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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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문닫기 전의 도서관을 좋아한다. 인기가 많은 도서를 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이날도 ’캐비닛’을 비롯해 김탁환의 ’노서아가비’,박범신의 ’고산자’,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를 득템했다. 이 탐나는 책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손이 간 게 바로 이 ’캐비닛’이다. 에전에 캐비닛 리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기발하고 유쾌한 소설이라는 점만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유쾌한 소설이 읽고 싶었다. 요즘들어 왠지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신문은 읽어도 책은 읽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재밌고 부담없이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 ’캐비닛’을 통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문학동네소설상이라는게 꽤나 깐깐했다. 올해까지 총 15회 중, 수상작을 뽑은 건 겨우 9회에 지나지 않았다. 즉, ’상을 줄만한’ 작품이 없으면 아예 수상작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이 혹독한 절대평가!! 하지만 캐비닛은 이 입맛 까다로운 문학동네소설상에서, 심사위원 대부분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수상작이라하니,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하다.(난 다 읽고 충분히 감탄을 금치 못한 뒤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험난한 취직경쟁을 뚫고 공기업에 취직한지 얼마 안된 회사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라는게, 하는 일이 너무 없어 미칠지경인 곳이다. 과장은 자신의 취미인 범선 모형 조립을 권하는 판국이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회사의 어느 곳에서, 13호 캐비닛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을 것 같은 캐비닛에 자물쇠까지 달려있다. 주인공은 1~9999까지 모든 숫자를 넣다가 몇일만에 자물쇠를 여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 캐비닛안의 자료들이 심상치가 않다. ’심토머(symptomer)’라는 사람들의 상담내용이 주 된 내용이다. 여기서 ’심토머’라 함은, ’징후를 가진 사람들’이라고도 부르는,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다.(p.30) 심토머들 중에는 손끝에서 은행나무가 자라고 혀안에 도마뱀이 크는 키메라, 갑자기 긴 수면상태에 빠지는 토포러, 기억을 변형시키는 메모리모자이커, 고양이가 되고싶어 마법사를 찾아가는 사람, 여자와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등이있는데, 이들 부분은 마치 판타지를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마치 어린시절 처음으로 ’해리포터’를 읽으며 두근거렸을 때와 같은 두근거림을 맛보았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어딘가에 있을듯한, 묘사가 너무나 그럴듯하고 뻔뻔해서 정말 사실이라고 믿게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이게 작가 김언수의 탁월한 능력인 것 같다. 이를 두고 어느 리뷰어는 반발짝도 그렇다고 열발짝도 아닌 딱 ’한발짝’ 더 나아간 상상력으로 허무맹랑하지도, 그렇다고 사실같지도 않은 ’정말 어딘가 있는거 아냐?’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라 칭했다. (이 리뷰어의 참신한 표현도 정말 놀랍지만)작가 김언수의 그런 탁월한 능력에 소설이 살았다. 어디서 이런 괴물같은 작가가 숨어있었나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이런 매력적인 심토머들이 다가 아니다. 또 하나의 매력은, 이 심토머들을 통해 현대세상을 풍자하는 것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심토머들은 다양하면서도 유별나고 희귀하다. 양성의 성기를 가지고, 몇년동안 잠을 자고, 시간을 뛰어넘고, 손끝에 은행나무를 키우는 이들은 나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으면 그들에게 공감하고,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그나 나나 모두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돌연변이’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분명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심토머’들에게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심토머란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캐비닛’에선 종은 종의 안정성이 지속되어 진화할 필요가 없는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다가, 바뀐 환경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갑자기 변화한다(p.30)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토머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환경이 ’견딜 수 없는’환경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혹시 그런 문제입니까? 사람들 속에서 외롭다거나, 혹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외롭다고 느끼는 편이에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시고요?"
  "아뇨, 저는 사실 그 반대 입장입니다."
  "반대 입장이라뇨?"
  "우리는 사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별 도리가 없는 겁니다. 그건 이런 말이죠. 
   당신 외로운 것 알아. 당신도 나만큼은 외롭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외로워 지는 거죠. 결국 같은 말이지만."                 -p.286


   이 대화를 보면서,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김언수의 통찰력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만큼 내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가끔씩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항상 외로움을 느끼다가 어쩌다 한번씩 그 외로움을 잊는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김언수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사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지만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게 더 무섭고 외롭지 않은가? 사람들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외로움은, 희망이 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면 외롭지 않으리란 희망. 그래서 날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게되고 이해시키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고, 그렇지만 별 수가 없어서 외로운 거라면 별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외로울 수 밖에. 문명은 점점 선진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불행해지는 이상한 세상. 행복한게 최고라고 하면서도 정작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방향을 추구하는 이 미국도 일본도 프랑스도 아닌 ’베네수엘라’라고 한다.. 선진국도 경제대국도 아닌 베네수엘라. 미국, 뉴질랜드 등으로의 이민은 꿈꾸면서 베네수엘라로의 이민을 꿈꾸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체 왜? 이곳이 가장 행복하다는데도 대체 왜?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고향도 떠나 타국으로 이민가는거 아닌가?
 
  나는 분명 유쾌한 책을 읽고 싶어서 이 ’캐비닛’을 골랐다. 흥미진진한 내용 덕분에 분명 거침없고 유쾌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 책은 그냥저냥 ’유쾌하기만’한 책이 결코 아니다. 수많은 물음만 남겨놓고 이 책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결국 세상과 단절된 어느 섬의 안전가옥에 들어가는 걸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해결책은 없다. 결국 문제만 던져주고 끊임없이 답을 구하게 하는 책. 그것도 몇시간째 궁리해봐도 결론은 커녕 그 실마리도 잡을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가를 미워할수도 없다. 그러기엔 작가 김언수는 너무나 뻔뻔하고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문학은 역한류라고 기사화될 정도로 우리 출판계에서 그 위상이 드높다.(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보면 아직 불이 꺼지려면 한참 먼 것 같다.)  사실 나도 이번해에는 작가 신경숙 덕분에 국내문학도 많이 읽었지만 작년엔 일본문학을 주로 읽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면 우리문학도 언제까지나 일본문학의 인기에 밀리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선배들이 굳건히 한 뿌리와 줄기덕분에 신선한 열매와도 같은 ’캐비닛’이 태어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앞으로 ’캐비닛’과 같은 참신한 소설들을 국내작가를 통해 많이 만나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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