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정명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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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미니즘’에 관한 열풍은 문학계에도 불고 있다. 문학과 비문학 경계없이 다양한 장르로 이야기 되는 페미니즘. 그 원래 뜻은 무엇일까?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근래에 여성을 향한 잔혹한 범죄가 이어지고, 미투운동과 여성혐오현상등이 사회 일면을 차지하면서, 과연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과, 그 것을 올바르고 타당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만 할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 그것에 관한 역사추리소설이 있다. 좀비능력자로 알려진 정명섭작가가 최근에 역사소설에 눈을 돌렸는데, 이 책은 역사추리소설속에 페미니즘을 담아낸다.



‘화연은 화를 참지 못했다.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틈만 나면 무시하고 따돌리는 세상에 분노가 일었다.

방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자

그 비뚤어진 관념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여자들을 얽매는지 깨닫고 있었다.’

- 객주를 운영하던 방 여인, 열녀가 된 별당 아씨, 생계를 홀로 책인지는 김소사...

그녀들이 남긴 유품에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한 여인 화연의 이야기

조선 정조 시대. 아버지 장환길은 사도세자의 페위 교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역모에 가담했다는 의문의 투서로 인해 근신에 처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살해된다. 목격자도 증거도 없이. 포도청은 이 사건을 자살로 마무리하지만, 화연이 생전에 아버지가 역모 혐의를 쓰게되버린 것이 일종의 함정임을 깨닫게 된다. 저잣거리에서는 임오화변의 가담자들을 숙청하려는 대비의 흑막이라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화연은 아버지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고, 담당 포교 완희를 찾아간다.

완희는 화연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재조사하는 대신 뜻밖의 조건을 내건다. 그것은 화연이 죽은 여인들의 시신과 물건을 정리하면, 그녀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볼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화연은 완희의 조건을 수락하고 유품정리사가 된다. 하지만, 유품의 주인들, 그 여인들의 죽음이 하나같이 의심과 의문스러운 구석이 있다. 대체 그녀들은 왜, 누구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일까? 화연은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그녀들의 억울한 죽음 뒤를 파헤치기로 하는데...

- 추리역사소설에 페미니즘을 엮어내다.

역사적 사건과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탁월한 상상력과 현시대의 시사를 더한 소설!

최근 여성혐오범죄의 증가에 따라, 여성의 신체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각종 운동과 법률이 논의되고 있다. 이것은 페미니즘으로 봐야할지, 여성우월주의로 봐야할지에 관한 문제 또한 제기되는 추세이다. 이런 가운데 좀비 능력자로 알려진 정명섭작가가 최근 역사소설, 상해임시정부를 쓰더니, 이번에는 추리와 역사소설의 장르에 페미니즘을 엮어낸다. 과연 변화에 탁월한 작가이다!

유품정리사는 여인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이자, 당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임오화변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인 아버지, 그리고 당시 유교사상에 의해 낮은 인권으로 도구나 수단으로 죽어가야만 한 여성들의 죽음, 그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이야기 한다. 겉으로는 열녀라 칭송 받지만 명예 때문에 가문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했던 여인, 노름꾼 남편이 자신을 딴 사내에게 팔아넘겨도 생계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했던 여인, 낮은 신분 때문에 이복 오라비에게 강제적인 추행을 당하고 결국 정조를 잃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아야 했던 여인. 읽다보면 이 부당함과 불합리함이 당시시대부터 지금까지 나아졌지만, 사라지지 않았음에 더 안타까움과 비탄섞인 한숨이 나온다.

물론, 지금과 당시의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힘있는 자, 권위있는 자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이들이 소리 소문없이 피해를 보고, 사라지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어가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은 지속되고 있다. 읽다보면, 그 참상에 분노와 슬픔 안타까움이 일어나고, 이런 이들이 자신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때, 작지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싸워주는 존재의 등장은, 어쩌면 조그마한 가능성, 앞으로 이 비극이 축소되고 축소되다 소멸될 것임을 이야기 하는 희망의 단편이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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