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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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하지원 주연의 영화 <허심관 매혈기>를 기억하는가? 영화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한 가난한 노동자이자 가장인 허심관의 고군분투기이다. 허심관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아홉 차례나 피를 팔게 된다. 그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저자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통해, 한편의 블랙코미디로 그려나가는데, 저자는 ‘매혈’(피를 파는 행위)을 통해, 가족간의 정, 인간간의 속 깊은 애정을 여운깊게 그려준다. 여기, 같은 매혈이지만,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이 아닌, 과욕과 광기로 얼룩진 이야기가 있다. 그 참상이 너무도 비극적이라, 실제 시대상(사건)을 그려낸 것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자의 체력이 아닌 생명을 소진해가며 쓰여진, 인간의 무자비한 탐욕의 괴기스러움을 그린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이다.



‘딩씨 마을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에, 가을의 끝이기 때문에, 황혼이기 때문에,

마을이 위축되고 사람들도 시들었다. 위축된 상태에서 세월도 따라서 말라버렸다.

마치 땅속에 묻힌 시신 같았다.

세월이 시신 같았다.

평원 위의 풀들도 말라버렸다.

평원 위의 나무도 말라버렸다.

평원 위의 모래흙과 농작물도 피처럼 붉어지더니 이내 시들어버렸다.‘

 

 

 

- ‘나는 열병(에이즈)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독살 당한 것이다.’

매혈을 일삼다 열병에 걸린 딩씨마을사람들. 그들의 죽음보다 무서운 탐욕!


 

중국의 한 마을, 당시 가난에서 벗어나, 커다란 양옥집에 살길 바라는 마을사람들은 딩후이의 소개로 매혈을 시작한다. 딩후이는 정부 주도의 매혈운동이 시작되자, 사설채혈소를 차려 사람들을 꾀어낸 것이다. 그는 비위생적인 주사기를 사용해, 온 마을에 열병(에이즈)를 퍼트리고, 이 일로 인해 많은 부를 축적하기에 이른다. 마을사람들은 복수를 하기위해 ‘나’에게 독이든 토마토를 먹이고, 그렇게 ‘나’ 딩샤오창은 아버지(딩후이)의 악행으로 인해, 열두살의 나이에 독살당하고 만다.


 

‘나’는 마을사람들을 지켜본다. 할아버지의 자취를 따라, 그의 꿈을 통해. 할아버지인 딩수이양은 아버지와는 달리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평생을 학교 잡일을 도맡아 했지만, 때때론 아이들에게 어문수업을 해주어 많은 이들이 할아버지를 따랐다. 이제 그것도 과거사이다. 열병으로 인해 시체는 산처럼 쌓였고, 병에 걸린 사람들은 가족에게 병을 옮길까 두려워, 자발 혹은 강제로 학교에 모여 살게 된다. 황량한 마을, 시체들이 걸어다니는 풍경, 마을은 이제 공동묘지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갈구한다. 삼촌인 딩량과 그의 친척의 아내인 링링은 열병으로 고립된 채, 외로움을 불륜이란 사랑으로 치유한다. 자건주와 딩유에진은 호시탐탐 마을을 책임지는 책임자의 지위를 노린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 딩후이는 정부에서 나눠준 ‘관’까지 팔아가며, 끊임없는 물욕의 늪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늪은 '누군가'의 살인이다.



- 중국문단의 가장 폭팔력 있는 작가가 쓴, 판매금지 소설!

물직적인 욕망이 빚어낸, 인간의 지독하고도 처절한 참상을 그려내다.

 

 

서평을 쓰기 쉽지 않다. 여운이 아닌 휴유증이 남는 소설이랄까? 어떤 공포보다 무섭고, 어떤 재난보다 끔찍하고, 비극이란 말로는 한없이 부족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루쉰문학상과 라오서문학상을 수상하고, 중국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거머진 중국문학사상 최고의 폭팔력을 가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소설인데, 이 이야기가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된다. 왜? ‘실화’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경제 발전을 위해, 피를 사고 파는 행위인 ‘매혈운동’을 허가한다. 가난하고 우매한 이들은 좀 더 잘 살고 싶어, 서로 피를 매매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물질만능주의 결과는 집단 에이즈 감염이였다. 그리고 시작된 외면과 먹고 먹히는 관계들.


 

저자는 이 실화를 12살난 소년의 눈으로 이야기 한다. 화자는 열병(에이즈)에 걸린 마을사람들의 원한으로 희생당한 ‘나’이다. 땅에 뭍힌 ‘나’는 땅 위의 할아버지의 시선과 꿈을 따라, 마을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죄없는 아이의 눈을 통해 보는 사람들의 참상은 객관적이고 정적이나, 인정과 생명을 모조리 앗아가는 ‘말살’ 그 자체이다. 순수한 눈으로 그려나가는 살풍경,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 장르이나 실화에 기인한 이야기. 서로 극명하게 반대되는 요소가 있기에,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시체는 쌓여가고, 마을은 황폐해져간다. 한편의 ‘좀비영화’를 연상시킨다면, 이해가 가겠는가? 그런 와중에도 저자는 끊임없이 각자의 욕망과 꿈에 매여, 무언가를 손아귀에 쥐려는 인간의 민낮, 그 본성을 다양한 인물을 통해 그려나간다. 어떤이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불륜을 저지르는 사랑이란 욕정에 불타오르고, 또 다른 이들은 악행을 일삼으며 권력지위를 얻고자 비열한 행위를 일삼으며, 또 한 인간은 악의 화마가 씌워진 체, 광기어린 물욕을 보이다, 스스로의 갈급함에 인간으로서는 있어서는 안될, 상상 못할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저자는 이 소설을 어둠을 쓴것과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것이라 말한다. 이 미쳐가는 지옥도 같은 판국에 할아버지인 딩수이양이 노쇠한 몸으로, 인정과 동정심을 보이며, 마지막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모습은 독자들의 숨소리마저 빼앗을 정도의 고독과 아픔, 슬픔의 수단이었기에, 어쩌면 미약하게나마 존재해온 정의와 희생의 단편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아! 책장을 덮고 난 후에야 이해가 간다. 왜 광고문구가 ‘강한 심장을 준비하라!’는 말인지. 극한의 놀이기구를 탈 때 심약자는 타지 말라는 말처럼. 이 책은 독자의 심장을 쥐고 흔들다 못해, 갉아먹고 태워버리는 느낌이다. 읽어보자. 소설이 줄수있는 감정의 끝, 그 극한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단 여운보다 강한 휴유증이 있으니 주의할 것!

+@ 만점을 준다. 이 책 여러모로 만점이다. 말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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