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해바라기
유즈키 유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황금시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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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점대상 1위를 읽었다. 아! 역시 서점대상.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춰야만 거머쥘 수 있는 것이 ‘서점대상’이다. 단순 ‘재미’를 넘어선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단호한 사회비판이든 작가의 희망적 메시지든 독자에게 ‘울림’을 주어야 한다. 여기 2018년 서점대상 2위의 <반상의 해바라기>가 있다. 단순 추리소설로 시작되지만, 1위보다 더 짙은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 비운의 천재,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고리, 광기에 사로잡힌 채 영혼을 쏟아 붙는 반상위의 전쟁들. 추리소설이라 얕보지 마라, 읽고 나선 알 수 없는 묵직함이 ‘해바라기’처럼 피어날지도 모르니.


 

“세상에는 좋으라고 한 일이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어. 내말 흘려듣지 말라고.”

- 600만엔 장기말과 함께 묻힌 시체, 범인은 왜 장기말을 묻었는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헤집는 살인과 승부의 뜨거운 현장

산속, 산림 벌채를 하다 백골 사체가 발견된다. 사체는 중년의 남성, 사체가 입고 있던 셔츠에 예리한 칼날로 베인 흔적과 혈흔이 발견되고, 경찰은 살인사건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다. 살인, 누군가가 ‘살의’를 품고 사람을 죽였다. 헌데 사체가 지닌 ‘장기말’이 큰 의문을 가져온다. 사체의 유류품들은 전부 값싼 옷가지뿐인데, 사체의 가슴팍에 600만엔 가치의 장기말이 발견된다. 누군가 증오심을 품고 사람을 죽여 산속에 매장했다. 헌데 명인이 만든 고가의 장기말을 함께 묻어두었다? 괴팍한 베테랑 형사 이시바와 한때 프로 장기기사를 꿈꿨던 신입 형사 사노가 장기말을 단서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4개월후 이시바와 사노는 장기말을 단서로 범인을 단정한다. 그는 ‘불꽃의 기사’라 불리는 대중이 열광하는 천재 장기 기사 게이스케. 과연 그는 그들이 찾는 살인범일까?

한편, 게이스케의 어릴적. 소년은 불행하다. 어머니는 자살을 했고,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그를 학대한다. 그런 어린 소년의 유일한 취미는 쓰레기 더미에서 장기잡지를 찾아 읽는 것. 퇴직한 교사 가라사와는 누군가 자신의 쓰레기를 뒤진 것을 알게 되고, 그 범인인 소년 게이스케를 만나게 된다. 가라사와는 게이스케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장기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게이스케는 장기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다. 청년이 된 게이스케, 진검(도박장기)밖에 두지 않는 장기 천재 도묘를 만나게 된다. 그게 도박 장기든 뭐든, 진검이란 것을 두고 싶다. 게이스케의 광기어린 진념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데...

- 추리소설이란 범주를 넘어선 묵직한 인간 드라마.

천재의 비운, 숙명의 고리, 뜨겁게 타오르다 추락하는 비극

한줄평: 추리소설의 매력을 가지면서, 그 범주를 뛰어 넘는 소설이다.

추리소설로써의 매력: 처음부터 천재 장기 기사 게이스케를 범인으로 지정하고 시작한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그렇듯 암묵적인 범인을 초반에 배치할 경우,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진범이 따로 있거나, 범인은 맞되 범인의 동기에 주목하게 된다. <반상의 해바라기>의 경우는 이 둘을 함께 다루며 두배의 즐거움을 준다. 게이스키는 그 사건의 진범은 아니나 여죄가 있다. 범인의 동기는 한 사건에서는 독자가 납득 가능한 범행동기를 보여주나, 또 한 사건은 논리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어도 그 감정이 유발되는 일련의 과정이 비극적이나 경외심을 선사할 정도로 미묘한 울림을 전해준다. 결국 범인찾기나 동기찾기나 어떤 것에 주목해도 즐거움은 따르기 마련.

추리소설외의 매력: 장기판을 뜻하는 ‘반상’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사체와 함께 묻힌 장기말이 살인사건을 풀 수 있는 단서로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의 일부는 이 장기말를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순히 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추리소설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소설은 형사들이 범인을 게이스케로 단정짓기까지의 추적과정과 24년전 게이스케의 성장담이 교차진행된다. 사체의 신원과 범인의 정체, 장기말의 주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 등 해답을 찾는 쾌감과 함께 게이스케의 가정사, 출생의 비밀, 은인인 가라사와와의 만남, 숙적과 동시에 스승이었던 도묘와의 승부 등 여러 인물들과의 오랜 시간 품고 온 애증과 거스를 수 없는 숙명, 생명을 갉아먹는 장기에 대한 열망 등이 묵직한 인간 드라마로 그려진다. 또한 중간중간 보여지는 장기 대국의 장면은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로, 숨죽이고 손에 땀이 찰만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소리없는 스포츠를 관람하는 듯한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파트를 두파트로 나눠 서평을 쓴것은 이 소설이 추리소설로써 매니아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지만, 강렬한 여운이 가득한 묵직한 인간 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반인층에게도 충분히 매력있는 소설이란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 그릇>이나 일본드라마 <화려한 일족> 같은 사람의 이야기만, 범접할 수 없는 묵직함이 내내 여운 짙게 드리우는 작품을 찾는다면 바로 <반상의 해바라기>를 읽어보자.

장기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장기에 관한 설명이 뒤에 첨부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단,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하진 말것, 논리나 추리외의 감정선에 치중한 작품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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