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소설, 딱 듣기에도 ‘감동적’일 것 같지
않은가? 가족소설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소재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이 가족에서 출발하고, 인격을 완성하는 첫 단계가
가정인 만큼, 그것을 다루는 소설은 암묵적으로 ‘정직한 교훈’과
‘훈훈한 감동’을 요구한다. 하여,
대개 가난한 형편, 고통스러운 질병 속에 구성원들이
서로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며 역경을 극복한다.
헌데 이 소설은 별안간 어디서 뚝 떨어진 별종이다. 교훈,
감동은 저리가라, 아침8시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휘황찬란
품격 있는 재벌가에 던져진 ‘몰래카메라 사건’!, 함께 고난을 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고난을 선사하는 가족,
감동의 눈물이 아니라 황당해 입이 쩍 벌어지는 이야기. 이색
가족들의 대(大)막장 활극이
펼쳐진다.
“저, 동영상 찍힌
것 같아요.”
“동영상?”
“몰카요, 몰래카메라.”
“어머, 너
친구들하고 장난쳤구나?”
“아니요,
섹스 동영상요. 저도 어젯밤에 알게 되었는데
그쪽에서 협박을 하더라구요.”
- 모든 가족은 막장을
겪는다...이 가족은 조금 더 막장이었을 뿐!
돈
봉투, 김치 싸대기는 우스운, 아침드라마의
결정판?
재력과 명예를
갖춘, 품격있는 재벌가가 있다. 국내 최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서용훈, 교수집안 딸로 태어나 갤러리를 운영하는 어머니 유미옥, 품위와 지적인 뇌를 가진
‘마더 테레사’
첫째딸 서혜윤, 언니와 늘 비교 대상인 미모의
둘째딸 서혜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가족’. 클래식
음악에 잘 차려진 정찬 같은 이들의 아침식탁을 한순간 ‘확’ 엎어버린
건, 첫째딸 혜윤의 ‘고백’이다.
“저,
동영상 찍힌 것 같아요.” 혜윤는 몇 달
전부터 어플로 남자들을 만났고, 30만원에 자신을 팔아 성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그 남자들 중 누군가가
동영상을 찍어 협박하고 있다. 목적은 돈?
어이없게 혜윤과의 ‘혼인신고’가
목적이다. 재벌가에 숟가락 얻으려는 속셈인가? 가족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아버지는 뒷수습 전문가에게 일을 맡겨 범인을 묻어버릴 속셈이고, 어머니는 이
부끄러운 일이 지나가기만을 품위있게 기다린다.
동생혜란은 사건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부모에게 라운지바를 뜯어낼
속셈이다. 누가 먼저 이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사건에 다가설수록 ‘완벽한’ 가족의
‘막장스런’
비밀이 드러나는데...
-
성인들을 위한 이색적인 ‘가족소설’
막장
가족들의 블랙 코미디 속, 현대 가족의 '붕괴'와 ‘소통’을 이야기
하다.
<어쩌다 이런
가족>은 황당하고 우스꽝스럽다. 완벽해 보이는 가족구성원들이
알고 보면 하나같이 전부 ‘비정상’이다.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목적을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 때마다
밝혀지는 가족의 ‘막장비밀’은 불완전한 조각이 지저분하게
널려져 있는 꼬락서니이다. 독자는 이 지저분하게 널려져 있는 모양새에 환호한다. 모든 가정이
그렇듯, 알고 보면 제각기 사정이 있는 법이니. <어쩌다 이런
가족>은 그 ‘사정’을 극대화해
드라마틱한 전개를 선사한다. 도덕적인 '전체관람가' 가족소설이 아니라, 살인방조, 정신적외도,
비상식적거래, 부도덕한속임수가 난무하는 오락적
요소가 다분한 '성인관람가' 가족소설을 만든다.
이처럼 이 소설은 오락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작가는 ‘가족소설’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소설 속에 현대가족의 '붕괴'를 녹여낸다. 현대 가족은 개개인의 행복이 중시되는 나머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자신의 의사를 주장하다보면 피곤한 싸움이 될테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막장가족들처럼 ‘남보다 못한
가족’이 되버린다.
작가는 해결책으로 ‘소통’을
내놓는다.
이 소설의 가장 유쾌하면서 슬픈 클라이맥스는 가족이 함께 목청 높이며 싸우는
장면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물고 뜯는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의
‘소음’은 작가의
메시지이다.
‘소음’이 ‘소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따뜻하지만 따분한 가족소설이 싫다면 읽어보자. 이색적이라 재미있고 날카롭진
않지만 화끈한 교훈도 담겨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