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ㅣ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평점 :
우리나라에 스릴러,미스터리 분야에서 전설적이 역자,기획자가 있다. 최필원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미스터리 장르의 저변을 넓히며, 국내에 많은 웰메이드 작품을 소개해 왔다. 그렇다면 일본은? 도가와 야스노부이다. 그는 미야메 미유키, 아리스가와 아리스, 와카타케 나나미 등을 데뷔시킨 명 편집자이다. 이런 일본의 전설적인 미스터리 분야의 편집자가 소설 속 캐릭터로 등장한다면? 이번에 소개한 일본 추리소설이자 코지 미스터리인 <조용한 무더위>는 ‘터프하고 불운한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와 ‘도가와 야스노부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인’ 도야마 야스유키가 등장한다. 과연, 미스터리 서점인 살인곰 서점에는 어떤 사건들이 펼쳐지고 두 콤비의 활약은?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하루도 있고, 평온하고 지루한 하루도 있다.
어떤 날이 될지는 끝나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인간은 번번이 그런 당연함을 잊고 자신에게 좋을 대로 예상한다.
바로 내가 그렇다. 최근 별 일 없이 뻔한 하루하루가 계속된 탓에
오늘도 평화로울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터프하고 불운한 저질체력의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와
천재 편집자지만 괴짜에 갑질 상사인 도야마 야스유키의 ‘미스터리 서점 사건기’!
하무라 아키라는 ‘혹사’ 당하는 중이다. 그녀의 나이 40. 체력도 정신력도 떨어진 그녀가 ‘살인곰 서점’에서 혹사당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지인인 도야마 야스유키의 제안 때문이었다. 하무라, 그녀는 불굴과 불운의 탐정이다. 맡은 사건은 반드시 해결하고, 눈앞의 범인은 결코 용서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운이 따르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렇다. 글을 쓰면서 청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다 신주쿠의 한 탐정 사무소에서 프리랜서 탐정으로 일하게 된 것 까지는 좋았지만, 10년 가까이 일한 사무소가 폐업하게 된다. 잠시 쉴까 생각 중이었는데, 공원에서 미스터리 소설 광팬이자 전설적인 편집자인 도야마를 만나게 됨으로, ‘살인곰 서점’에 고용당한다.
‘살인곰 서점’은 주인장인 도야마의 편집성향 그대로, 미스터리 전문 서점이다. 하무라는 탐정일과 이곳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도야마는 하무라에게 미스터리 페어에 쓸 다량의 쿠키를 구워오라하지 않나,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전화를 걸어 도쿄 끝자락에 가서 책을 받아오라 하지 않나,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한다. 목을 졸라버리겠다며 악담을 하는 하무라. 이런 그녀에게 더한 ‘의뢰’가 들어오고, 첫 의뢰는 얼마 전 자신이 직접 목격한 ‘덤프트럭 다중충돌 사고’에 관한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해 죽은 딸의 파란수첩을 찾아달라는 사고사망자의 어머니. 누가 사고현장에서 왜 ‘수첩’을 도둑질 한 것일까?
-묵직한 사건에 정반대의 가벼운 캐릭터들의 조화? 이것이 '코지 미스터리'다
'살인곰 서점'에 어서오십이오!, 서점이란 배경이 주는 매력!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살인곰 서점을 무대로, 그 곳 2층에 탐정사무소를 차린 ‘운 나쁜’ 여탐정 하무라가 1층 도야마의 서점인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6개의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반전미 넘치는 미스터리 단편이 실려 있다. 다중 충돌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그 피해자의 유족의 의뢰를 받아 피해자의 도둑맞은 수첩의 행적을 쫓는 <파란 그늘>, 사건 의뢰가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조용하고 무더운 여름날의 서늘한 예감을 담은 〈조용한 무더위〉, 35년 전에 실종된 작가의 행방을 추적하는 〈아타미 브라이튼 록〉, 하세가와 탐정사무소 시절의 동료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 하드보일드 작가의 호적 도용 사건을 조사하는 〈붉은 흉작〉, 그리고 스파이소설 작가 개빈 라이얼의 사인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성야 플러스 1〉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는 책 안에 수록되어 있는 미스터리 용어, 작품, 작가 등에 관한 짧은 소개 글이 마치 도야마 점장이 소개하는 듯한 재미난 어투로 쓰여 있다.
뜨거운 감동, 묵직한 서사는 없다. 그저 무더운 여름 한숨 시원한 바람처럼 가볍게 읽기 좋은 6편의 단편이다. 하지만, 단편만이 줄 수 있는 스피디한 전개가 독보이며, 저자가 신경 쓴 세가지 요소인 반전, 복선, 결말이 잘 갖춰져 있다. 또한 인간의 악의에서 비롯된 다소 묵직한 스토리가 진지한 모드가 아닌 투닥이면서도 콤비를 이루는 가벼운 모드의 캐릭터가 끌고간다는 점이 코미 미스터리를 완성해낸다. 마지막으로 ‘서점’이라는 무대에 관해 언급하자면, 소설 속 ‘살인곰 서점’은 각종 미스터리 신간은 물론 구하기 힘든 희귀한 고서까지 구비한, 미스터리 팬들의 성지 같은 서점이다. 때문에 애거서 크리스티, 대프니 듀 모리에, 요코미조 세이시까지 동서고금의 명작 미스터리 작가의 작품이 거론되며 오마주되고, 소설이 끝난 뒤에는 부록으로 재미난 해설까지 있으니 미스터리 팬들에게는 제법 구미가 당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