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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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묻는 이런 질문은 소용없단다.
시간이 지나면 형편없이 낯설어져 있거든.
나를 바라봤던 사람은 다른 곳을 보고, 나를 보지 않던 사람은 나를 보지. 서로 등만 보지.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야.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관계 속의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가, 묻는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지.     -p.578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있다. 여자의 이름은 은서이고 남자의 이름은 완과 세이다. 셋은 지금은 떠나온 고향에서부터의 소꿉친구이다. 세가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 셋은 언제나 함께였다. 완은 세보다 은서에게 잘해주려 했고, 세보다 은서와 가까이 닿으려 했다. 그런 완을, 은서는 어느샌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자 완은 은서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 나날들을 세는 은서 뒤에서 은서가 완을 보는것과 똑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완의 결혼을 알고부터 은서는 방황했다. 하지만 그 옆을 지킨건 세가 아니라 화연이라는 이름의 이웃여자였다. 그녀는 은서보다 더 깊은 상처를 지녔고, 그랬기에 그 둘은 서로를 보듬었다. 그런 화연마저 은서를 떠나가자 은서는 세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완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그 어느 날 완은 은서에게 돌아오려 했고, 세는 괴로워했고, 은서는 도망치려 했다. 은서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세를 사랑하고 있음을. 하지만 세는 은서를 시험했고 은서는 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들에게 혹은 그녀에게 불행의 그늘이 짙어진건. 아니 이미 그전부터, 셋이 함께였을때부터 불행이 시작된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 사랑스런 눈과 콧대를 따라 쓸어주고 싶은 코와, 입맞추고 싶은 입을 보지 못하고, 등을 바라봐야만 한다는게.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할 수 없거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거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사랑스러워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지 고민도 하고, 한편으론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이가 야속해진다. 그러면서도 이기적이게도 난, 나를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이는 나에게 친절하고 딱히 싫어 할 이유도 없건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럽기만 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난 그이를 외면한다. 나를 사랑해주지만 나는 결단코 그 사람을 사랑해 줄 수 없을 것만 같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들었던 모진 말을 그에게 고스란히 하기도 한다. 왜일까. 왜 여자와 남자는 이렇게 엇갈리고 엇갈리다가 아주 가끔 그것도 결코 길지 않은 기간 잠깐 마주보는 존재인 걸까. 시야에 서로만 가득차던 시절은 눈 깜짝할 새 아득한 엣날이 되고 점점 내 시야엔 그가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지게 되는, 그 이유는 뭘까. 답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일까. 원래...그냥..다...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 내가 부족하고 못난 탓일까. 나에게 그에게 혹은 우리 둘 모두에게 문제가 있었던 탓일까...

  그들이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완이, 은서가, 세가. 모두가 안타까웠다. 언제나 제 곁에 은서가 있을거라 생각했던, 세 곁에 있어야만 은서를 갈망하는, 뒤늦게 다시 은서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외면당하는 완이 안타까웠다. 언제나 바보같이 완을 기다리기만 했던, 완을 잊으려 필사적이었던, 완이 돌아오려 하는 것에 당황했던, 너무나 뒤늦게 세에게 마음을 남김없이 내어주곤 그 사실을 깨달은, 다시 에전처럼 완을 기다렸던 것처럼 이미 자신을 밀어버린 세를  기다리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닿으려 한 은서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언제나 완만을 바라보는 은서를 바라보는, 은서가 고스란히 완에게 하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사랑을 이야기하던, 완에게 들었던 대로 하는 은서의 모진말과 행동을 견뎌내는, 완이 떠나간 뒤에도 은서 곁에 있을 수 없었던, 완이 돌아오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은서를 의심했던, 끝끝내 은서를 마음속에서 밀어버린 세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들과 너무나도 소름끼치게 닮아있던 내가,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안타까웠으리라, 완과 은서와 세가 나와 닮아있어서. 나와 닮아 있기에, 그들이 안타까웠으리라. 만약 내가 그들과 닮아 있지 않았더라면 난 좀 더 편하게, 마치 강건너 불보듯, 이렇게 가슴아프지 않고 이 책을 무덤덤히 읽어나갔으리라.

  작가는 제목 바로 다음 장에 '사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들에게 바친다'라고 써 놓았다. 이별한 지 얼마 안되는 나에게 써놓은 것만 같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이런 글을 적어 놓으신 거에요?' 하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듯 하다. '대체 왜 이런 글을 적어 놓으신 거에요? 더 쓸쓸해지고 더 가슴아파하고, 더 후회하고, 더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러신 거에요?' 하지만 은서가 마지막으로 친동생 이수에게 남긴 편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보았다.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 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p.580

 벌써 몇번째 보는 구절인데도, 지금 보니 다시 코끝이 찡해진다. 은서는 우연히 술취한 이수의 입에서 '정혜'라는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고 혹여나 그도 그녀에게 닿으려고 애쓸까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바보같이 어리석게 아파하기만 하며 젊은 날을 보낸 자기자신에게 하는 독백일까. 우리가 사랑때문에 아파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이에게 닿으려고 하기 때문인 걸까. 나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지 않았기 때문인 걸까. 떠나려는 그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마 영원히 그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없겠지만, 저 구절이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해답과 아주 조금이라도 닮아있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이 책은 후유증이 크다. 잠을 청하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뜰때,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듯이 완과 은서와 세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올릴 때처럼 설레이고 기분좋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쓸쓸하고 안타까운 가슴아림 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가슴아림이 차차 수그러들때 즈음, 가슴아림이 아닌, 너 이외의 다른것에 닿지 말고 오로지 너에게 가라고 하는 은서를 들으며 잠들고 눈뜨게 될 것이다. 나와 같이 사랑했으니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들에게, 이 책이 쓴 약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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