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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ㅣ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평점 :
요네자와 호노부의 빙과를 끝내자 마자, 고전부 시리즈 2탄,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를 읽었다. 고전부의 탄생을 다루는 1탄, "빙과" 때와는 사뭇 다른 사건 진행이다. 물론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단 개인적인 인상을 소설 속 인물인 사토시의 취미를 빌려 풀어보자면, 빙과를 통해 폐달을 밟기 시작한 자전거에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 다다르니 속도가 점점 붙어지는 느낌이랄까. 뭣보다 이 소설이 단순한 미스터리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성장을 (특히 주인공 호타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전편보다는 부각된다.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어보인다만...
(타칭) 회색인에 머무르기 좋아하던 호타로에게 있어서 자아상을 성립한다는 건, 굳이 거칠 필요없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며 나이듦이 오히려 편안하고 어울린다. 그러니 무리해서 장밋빛 청춘을 남기려 할 필요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다. 장미는 언젠가 색이 바래지기 마련이니 장밋빛이란 표현도 시간 앞에선 무색할 뿐이다.
하지만 청소년이 무리하지 않으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딘지 어폐가 느껴진다. 경쟁하도록 부추겨지는 세태 속에서 그런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장" 자체에 끊임없는 변화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키가 클 때는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나 역시, 어릴 적 다리가 아파서 잠에서 깨어난 적이 많다. 하물며 내적 성장에 있어서 고통과 변화없이 큰다는 게 가능한 걸까? 사람이 청소년 시기에만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외적, 내적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시기가 그때인 걸 의심할 나위 없다. 결국 우리의 청소년기는 제일 고통스럽고 예민한 성장의 시기다.
보통 청소년기의 내적 고민은 의문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잘하는 건 뭐지, 내가 하고싶은 건? 난 커서 뭐가 될까? 뭐가 되지? 모든 질문의 시작점은 너와 다른 나다. 거기에서 자아도취적 성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괜히 중2병이 있는게 아니겠지.) 어쨌든 소년, 소녀는 그때문에 가장 괴롭기 마련이다.
그들은 타인과 구분되는 "나"를 정립하기 위해 뒤척인다. 하지만 호타로에게는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호타로는 '나는 평범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호타로의 맹점은 바로 그 '평범함'이란 단어에서 비롯된다. 평범하단 건, 모든 면에서 중간에 해당한다는 소리도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차이점"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공통점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나"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평범함이란 차이 속에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니 그런 말은 "나"와 "너"에 대한 고민 좀 해 본 어르신들이나 담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품지 않던 호타로에게 평범하단 건 특출난 부분이 없는 사람에 불과하단 의미였겠지만.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 보려 하지도 않았던, 이전의 그가 "평범"하다는 건 건방지기 짝이 없는 소리에 해당한다.
그랬던 호타로는 이제 그의 친구들을 통해서, 자신을 찾아 나간다. 그가 지닌 차이점을 인지하게 된다. 동시에 그는 다른 학우들의 특별함도 깨달아 간다. 그렇게 그는 여타 고교생처럼 학창시절을 장밋빛으로 물들여가게 된다. 호타로 본인은 고개를 내저을 줄 몰라도, 외부인의 시각에서 고전부는 "아름다운 고교시절"로 비쳐진다.
진정 그는 "평범"한 고교생처럼 자각하기 시작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그래, 비록 중2병이라 놀림받을지 언정, 청소년 때는 도취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나"에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또한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될 거다.
그게 성장의 과정이니까.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겠지.
두서없는 글이 길어진다. 어쨌든 이 소설은 즐겁다. 자기의 재능을 찾아가는 '탐정'은 나름 매력이 있다. 호타로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고전부시리즈가 나올 거라는 작가의 글을 읽었다. 고전부 시리즈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재능을 깨닫고 능력을 발휘하며 견고해지는 호타로 시리즈를 기대하는 건 과한 욕심일까.
(이 리뷰는 개인 블로그에 2014년 1월에 작성, 게시됐습니다)
P198.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자각해야 해. 안 그러면... 보고 있는 쪽이 바보 같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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