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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세일 시즌이다. 70%까지 할인한다고 적혀있는 가게 앞에 서면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고 보니 재킷이 필요했는데 하나 사야겠다 싶다. 가게에 들어가지만 나올 땐 스트라이프 티셔츠만 사갖고 나온다. 입을 만한 재킷이 없었으니 마음에 드는 거라도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장롱을 열면 한켠에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쌓여있다. 색깔이라도 다양하면 다행이려만, 맙소사 색깔도 거기서 거기라니. 그래도 나는 또다시 세일 기간에,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몇 개씩 사겠지.
손에 잡히는 물품들이 몇 가지 있다. 분명 그와 비슷한, 아주 유사한 제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게 되는 것들. 책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비슷한 장르, 비슷한 작가, 비슷한 내용. 하지만 비슷한 카테고리에 들어가는데 선뜻 내키지 않는 유별난 녀석들도 있다.
김연수는 내게 그런 작가였다. 당시 한국 소설에 (지금보다도 더)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의 책 뒷표지에 적혀있는 온갖 찬사들에 배알에 꼴렸는지도 모르겠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거 없다는 옛말마따나 읽어봤자 하는 치기어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달까. 몇장 펴보니 이거야 뭐 여자랑 섹스하는 내용밖에 없는 것 같고. 그저 섹스하는 내용과 사회 분위기가 복잡했던 시대를 덧붙여, 어려운 단어들만 갖다 붙인 거잖아. 그래, 부끄럽게도 김연수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당시의 나에겐 지식인인 척 젠체하는 인간들만 보였고, 그들이 지껄이는 사랑이니 철학이니 하는 건 다 쓰잘데기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철학이나 사랑을 괄시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사랑의 본질이 섹스에 있다는 냥 구는 모습이 우스웠다. 남녀간의 사랑은 생각만큼 고급스러운, 찬양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며 사랑이란 좀더 고고한 "무엇"이라 착각했다.
그러다 홍상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단순하게 찌질한 남자들과 그들에게 구애의 대상인 똑부러지고 매력있는 여성. 한번 자고싶어서 안달난 남자들이 여자 앞에서 허세도 부려봤다 불쌍한 척도 해봤다 투정까지도 부려보지만 다 잘 풀리진 않는다. 우습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남자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걸까. 근데 난 왜 저런 남잘 한 번도 못 만나 본거지? 이제까지 남자들이 날 전부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닐까. 나름 썸도 타봤고, 데이트도 해보고, 섹스도 했는데. 왜 난 제대로 누군갈 만나본 것 같지 않을까. 날 사랑한다던 남자들은 도대체 어떤 감정이었던 걸까, 우리는 대체 뭐였던 거니.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한 자리에서 멈춰섰다. 난 누굴 사랑해본 적은 있는 걸까?
다행히도 지금의 난 연애를 하고 있다. 첫 연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람을 만나며 마음의 온도차가 왔다갔다하는 경험을 하니, 왜 사람들이 그리도 사랑에 휘둘리는지 이해가 간다. 도대체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이 뭔질 갈수록 모르겠다. 그러니 가판대에 진열된 그의 책에 눈길이 가 멈췄던 건지도. 사랑이라니, 선영아. 참으로 그 어조가 궁금해지는 제목이었다. '사랑이 뭐길래 그러는 거니, 선영아,' 물어보는 건지 달래는 건지, 아니면 원망하는 건지. 안 그래도 사랑에 대해 답답한 궁금증이 가득한 순간에 이런 제목과 마주하다니. 하지만 김연수 작가를 전혀 읽지 못 했던 내가 책을 사게 된 이유는 이 문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수는 영번을 누르지 않았다. 일번을 눌렀다. 오백, 육십, 일번. '부르실 곡명은 양산도.'
"너, 선영이하고 잤지?"
신나는 꽹과리 소리를 배경으로 강하게 에코를 넣은, 광수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노래방 안을 울렸다.
진우는 돌아섰다. 마이크를 입에 바투 붙인 채, 광수가 진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모든 남자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보단 남자에게 "섹스"가 정말 중요해 보인다. (성차별적인 언급으로 들릴까 걱정되지만) 섹스에 대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순정적이랄까. 그러니 그들에게 사랑이란 섹스를 떼놓고 절대 네버에버 생각할 수 없다. 하룻밤 섹스에 관대한 남자가 더 순정적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섹스의 순정은 "섹스"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이지 섹스의 "대상"에게 의미부여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일까 여자들은 현남친이 엑스에게 어떤 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는가에 집착한다면, 남자들은 현여친이 엑스와 어떤 식으로 섹스했을까에 좀더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서 좋을 건 하나 없으니, 서로를 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너를 사랑한단 말이야.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얄미운 사람>은 너를 위해서만 부를게.
선영아, 미안해. 사랑해. 제발 이러지마. 옷 입지 마. 그때 내가 미쳤었나봐. 잘못했어. 사랑해. 다시 벗어. 옷."
곱씹을 기억이 없으니 사랑했다는 증거가 없다. 그러니 기억을 만들기 위해 우리 섹스하자. 가겠다는 여자의 바지춤을 잡고 늘어지며 다시 옷 벗고 섹스하자고 매달리는 남자. 이 남자 홍상수 영화에 나오던 그 사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아마도 그건 홍상수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남자들 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의 영화 속 여자들은 박제된 인상이 든다. 제아무리 소신있고 개성있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남자의 대상에 불과한 느낌. (섣부른 판단의 여지도 있겠다. 모든 작품을 본 건 아니니까) 그러할 지라도 그의 영화는 여타 로맨스 작품들과는 다르다. 현실 로맨스라 부르기엔 조금 싱겁다. 아마도 그건 (김연수 작가의 표현을 빌려) 인물의 영혼의 질이 거기서 거기라서 그런 것 같다. 질이 비슷한 인물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랄까.
김연수 속 인물들은 아주 조금 다르다. 사소한 것에서 사랑에 대한 의심이 피어 오르는 쫀쫀한 쪼다 광수, 낭만적인 사랑과 삶에 대해 쓰며 뻔뻔하고 능글맞게 영혼의 질을 가타부타하지만 결국은 잘 알지도 못하는 진우, 그리고 선영이. 그의 작품 속 선영에겐 어떤 수식어구가 붙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의 여자들은 보기에도 매력있고 어떠한 수식어구가 따라 다니는 여자라면, 선영인 선영이다. 구태여 갖다 붙이자면 라식 수술로 좀 예뻐진 인상의 선영이랄까. 선영은 옛날에 좋아하는 남잘 다시 만나 흔들리지만 결국은 지금의 남잘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갖는다. 결국 선영은 현재의 자기에게 맞는 AA컵을 찾았다. 아마 그래서 홍상수의 그녀들보다 김연수의 선영에게 더 마음이 간다. 홍상수의 그녀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매력적인 여자의 탈을 쓰고 있는 남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홍상수와 김연수는 결국 같은 카테고리의 예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우가 서점에서 우연히 선영과 마주친 뒤 고궁에서 홀로 곤룡포를 쓴 채 사진을 찍는 결말이라니. <우리 선희>에서 선희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던 세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렇게 그들은 사랑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선영이와 선희에게 외쳤던 것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