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소문을 타고 더블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소설이 있다.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전철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라는 한줄평만 봐도 그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도쿄
타워>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소설이다. 오다기리 죠 주연의 영화화와 히야미 모코미치 주연의 일드화로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내에서는 무대연극까지 선보여진 작품이다. 하나의 소설이 이렇게 까지 많은 매체로 바뀌면서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대체 그 강력한 호소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출판사의 광고,
독자들의 평으로 ‘슬픔’을 예감하고 읽는 소설, 그러나 반드시 울게 되는 이야기. 세상의 모든 자식들의 눈물을 쏙 빼는 <도쿄
타워>를 소개한다. (2006 서점대상 수상작)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랑이 있으나 부모가 아이를 귀애하는 것 이상의 사랑은
없다.
사랑을 원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주는 입장이 되어 보고서야 겨우 조금씩 깨달아간다.
예전에 부모가 내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가.
그날의 일을 깨닫고, 지금에야 나 자신이
그것과 똑같이 되려고 마음먹는다.
그때서야, 인간은 확실한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인지도 모른다.‘
-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전철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
책임감 없는 아빠, 철없는
아들,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엄마.
규슈 치쿠호 지역, 폐광이 머지않은 다
스러져가는 공간, 그 속에 ‘나’는 유년시절을 보낸다. 책임감 없는 아버지는 바람 같은 사람으로, 제 마음대로 왔다갔다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존재이다. 때문에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나’는 가난을 모르고 자란다. 일과 육아를 하면서도 아들의 일이라면 두 손 걷고 나서며, 모든지
밀어주는 엄니가 있기 때문이다. 엄니는 참 강인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환한 웃음과 유쾌한 말투의 소유자이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취미로 화투를 치던 사람. 그런 엄니 때문에 ‘나’의 유년시절은 가난했지만 황폐하진
않았다.
소년기가 지나 어른이 되갈 무렵, 엄청난
재능이나 열정이 있는건 아니였지만, 미술에 관심이 생겨 미술학교 진학을 준비한다. 학교생활에 충실하진 않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졸업하고,
운좋게 도쿄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한다. 작은 시골을 떠나 큰 도시로 상경한 ‘나’. 커다랗고 화려한 도쿄타워를 보며 도쿄드림을 꿈꾸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쪽방에서 무기력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간다. 결국 졸업도 하지 못하고 빚만 쌓여간다. 그렇게 한심해하던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가고, 그러던 중 엄니의 소식이 들려온다. ‘암’. 엄니와 ‘나’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시작하는데...
- 예고편에 스포일러가
다된 영화나 다름없다. 하지만 독자는 반드시 울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후회한다는 자식’ 세상의 모든 ‘나’(마사야)의 이야기.
<도쿄 타워>는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전철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라고, 또한 저자는 소설 첫 파트에 결말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동경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상경했었고 결국 떨려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던 내 아버지와, 이곳에 나왔다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나,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런 환상을 품은 일이 없는데도 도쿄까지 따라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도쿄 타워 중턱에 영면한 내 어머니의
조그만 이야기이다.‘라고. 이 문장으로 이미 결론은 다 나와있는 셈이다. 이 소설은 가족소설이고 결말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때문에 독자는 단단히 준비된 상태지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슴 한 구석이 콕콕 쑤셔온다. 그리고 마사야가
준비되지 않는 이별을 맞이해야만 할 때, 독자 또한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솟구친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예고편에 스포일러가 다된 영화나 다름없는 <도쿄 타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콧잔등을 시큰거리게 하더니 끝내
통곡하게 만든다. 그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자전소설에서만 나오는 ‘솔직함’과 모두가 공감할만한 ‘불효자는 웁니다’ 라는 회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저자 릴리 프랭키의
자전소설이다. 그는 별거는 하지만 이혼은 아닌 편모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자랐지만, 열심히
살기보단 제멋대로 살아갔다. 그리고 효도할 만큼 철이 들 무렵, 이미 어머니의 병환은 짙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화가 나고,
붙잡을 수 없는 엄마의 몸과 영혼 앞에 저자는 끝없이 무너져간다. 마지막 그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엄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글을
써내려가는 것뿐이다. 때문에 문장하나하나는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솔직함’이 묻어나며, 묘사는 감정을 그리는게 아니라 그가 느낀
날것의 고통, 슬픔, 통탄, 한스러움이 가감없이 꾹꾹 눌러 써져 있다. ‘문학’을 위해 쓰여진 다른 소설처럼 ‘잘 보이고 싶어서 쓴 작품’이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 쓴 나와 어머니의 추억과 편지의 일부분인 것이다.
<도쿄 타워>는
힘이 있다. 작위나 창작으로 만든 작품성이 아니라, 경험과 공감으로 쌓아진 감정의 무한이라는 힘이. ‘불효자는 웁니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들을 한 인물과 그의 가족의 일화로 묶어진 소설. 책장을 덮은 뒤 엄마를 꼭 껴안게 되는 <도쿄 타워>를
읽어보자. 특별함이 없어도 여운을 남길 작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