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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유명인사들은 자서전(회고록)이나 자전소설을 쓴다. 둘 다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애를 기록한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저자가 어느 정도 ‘개입’하며, 얼마만큼 ‘솔직함’을 가지고 쓰는가 이다. 즉, 자서전은 삶을 회고, 기록한 전기문이라면, 자전소설은 경험을 묘사한 소설인데, 저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재해석하거나 미화하기도 한다.
여기, ‘자전적 글쓰기’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저자가 있다. 아니 에르노, 그녀는 자서전과 자전소설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분명 자전 ‘소설’ 작가인데, 그녀의 작품에는 어떠한 픽션도 없으며, 판단, 은유, 비유가 배제된다. 자신을 철저히 소재로서 취급하고, 작품 한 가운데 올려놓아 철저하게 해부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부끄러움’은 저자의 생애 중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다룬다. 서슬을 스스로에게 휘두르는 작가, 그럼에도 무표정한 태도에 독자가 기겁,비명을 꾹 참아야만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는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저자 아니 에르노-
-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낫을 든 아버지, 내 나이 12살 이었다.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나(아니 에르노)의 나이 12살, 6월 어느 일요일 정오였다. 가게 손님이 모두 돌아간 후 우리가족은 식사를 했다. 어머니의 심기는 불편해져있었다. 아버지와 한바탕 벌인 말다툼은 밥상머리에 앉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잠시 후 엄마는 화가 날 때마다 그랬듯, 부엌으로 가 꿈지럭거리며 연신 아버지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묵묵히 앉아있던 아버지는 돌연 숨을 가쁘게 내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로 악을 썼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붙잡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곧이어 엄마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날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컴컴한 지하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목덜미를 쥐고 다른 손에는 낫이 들고 있었다.
그날 이후, 충격적인 장면과는 다르게,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고, 그 날의 일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그날의 사건’은 내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기독교 사립학교에 입학하자, 우리가족의 세계와 사립학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난하고 천박한 부모, 그것이 나의 존재의 뿌리라는 것. 그 불편함을 ‘부끄러움’을 지금 응시하려 한다.
- 날고기를 씹어 삼키는 듯 한 자전소설 ‘부끄러움’.
양념 없이, 비릿하고, 노골적이다, 프랑스식당에서 썰어먹는 ‘레어 스테이크’ 같다!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다. 재미나 흥미를 위한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어린시절, 평생 트라우마가 된 사건을 겪고, 그 일로 인해 자신이의 ‘출생’과 ‘계급’을 실감한다. 이는 곧 ‘부끄러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고, 저자는 나이가 먹은 뒤에도 ‘부끄러움’을 삶의 방식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부끄러움, 수치심, 창피함. 이 감정들은 누구나 한번쯤 겪는 감정이지만, 감히 마주하진 못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처지(상황)나 부재, 나약함(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감정을 애써 외면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아니 에르노는 다르다. 끝없이 자신을 벗겨내고 몰아세운다. 작품위에 저자는 알몸으로 해부되는 시체나 다름없다.
저자의 ‘부끄러움’은 어떠한 동요도 없다. 유년시절의 흉포한 사건을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어떠한 양념도 없이 말이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냥, 인류학자의 관점으로 담담하고 냉정하게 말이다. 때문에 독자는 당황스럽다. 조리되지 않는 날 것의 감정, 그 것도 모르는 사람의 심연 속 비밀스럽고도 고통스러운 부분을 지켜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부끄러움’은 처연하다. 그리고 강렬하다. 피가 뚝뚝 흐르는 생고기처럼.
저자는 독자의 식탁앞에 레어 스테이크를 내놓았다. 거의 생고기나 다름없는. 고급진 프랑스 식당에서 화려하게 플레이팅 된 음식들(다른 프랑스문학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과감하게 노골적인 생고기를 턱 올려놓은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면 야만적이다, 추하다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부끄러움’이란 원초적인 감정을 누구보다 근본적으로 그려낸다. 그것들이 도덕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떠한 양념과 향신료, 굽기도 없이 맛보야 하는 작품. 생고기라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게 고기 본연의 맛(감정)임을, 에르노는 가차없이 맛보여 준다.
+@ 이런 종류의 프랑스 현대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어,
좋다 나쁘다, 재미있다 재미없다를 논하기 어렵다. 때문에 감상 위주의 서평을 쓰게 됬다.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문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정도로 '자전적 글쓰기'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녀는 자신이 '체험한' 것만을 쓰는 작가로, 첫경험,사춘기,결혼,낙태,유부남과의 연애,유방암투병,어머니의죽음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해 비난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혁신적' '독보적'이란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