 해설보도부분을 수상한다. 즉, 이 이야기는 범죄소설같은 흡입력있는 내용을 가졌지만, 거짓말 같은 실화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는 읽는 내내 왜 성폭력이 강력범죄 중 신고율이 가장 낮은 범죄이며, 오랫동안 ‘피해자 없는 범죄’로 불려 왔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하는 순간, 수사기관과 주변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한다. 그것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나 피해자다운 모습이다. 강간 당신의 상황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묘사 공개해야 하며, 공포심과 슬픔을 그대로 보여주는 눈물과 표정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기대에 못미치면 의심을 받으며, 설령 피해자들이 신고해 재판까지 가더라도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법청에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 상황의 세부 사항을 묘사해야하며, 자신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범인을 보며 증언해야한다. 읽다보면 피해자가 신고후 겪어야할 일들은 성폭력피해당시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소리없이 모든 사실을 묻으며 평생의 트라우마를 짊어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미신고 택하는 피해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길 바라며, 또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법적사회적구조가 바로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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