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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 씨와 커다란 어항 ㅣ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84
전승주 지음 / 시공주니어 / 2025년 11월
평점 :
《콧수염씨와 커다란 어항》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조용한 다정함’이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깊다. 숲속 연못에서 시작된 작은 만남이 한 사람과 한 생명의 관계로 자라나는 과정을 차분하게 따라가게 한다.
콧수염 씨는 모험가이지만, 이 책에서의 모험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그 존재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이 오히려 가장 큰 모험처럼 느껴진다. 작은 물고기는 함께 여행하는 동안 점점 자라고, 그 성장은 곧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야기가 인상적인 이유는 갈등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커졌다고 해서 슬픔이나 이별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콧수염 씨는 생각한다.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할지를. 그가 선택한 ‘커다란 어항’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랑의 태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이 책은 관계를 소유로 착각하지 않게 만든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두는 일, 성장한 만큼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변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돌봄과 책임을, 어른에게는 관계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림 역시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색감과 여백이 과하지 않아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장면 하나하나가 오래 머문다. 빠르게 읽히지만, 쉽게 지나가지는 않는 그림책이다.
《콧수염씨와 커다란 어항》은 사랑을 말하지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으로 보여준다. 관계 안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책이라, 읽는 이의 나이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올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고, 혼자 천천히 읽어도 좋은, 여운이 길게 남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