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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평점 :
열렬사극시청자이신 우리 할머니 덕분에 여러 사극을 봐왔지만, '국사'를 워낙 싫어했던 나는 사극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9년을 휩쓸었던 최고의 드라마 '선덕여왕'덕분에 사극에 푹 빠지게 되었다. 선덕여왕을 본 뒤 모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선 인터넷 검색을 하고, 국사책을 뒤지면서까지 알고 넘어갔다. 선덕여왕이 끝난 뒤 월화, 당연히 나는 따지지 않고 역사극 '제중원'을 보게 되었다. 때는 조선 고종, '제중원'이라는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생기고, 조선 최초 서양의가 된 백정 출신의 '황정'이란 인물을 그리는 드라마다. 가장 치열하고 드라마틱했던 이 시기에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던 백정이 지금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직업인 의사가 되는 스토리라니, 어제도 한시간 동안 집중하며 시청했지만 정말 재미있다. 이윤우의 역사팩션 '제중원 박서양'은 황정의 실제모델인 박서양의 이야기이다.
책은 총 3부인데 '1부 의사가 된다는 것'에서는 백정의 아들이 한 사람 몫의 의사가 되기까지의 역경과 그 극복과정을 그린다. '2부 의사로 산다는 것'에서는 일본에서의 귀향후 제중원 의학당의 교사가 되어 겪는 일들을 그리고, '3부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에서는 일제에 맞서는 박서양의 삶을 그린다. 1부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걸로 봐서, 박서양이 '백정'이라는 출신 성분을 극복하고 의사가 되기까지에 작가의 초점이 맞혀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중원 원장 알렌, 고종 등 다양한 인물의 관점으로 서술해서 보다 입체적으로 서술하려 한 듯한 느낌도 받았다. 특히 고종의 관점으로 서술된 부분을 통해 시대적 배경 또한 잘 녹여내고 있었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흐름을 깨는 요소가 있어 꽤 신경이 쓰였는데, 그건 '너무나 긴' 문장이었다. 수식어가 너무 많이 붙어 글을 읽는데 무슨 내용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아 한 문장을 여러번 곱씹어 읽어야 했다. 책까지 펴낸 작가의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점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제중원과 함께 보다 보니 이야기가 혼동되어 초반엔 집중이 힘들었다. 드라마 '제중원'과 비슷한 스토리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그 기대를 삼가하시길. 다만 같은 실존인물을 빌려왔을 뿐이지, 알렌등 등장인물의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박서양과 알렌, 고종, 민영익 외에 다른 인물들은 겹치지도 않는다. 특히 주인공 황정과 박서양의 성격이 너무나 달라서 그 둘이 비교되어 초반 집중이 힘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먼저 알게 된 '제중원'의 황정과는 별개로, 박서양에게 빠지게 되었다. 황정은 자신의 신분과 소근개라는 이름마저 버리고 '황정'이라는 양반가의 신분을 훔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에 반해 '박서양'은 백정이라는 자신의 출신 성분을 숨기지 않는다. 그 때문에 주위로부터 무시와 갖은 핍박을 당하고 서러운 나날을 보내지만 꿋꿋이 견뎌낸다. 그 점 때문에 '박서양'에게 더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서양의학과 알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마저도 극복해내는 점에선 너무나 대견했다.
백정과 의사의 사주가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백정과 의사는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그 직업과 인생이 갈린다는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그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치부하고 넘겼다. 하지만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신분제가 있었던 옛날에만 그랬는가 하면 그게 또 아니란 말이다. 지금은 신분제 대신 '돈'이 신분을 가르는 역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의사는 의대 또는 의전을 나와야만 하는데, 보통 서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문에서 꼭 빠지지 않는 화두이기도 한 '사교육'때문에 돈 없으면 좋은 성적 받기도 힘든 세상이다. 이런 시대이기에, 모든 걸 극복해낸 실존 인물 '박서양'의 이야기가 더 큰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