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스릴러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 중 하나가 ‘은행’이다. 물질적 탐욕의 끝이 한데 모인 곳, 그 은행을 터는 위험한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본 금기시된 욕망이다. 때문에 은행을 배경으로 검은복면의 무장강도가 출현하는 영화는 꽤 많다. 하지만 소설은? 척 호건의 <타운>을 제외하면 그리 많이 쓰이진 않는다. 그 이유는 은행이란 공간은 무장을 해야 할 만큼 보안이 철저한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 그 보안을 뚫기 위한 화려한 액션, 거친 소음의 총격, 보안코드를 깨는 최첨단 장비 등이 ‘들리고’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여기, 탕탕탕! 거친 총격전이 없이 은행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다. 영화가 액션스릴러라면, 소설은 서스펜스스릴러로 승부수를 띄운다. 파산한 은행, 그곳에 잠들어 있는 1300개의 대여금고, 그리고 그 금고를 열 수 있는 단 하나의 키인 ‘데드키’. 폐쇄된 은행에서 벌어지는 탐욕과 비리의 이야기. 총격전과 인질극 하나 없이 벌어지는 아찔하게 숨막히는 스릴은 무엇일까?

 

 

"왜 데드키라고 부르는 거죠?"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열리지 않고 잠겨 있으면, 우린 '죽었다'고 말해요. 대여금고가 죽으면, 그걸 비우고 다른 대여자를 받아야 하죠. 우린 데드키로 죽어버린 대여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꾸곤 했어요. 지금은 드릴로 틀에 구멍을 뚫고, 틀 전체를 몽땅 갈아치우지만. 짐작하겠지만, 금전적으로는 엄청난 낭비죠."

"대여금고가 자주 죽나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요."

 

 

- 폐쇄된 은행, 그곳에 잠들어 있는 1300개의 금고

죽은 자의 금고를 노리는 자, 그 금고를 열 수 있는 ‘데드키’를 가진 자.

 

1978년 베아트리스는 어린나이지만 경제적 독립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모 도리스는 베아트리스의 면접준비를 도와주고, 나이를 속이는 위조서류를 준비해준다. 결국 이모의 도움으로 퍼스트뱅크에 취직하는 그녀. 깐깐한 여상사와 능글맞은 면접관, 익숙하지 않은 업무로 어려움을 느끼지만, 요령을 알려주는 동료 맥스를 사귀면서 새 직장에 적응해나간다. 베아트리스는 맥스와 점점 가까워지자, 맥스를 통해 FBI가 은행의 비리를 주목하고 있고, 맥스가 비밀장부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도리스 이모에게는 비밀이 있다. 이모는 한 번도 입지 않은 화려한 옷가지와 유부남과의 연애편지, 은행서류뭉치들을 가지고 있다. 그냥 작은 비밀이라 생각했는데, 이모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녀의 물품을 정리하다 547이라 각인된 대여금고열쇠를 발견한다. 베아트리스는 이 일을 맥스에게 상의하지만, 다음날 맥스는 547번 열쇠와 함께 행방이 묘연해지는데...

 

20년후, 아이리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기사가 된다. 서류작업만 하던 중 현장에 나갈 기회가 주어지고, 그 일은 20년전 파산되어 폐쇄된 퍼스트뱅크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재사용 가능성 여부를 판별하는 설계도를 작성해야하는 아이리스. 폐건물에서 홀로 늦게까지 일하다, 우연히 547번 대여금고 열쇠를 발견한다. 이 열쇠를 발견하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 폐건물에 들어온 흔적이 생기고, 자신을 감시하는듯한 시선을 느낀다. 결국 아이리스는 열쇠에 관해 조사를 하고, 20년전 열쇠와 관련된 베아트리스라는 소녀가 실종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 한 공간속 다르시간대의 두 여인, 데드키를 손에 쥐면서 벌어지는 20년 전 과거와 현재.

음모와 진실, 탐욕과 정의, 파헤치고 쫓기는 끊임없는 스릴! 스팩타클보다 강한 서스펜스가 온다!

 

<데드키>는 앞서 말했듯, 은행이란 배경치고는 스펙타클한 장면이 없다. 검은복면의 무장강도단과 경찰들의 총격전이나 인질극은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서스펜스가 독자를 매료시킨다. 구미당기는 소재와 20년을 두고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복선적 구성이 손에 땀을 쥐게하는 명(名)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흥미로운 소재인 ‘데드키’를 다룬다. 거물급과 부유층의 거액의 귀중품을 수탁한 대여금고가 운영되었음에도 급작스럽게 파산한 은행, 그 은행의 대여금고는 주인이 죽으면 데드키(마스터키)로 열어서 장물이 국가로 환수되고, 새 주인을 맞이한다. 수많은 주인없는 금고를 품은 채 폐쇄된 은행, 그 금고를 여는 방법은 ‘데드키’뿐이라면? 이 마스터키는 끝없는 부를 축적할 행운의 키이다! 하지만 키를 쥔 자는 그 키를 노리는 어둠의 세력에게 끊임없는 위협을 받게된다. 즉 데드키는 이중적인 소재인 것이다. 마치 선악과처럼, 금기시 되지만 유혹적이고, 달콤하지만 위험한 것이다.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소재이다.

 

복선적 구성 또한 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분명 한 공간이지만 20년 전 (은행비서) 베아트리스와 현재 (건축기사) 아이리스의 이야기가 교차진행된다. 괴종시계와 타자기 소리가 들리는 생동감 넘치는 아날로그은행과 서늘한 바람과 자신의 발자국 소리뿐이 폐허가 된 은행, 한공간이지만 다른시간 속에서 두 여인은 은행 파산에 얽힌 음모를 밝혀줄 데드키를 손에 쥐게되고, 비리와 관련된 인물들의 꾐에 빠져 막대한 부를 탐내지만, 유혹과 위협을 이기고, 목숨을 걸고 대여금고를 노리는 자들을 저지한다. 은행을 둘러싼 수많은 단서들과 거대한 사건사고가 다른 시간대에 벌어지는데, 그 이야기들이 서로 힌트를 주고받으며 한 가지 결말과 반전에 도달하는 구성은 높은 집중력과 빠른 가독성을 유발한다.

 

운의 키인지, 죽음의 키인지 알 수 없는 데드키. 정직하고 안전해 보이는 은행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스캔들, 도난, 살인, 불신과 부정부패. 극과극에서 오는 간극과 간극의 숨은 교집합을 찾아내는 이야기. 매력적인 소재와 복선적 구성이 밀도있게 쓰여진 스토리가 빛나는 <데드키>를 읽어보자. 쾅쾅 터지는 장면은 없지만, 쿵쿵 하고 심장을 조여오는 이야기가 묵직한 두께를 읽는 내내 당신의 숨통을 조여올테니.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것은 작가의 '구조공학자'라는 남다른 이력때문이다.

작가의 경험이 만든 생생한 공간 묘사와 실제로 일어날법한 스토리는 탄탄한 서사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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