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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거짓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하는 말을 이른다. 거짓말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해나 결과에 상관없이 속이고자 하는 의도 전부를 거짓말을 정의하고, 볼프와 바움가르텐은 진실하지 않은 언사 중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만을 골라 거짓말로 정의한다. 이렇게 거짓말에 관한 철학자의 다양한 해석이 있는 만큼,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위기를 만회하기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익을 얻기 위해 등 수많은 이유로 거짓말을 하곤 한다. 대부분이 진실을 덮고 정직함을 외면한 거짓부렁이지만, 여기 남을 배려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하얀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다소 만들어진 동화 같고, 억지가 만연한 슬랩스틱 코미디 같지만, 앞선 철학자들보다 섬세하고 감동적이게 해석한 미치오 슈스케의 ‘거짓말’는 무엇일까?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 그런 생각은 아무리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행동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선택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새로이 만드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금을 만들면 된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세계라도 진심으로 바라면 사람은 만질 수 있다.
두 다리로 설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 유쾌 발랄 엉뚱 괴상한 살해모의에 동참하기로 한 평범한 사람들!
약간의 거짓말과 간절한 염원이 전하는, 기분 좋은 배신과 먹먹한 반전.
34세 기리하타는 인기 라디오 채널의 훈남 DJ이다. 일절 사진도 프로필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멋진 목소리만으로 청취자들은 이미 그를 훈남으로 정의 내려버린다. 몰론 전파를 타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일화나 사연도 한 몫을 한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모험은커녕 경험도 없는 히키코모리의 학창시절을 지낸 서른넘은 모태솔로, 멋진 목소리에 매치 안되는 못생긴 외모를 가진 평범 이하의 남자이다. 더군다나 라디오에서 말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나 다름없는 전부 지어낸 거짓말일뿐. 그러던 어느 날, 이 거짓말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하고 만다.
퇴근 후 기리하타는 평소처럼 바 if로 향한다. 그곳에서 몇 잔의 술과 소소한 담소로 하루의 피로를 털어리는게 그의 일과이다. 친구나 다름없는 바 멤버들과 장난스런 농담거리를 주고받는 와중에 별안간 벼락과도 같은 침입자 미카지 케이가 등장한다. 비를 맞은 듯 흠뻑 젖은 모양새의 아름다운 여인. 미카지는 기리하타의 팬이라 말하자, 마음을 빼앗긴 탓인지, 자신의 외모콤플렉스 탓인지, 기리하타는 바 멤버인 게이 호스티스를 자신으로 속여 소개하고 만다. 약간의 의도와 오해로 만들어진 어설픈 사기행각. 결국 미카지는 기리하타의 정체를 눈치채고 그의 약점을 잡아 어마어마한 요구를 들어달라는 부탁 아닌 협박을 하게 된다. 그것은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살해모의! 과연, 기리하타와 바 if의 멤버들은 무사히? 살인을 저지르고, 인기 DJ의 비밀을 지켜낼 수 있을까?
- 미치오 슈스케만의 비틀어진 시선과 기발한 상상력이 만든, 잔잔한 감성과 폭발적인 반전!
리드미컬한 미스터리와 악센트가 강렬한 트릭, 어이없는 코미디에 웃다가 돌연 쏟아지는 눈물의 정체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으로 비평가와 관객의 사로잡은 혜성 같은 작가 미치오 슈스케.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과 거침없는 필체, 독특한 세계관과 장르를 초월한 작품으로 ‘개성’과 ‘반전’이 두드러진 작가이다. 이런 그가 요즘 대세에 맞는 ‘감성 미스터리’에 도전한다. ‘투명 카멜레온’은 그의 개성과 반전이 고스란히 녹여들면서, 추리소설계의 감성과 힐링 분위기에 흐름을 타는 작품이다. ‘투명 카멜레온’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약간의 거짓말과 염원을 담은 ‘하얀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이다.
‘투명 카멜레온’의 인물들은 개성 넘치지만 알고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다.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DJ 기리하타, 성에 관한 척척박사 호스티스 모모카, 치질을 앓고 있는 해충 방제업자 이시노자키, 불상을 깎는 나이 지긋한 시게마쓰, 요란한 헤어스타일로 이목을 끄는 마담 데루미, 이들은 웃기지만 어디선가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모두가 감춰둔 상처가 있듯, 이들 역시 웃음 뒤에 자신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을 치유하는 계기는 기구하게도 한 여인의 살해의뢰.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을 목표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왕좌왕 어이없는 사건들을 벌이고, 종잡을 수 없는 소동가운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지탱하며,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고,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기리하타는 그들을 위해 약간의 거짓과 그들을 보듬을 거짓말의 세계를 만들어 구원하고 자신마저 구원받는다.
우리는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피치 못할 의도나 예기치 못한 오해의 소지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상대를 배려하거나 하는 좋은 뜻을 품기도 한다. 그것을 ‘하얀 거짓말’이라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상처받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약해도 괜찮고, 다시 일어설때까지 그 거짓말에 기대도 괜찮다는 소란스럽지만 비밀스러운 한 마디를 건낸다. 오버스럽고 괴상한 소동에 빵빵 터지다가도 결말에 한바탕 눈물이 쏟아지는 감성과 반전의 미스터리. 나빠보이지만 알고보면 한없이 구슬프고 다정한 미치오 슈스케의 ‘하얀 거짓말’을 들어보자. 마지막에 기분 좋은 배신에 눈물과 미소를 함께 머금는 순간, 어쩌면 당신도 그 거짓말에 구원받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