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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 내리던 장날 - 제4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동시집 14
안학수 지음, 정지혜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문학동네의 14번 째 동시집 <부슬비 내리던 장날>
표지 속에 보이는 리어커를 끄는 할아버지의 모습만 보아도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을 보니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하다.
<부슬비 내리던 장날> 동시집은 한마디로 슬픔이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안타까워 걱정인 산비둘기와 새참 막걸리 나누며 즐겁던 이웃들 하나둘 떠나가고 텅 빈 초록 골짜기,
일제 때 강제로 징용 가 만주로 상해로 전쟁터를 돌다 광복군의 포로 되어 살아온 상록이네 증조할아버지까지...모두가 안타까움이고 슬픔이다.
하지만 그저 슬픔으로만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슬프지만 그립고, 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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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가을까지 혼자 살다
영구차 타고 떠난
할머니네 대문 없는 집은
오늘도 빈집이 아니다.
종일 어정거리는
들고양이가 남아 있고
뒤꼍에 사는 박새 부부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
빨랫줄 들고 선 바지랑대
돌담에 욱는 누런 호박
헛간에 걸린 호미 두 자루
마루에 쌓여 가는 우편물
모두 모두
오지 않는 할머니를
말없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도 빈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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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다 떠난 할머니, 그 할머니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바지랑대, 누런 호박, 호미 두자루, 우편물..
그러고보니 정말 빈집이 아니다. 할머니를 추억하는 이들이 함께 있으니 말이다.

못생긴 여드름 뭉치라고 겉모습만 보고 누구도 놀아 주지 않았단다.
바다에서 가장 탐스럽고 좋은 황금빛 알맹이란 사실을 말이다.
'멍게'라는 시를 읽으며,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때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아주 어리석은 나의 모습을 말이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황금빛 알맹이의 멍게처럼 소중한 인연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리진 않았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무심코 읽어 내려가던 '걸레'라는 시...아, 정말 그렇네.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잔칫집에서 얻어 온 참 좋은 수건, 정말 그렇다. 결혼 기념, 돌 기념, 회갑에 칠순까지 참 좋은 수건이었지..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동안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쓰다가 시에서처럼 새 수건이 들어오면 걸레로 밀려나는..
사실 오늘도 한참동안 내 손과 얼굴을 닦아주던 수건 하나를 걸레로 만들어 버렸다.
이젠 걸레질 할 때면 '걸레'라는 시가 떠오를 것 같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마냥 즐겁고 뿌듯해하는 마음 착한 걸레가
달리 보일 듯 하다.
그래서 나는 시가 좋다. 읽고 있으면 편안하고, 문득 문득 떠오르는 즐거움 또한 매력적이다.
한 번도 눈여겨 본 적 없는 걸레도 시로 만나고 보니 이처럼 아름다운 것을...
세상을 눈여겨 볼 수 있게 해 주는 시가 점점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