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
L.S. 힐턴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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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봉작 <상류사회>란 영화가 떠오른다. 학생에게 인기와 존경을 받는 경제학 교수 태준, 그의 아내이자 미래미술관의 부관장 수연이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상류사회’에 올라서기 위해 어두운 거래, 추악한 술수를 써가며 기회를 만들어가는 ‘욕망’과 ‘분투’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더 이상 부부가 아니고, 인격체가 이니게 된다. 돈과 명예 권력 향락에 취해가며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늘 유혹에 흔들린다.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산다기보다, 자신이 세운 가치관에 가장 중대한 욕구를 해소할 위치를 거머쥐기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사소하고 긍적적일수도, 거대하고 부정적일수도 있다. 여기, 욕망앞에 흔들리다 자신을 잃어버린 여인이 있다. <마에스트라>는 한 여인이 성공을 꿈꾸다, 그 꿈에 먹혀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정직했으나 부정당하고, 결국 복수를 꿈꾸지만, 복수가 아닌 스스로 타락해 끝내 몰락으로 이어진 여자. 주디스를 만나보자.



“돈 때문이 아니였어요. 돈은 그냥 따라왔죠”

“그럼 복수였나?”

“아뇨, 그건 너무 단순하잖아요. 복수가 아니였어요. 흥미도 아니였어요”

“그래서 뭐였어?”

아마도 나는 할 수 있으니까 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왜 이런 일에 논리적으로 굴어야 하지? 이건 섹스 같은 것이다.

어떻게든 해야 할 이유를 원하고, 어떻게 하면 기분이 찢어지게 좋은지 잘 아니 말이다.

- 부, 권력, 성공, 복수를 꿈꾸다 자신을 잃어버린 여인.

창녀, 사기꾼, 살인범, 욕망의 절정을 헤매다 괴물로 진화하는 주디스.

주디스는 미술품 경매 회사의 직원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일에서 성공하고 싶지만, 실상 여자라는 점과 별다른 배경이 없는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당장 경제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친구 린을 만나, 그녀의 제의로 샴페인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이제 낮에는 미술관 직원, 밤에는 에스코트 여성. 그렇게 이중생활을 하며 낮에는 꿈을 쫓고, 밤에는 돈을 쫓게 된다. 그날 그 사건에 연류되기 전까진 말이다.

하루는 미술관 상사가 가품을 진품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이를 발견한 주디스는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동분서주 움직인다. 하지만 그녀의 상사는 오히려 그녀의 근무태도와 동료사원들간의 관계를 문제 삼으며 그녀를 부당해고하기에 이른다. 주디스는 좌절과 분노를 느끼며 이 수상쩍은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가난과 불평등의 현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당장 할 일은 밤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그 암울한 때, 바의 손님인 제임스의 여행 제의가 들어오고, 돈을 받는 조건으로 친구 린과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주디스와 린은 제임스를 떨어트려 놓고, 젊은 남성들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제임스에게 안정제를 먹여 잠재운다. 이 작은 일탈은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 이 사고같은 살인을 매장한체, 돈을 챙겨 이탈리아로 도주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예술세계와 상류사회에 집입하기 위해, 온갖 속임수와 향락으로 상대들을 매혹하기 시작하는 주디스 그 끝은 과연...?

- 페미니즘, 노력주의 성공을 외쳤지만, 남은 건 타락한 인간의 악한본성과 쾌락주의 뿐.

퇴폐적이고 스릴있는 삶, 추구할수록 더 깊어지는 욕망과 죄의 늪.


이 책은 한 여성이 일적인 성공을 꿈꾸지만, 자신이 가진 성별과 지위, 환경 때문에 능력과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따라 힘을 가지고 복수를 하길 다짐하지만, 결국 욕망과 본능에 사로잡혀 매춘, 사기, 살인 등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자기파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원래 꿈은 잊혀져가고, 단지 수단이라 생각한 부분들이 목적이 되고, 일상으로 변화함에 따라, 한 인간이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되돌아오지 않았을 경우, 상황은 점점 악화되며, 그 속에 자신의 정체성과 원래 수단에 불과한 것들이 삶의 목표고 미래로 변질되가는 안타까운, 어쩌면 미련하고 참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르는 에로틱스릴러지만, 글쎄, 에로틱이라는 점은 노골적인 성관계 묘사 때문에 인정되지만, 스릴러적이라는 부분은 독자에 따라 불인정할 수도 있다. (만약 스릴러를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인정되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추리스릴러 분야의 이야기는 살인범의 살해행각의 잔혹함, 병적인 사이코패스 성향, 피해자의 심리에서 읽혀지는 서스펜스와 공포감이 주된 소재 혹은 감정선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살해방식이 엄청나게 잔혹하거나, 놀라운 트릭을 선보인다든가, 치밀한 복선과 반전이 있다던가 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의 ‘스릴러’는 한 인간의 욕망, 그 본성이 어느 정도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에서 비롯된다. 처음 사고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는 두려움과 조급함에 떨지만, 그 이후의 살인들은 영리하고 계획적이며 오히려 자신의 죄가 발각되지 않음이 놀랍다는 경탄과 여유로움을 보이까지 한다. 즉, 한 인간이 욕망에 사로잡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그 한계점은 끝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주인공도 독자도 '사람'이기때문에 언제든 한순간에 ‘괴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인간본성에서 비롯된 ‘스릴러’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읽어보자. 그간의 범인과 경찰의 추격이라는 스릴러가 아닌, 인간의 쾌락과 타락이 주는 어두운 이면을 노골적이고 과격하게 표현하는 좀 더 이색적인 방면의 스릴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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