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제이미 제파 지음, 도솔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빵집 문에는 분명히 아침 8시에 문을 연다고 써붙여 놓았지만 8시 20분이 되어도 문을 안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모든 일들이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듯했고, 시간이 많이 걸릴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로나에게 물었다. "이런 일들이 당신을 돌게 만들지는 않나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린 어디로 가야 할 일도 없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어딘가로 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지금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느 때보다 조급해 한다는 것이었다.  -p.4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정리하는 일이다. 적어도 문장 속에서. -p.79



  작년 여름, 논산에 있는 '마음수련원'이란 곳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저 다녀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새롭게 보일거라는 말을 듣고 의심쩍어하면서도 무작정 집을 떠났다. 그곳에 일주일간 있으면서, 티비와 컴퓨터는 물론이고 심지어 휴대폰, MP3까지 사용하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하는것이라곤 오로지 명상. 밥먹고 넓은 방에 모두와 앉아서 나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것들을 버리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엠피쓰리와 컴퓨터는 둘째치고 휴대폰을 사용할수 없음에 불안했다. 그리고 쓴 풀만 가득한 식단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주위 산들이 내뿜는 푸르름과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깨끗한 공기, 시원하고 기분좋은 바람, 아침에 눈뜨자 마자 듣는 기분좋은 새와 벌레들의 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쓰기만 했던 풀들도 씹으면 씹을수록 맛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새벽에 밖으로 나가면 안개에 둘러쌓여 정말 1m앞도 분간할수 없었다. 오직 내주위만 아스란히 보였다. 몽환적이면서도 푸근한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내가 괴로웠던 건 오직 내가 만든 틀에 나를 가두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진 않았다. 그곳이 좋았지만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내로 나와보니 큰 길에 버스며 승용차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고, 그 덕에 공기 또한 탁하며 버스 터미널엔 풀벌레나 새소리가 아닌 사람들과 TV소리로 귀가 따가웠다.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자 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기 싫다....아니 다시 그 자연속에 있고 싶다...


  아마도 제이미 제파가 부탄을 떠나 캐나다로 돌아갔을 때 느낀 심정이 그때의 내 마음과 조금 닮아 있을 듯 싶다. 아니 나는 상상할수 없을 만큼 그런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그녀는 1,2주가 아닌 무려 2년동안 부탄에 있으면서 피부색과 눈동자색과 머리색이 다른 것보다 더 많이 다른 그들의 가치관과 마주했을테니 말이다. 처음에 그녀는 24년간 캐나다 밖을 떠나보지 못한 것이 싫어 무작정 부탄에 왔다. 부탄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믿을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을 맞이했다. 그들이 '멀미 혜성'이라 부르는 버스에서는 바닥에 토하는 사람을 물론이고 버스 뒤에서 아낙이 애를 낳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배정받은 페마 가첼에서는 밤마다 쥐들의 올림픽이 열렸고, 쉬쉬 소리내는 곤로는 종종 생명을 위협했고, 수도꼭지는 물이 나오는때보다 안나오는 때가 더 많았고, 지붕에 난 구멍은 비가 올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빗방울을 떨어뜨렸다.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캐나다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탄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곳에 그녀는 적응을 했고, 그 곳을 사랑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녀들이 가르치는 아이들 역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그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그곳에서 부탄왕도 만나는 경험을 하다 좋은 기회가 생겨 강룽에 있는 세루체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부탄의 남부와 북부의 오래된 적대관계를 새롭게 알게 되고, 외국인으로서 자신은 그 문제에 어떠한 간섭도 할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도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되고, 결국엔 그 사랑의 결실과 함께 가족을 이루어 부탄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과연 그녀는 부탄에서의 첫날, 이런 그녀의 앞날을 손톱만큼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세상에는 그곳을 여행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행자를 변화시키는 이상하고 놀라운 장소가 있다.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화했다. 캐나다에서 대중교통이 있는데도 승용차를 사용하는 게 사치로 느껴졌고, 쇼핑센터의 모든 물건이 그닥 필요없는 물건처럼 보였다. 식사하는 내내 틀어놓은 TV가 거슬렸고, 개인사생활이 보장되어있다는 것은 즉 안전하지 않다는 말로 들렸다. 그대신 그녀는 몇시간씩 걷는것에 익숙해졌고, 멀미혜성조차 감사한 존재가 되었다. 비닐봉지며 양철통들은 쓰고난뒤 또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깨끗히 씻어 말려놓는 습관이 생겼고, 부탄인들처럼 오른손으로 식사하는 법을 익혔고, 비밀이 없는 부탄이 불편하기 보단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이렇게 차근차근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편안함들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편리하게 해주는것은 확실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건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건 무엇일까. 


  우리는 가끔 행복하다는 것과 편리하다는 것을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단 1분도 자신의 내면에 눈돌릴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 그것이 자신의 행복과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현대인들을 보면 우리는 꽤 자주 그런 혼동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관은 옳고 그와 다른것은 모두 배척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걸 알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깨어있지 않기 때문일까? 너무 오랜 기간 해온 생각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기가 힘들기 때문일까?
 

  제이미는 이 책을 통해 여러가지 불교 윤리도 전해준다. 그 내용이 마음수련원에서 배운 점과 많이 닮아있어 더욱 재미있었다. 모든 마음의 괴로움은 집착에서 벌어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삶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삶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죽음에도 초연해 질 수 있다. 부탄인들은 시체를 태울 때 관에 넣어서 안보이게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운다. 제이미는 그 끔찍한 광경에 질색하지만 주변의 부탄인들은 모두 초연한 모습이다. 그모습에 제이미는 지금의 육신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육신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말은 진부할정도로 많이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제이미는 단지 아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탄에서 오감을 통해 그런 사실 하나 하나를 깨달아간다. 


  우리는 아는것은 많지만 정작 깨달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부탄인들은 우리에 비해 지식이나 아는것은 적을 지 몰라도, 삶의 본질에 대해 그들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대해, 만물의 진리에 대해 더 많이 깨달은 게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고 우리는 불행한게 아닐까. 만약 무엇하나 부족함은 없지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그녀와 내가 얻은 마음의 평안을 그 누군가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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