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머무는 곳
히가시 나오코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상상하고, 그 후의 ‘사후세계’를 그려내곤 한다. 세상에 불변의 진리는 없다지만, 모든 생명이 탄생과 함께 죽음이 시작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최근 가볍고 신선한 소재의 미스터리소설을 선보이는 출판사 소미미디어에서 ‘죽음’ ‘이별’이라는 강렬하지만 무거운 소재를 다룬 소설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혼이 머무는 곳>은 이승에 미련이 남은 죽은 이가 원하는 사물에 깃들어 이승에 머물 기회가 주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당신이 소중한 사람을 남기고 죽게 된다면? 미처 이루지 못한 소망을 두고 떠나야 한다면? ‘영혼관리국’에서 당신에게 특별한 기회를 드립니다! 과연, 당신은 어떤 사물로 이승에 머물겠습니까?



“당신이 그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동안에는 이승에 있는 어떠한 물건에 깃들 수 있습니다.”

“이승의 물건?”

“네,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생각나는 걸 말해 보세요. 사물이 되어 한 번 더 이승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당

신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을 게 분명해요.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안됩니다.

살아 있는 것에는 이미 먼저 깃든 영혼이 있으니까요. 뭐,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만.”

-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이어주는 ‘영혼관리과’

‘이승에 미련은 없나요? 원한다면 이승의 물건에 깃들어 머무를 수 있습니다’


40대에 인생을 마친 ‘나’. 오랜 투병 끝에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죽은 후 가게 된 곳은 ‘영혼관리과’. 죽은 후 흘러간 곳에, 영혼관리과 직원이란 사람이 시커먼 구멍을 빠끔히 열며 묻는다. ‘저는 영혼들의 희망을 들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나’가 이승에 미련이 있는 강한 기운을 뿜고 있고, 그 소망을 이뤄주겠다고 한다. 단, 조건은 살아있는 것은 이미 영혼이 깃들어 있으니, 사물로 태어나 다시 이승 체험을 해야한다는 것. ‘나’는 남편 신지와 아들 요이치가 그리워 그 제안을 수락한다. ‘나’의 아들 요이치는 중학교 연식야구부이다. 마지막 공식 시합을 꼭 보러가겠다고, 힘내라고 말한 말을 지키고 싶어 아들 요이치의 로진백 안의 송진가루가 되기로 한다. ‘나’는 아들을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아들의 마지막 시합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죽은 뒤 사물이 되어 소중한 사람 곁에 머물 수 있다면?

사람으로 죽었으나 사물로 다시 태어나는 기이하지만 따뜻한 단편들

일단, 소미미디어의 책들이 그렇듯, <혼이 머무는 곳> 또한 독특한 소재와 가볍게 읽히는 문장이다. 다소, 어렵고 무거울수 있는 ‘죽음’과 ‘사후세계’ ‘환생’이란 키워드를 무게감을 거두고, 일본 특유의 가볍고 포근하게 다룬다는 점이 다시한번 출판사의 작품선택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혼이 머무는 곳>은 11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죽은 후 ‘영혼관리국’으로 가고, 그 곳에서 이승의 사물도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엄마는 아들의 송진 주머니, 딸은 엄마의 보청기, 남편은 아내의 일기장, 추억이 깃든 놀이기구, 사랑하던 사람의 머그컵 등, 일상생활 속 남겨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에 혼이 깃드는 것이다. 영혼들이 이승에 미련이 남은 것은 어떤 목적이나 목표가 아니라, 사랑하던 사람, 그리고 그들과의 추억, 혹은 그들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점이 공감과 애잔함을 가져온다.


죽은 후 사후세계를 다룬 소설은 많다. 그만큼 사람은 죽음 후, 그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만큼 궁금한 또 하나는 내가 죽은 후의 남겨진 세계와 사람들이라는 것. 이 소설은 그 점을 새롭게 부각시킨다. 빙의나 환생같이 사람에게 혼이 깃들고,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남겨진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쌓인 오해를 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겨진 사람의 물건에 혼이 깃들고, 조용히 그들의 세계를 지켜보다 사라지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되려 더 씁쓸하다.

남겨 두고 가는 자의 아픔, 남겨지는 자의 슬픔, 그리고 그 뒤에 새로이 만들어 지는 복잡미묘한 생각과 감정들을 이야기한 책, 저자가 시인이라서 인지 그려지는 듯한 분위기와 함축적인 단어선택이 여운을 남기는 책. 아름답지만 씁쓸하고, 다채롭지만 허망한 이야기. 죽은 후 어떤 사물로 태어날지 상상해 보며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소재는 신선하고 단편만큼의 재미가 있고 문장 또한 매력적이나,

각각의 짧은 사연이 줄거리여서 깊이있는 이야기와 진한 감동은 안타까울지도.

전부 해피엔딩의 온기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씁쓸하고 비정한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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