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주인공은 렌즈를 통해 게임에 접속하고, 현실이 가상현실로 되어 RPG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게임을
즐길수록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게임속에서 죽였던 인물이 실제 현실에서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처럼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게임의 산업발전을 점점 발전하고 있고, 그것은 곧 가까운 미래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매트릭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장자의 ‘호접지몽’이 떠오르기도 한다. 진짜는 무엇이고,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가기어려울 지경에 이르는 인물들의 이야기.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현실일까?
가상일까?
‘어른들은 왜
그렇게 쓸 만한 물건과 식량을 쌓아 놓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할아버지는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대재앙 이전의 풍요로운 세상에서 갈았던 기억이 그들을 죽게 한다고
했다. 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죽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기억이
없으니 절망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는 그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 무엇이 진짜 현실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확실할 수 있을까?
세 개의 전혀 다른
시공간의 네 인물. 시뮬라크룸(거짓,모조)은 어디일까?
완은 전날 전시회파티에서 진탕 술을 마신 후, 한 남자와 지나친다. 다음날, 산책을 하다 또다시 그
남자를 지나친다. 그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트레이닝 복을 입었기 때문일까?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힌 채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소녀를 지나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그 소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배경은 절벽과 붉은하늘 그리고 하늘에는 세 개의
비행물체같은 것이 떠있다. 그리고 소녀는 그것을 바라보고 서있다.
소녀 루는 지구의 대재앙 후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 루가 살고 있는 세계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대재앙 후 사람은 둘로 나뉘었다. 땅 위의 사람들과 땅 아래의 사람. 땅 아래의 사람들은 재난을 피해 땅 아래로 들어가 살게 되었고,
다시 땅위로 올라오자 눈과 귀가 퇴화 되어 있었다. 이들은 땅 위의 소수 살아남은 사람들을 사냥해 삶아 먹기 시작했고, 그 중 몇몇은 사냥꾼들의
길눈으로 키워진다. 그것이 소녀 루이다. 할아버지와 루는 땅 아래 사람들(사냥꾼들)이 식량이 떨어지자, 곧 자신들을 먹을 것임을 알고, 도망쳐
굴에 살게된다. 그리고 현재, 루는 굴에서 나와 사냥꾼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도시로 향한다.
에이전시 사장 세영은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온라인 카페에서 만난 카멜과 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그녀가 준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이 것은 일종의 ‘아바타’를 만들어내는 것. 세영은 프로그램을 통해, 떠난 남편과 똑같은
아바타와 일상을 함께한다. 매 순간 행복하지만, 그는 가상의 것으로 버그가 발생하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세영은 카멜이 버그를 고쳐주길
바란다. 한편, 혁은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채 익숙한 듯 낯선 세상을 살아간다.
오감을 느낄 수 없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내 세영이 퇴근 후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짓곤 하는데, 마치 자신을 보는게 아니라 자신 넘어의 무엇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 현실, 가상, 대재앙
이후의 세계, 각자의 세계속에 살고있는 네 사람.
무엇이 진짜 세계인지
끝없이 반문하게 만드는 소설.
철학적인 주제를 SF로
풀어낸 단편소설이자, 한 권의 소설.
‘시뮬라크르’는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에서 유래한 말로, 시늉, 흉내,
모양이란 뜻이다. 이 라틴어는 영어 안에도 그대로 흡수되어서 모조품, 가짜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네 인물이 살고 있는 세계가 실존하는지 허상인지를 다룬다. 네 인물은 허구일지도 모르는 현재와 온라인 속 가상의 공간, 대재앙 이후의 퇴화된
약육강식의 세계에 각자 살고 있다.
소설은 네 인물의 이야기를 교차진행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 너무도 다르지만, 묘한
접점을 가지며, 일종의 ‘복선’과 같은 내용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현재에 살고 있던 ‘완’이 길에어 마주친 한 소녀에게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이 대재앙 이후 세계를 살고있는 소녀 ‘루’가 살고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또한 ‘완’이 몇 번이고 지나친 기시감이 든 남자는
세영이 죽은 남편을 그리워해 만든 가상속의 아바타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다른 세게를 인물들을 통해 이어버리고, 그들의 관계는 점점 엉켜 무엇인
진짜이고 가짜인지 그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프레임 밖에서 내가 주인공인 그림이 존재할까?’.라는 작가의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이자, 끝까지 네 인물과 세가지의 세계 중 진짜는 무엇인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모호한 이야기. 철학적인 주제를 재미있는
SF적 소재로 풀어낸 소설 ‘시뮬라크르’를 읽어보자, 네 명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로 보면, 전부 흥미롭다곤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접점을 통해 풀어나가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짜를 구분하려는 독자들의 열의로 호기심을 유발시키니까.
+@ 호불호가 갈릴 소설이다. 다소 모호하고
난해한 면이 있다. 결론을 독자에게 맡기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부가 재미있진 않지만, 대재앙 이후 소녀 '루'의
이야기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호평을 받을만큼 재미있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