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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 나의 작은 날들에게
류예지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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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나 지인들의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때론 슬픈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처음엔 행복한 결실은 맺은 그들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축복해주었다. 슬픈 소식이 들려오면 한달음에 달려가 밤새 있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일이 무덤덤해졌다. 그렇다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무덤덤해졌을 뿐이다. 몇 해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이듬해 외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갔을 때 슬픔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그것들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차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슬픔은 점점 사그라들어갔고 아련하고 보고싶지만 그 감정을 묻어두는 법을 배웠다.
하나 둘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갔다. 고향에 남아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들의 앞날을 축하하면서도 내가 취준생이었을 땐 초조함과 불안함이 나를 무너지게도 만들었다. 한 해 한 해가 지나가며 종종 안부를 묻던 친구들은 이제 명절이 되어서도 겨우 한 번 보기 힘들정도가 되었다. 각자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서로의 것들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되면서 할 얘기도, 함께할 거리도 사라져갔다.
모든게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누구나 겪을 자연스러운 과정임에도 과정을 겪어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것들이 당연한 일이라 말해준 이가 없었다. 그저 혼자 묵묵히 이겨내가야 하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는대 너무 많은 위로가 되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따듯했고 포근했다. 아련하고 아프기도 했다. 오래오래 아껴두고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끝이 난 이야기. 이렇게 아쉬움이 많이 드는 책은 정말 오랜만인 듯하다. 잊고 있던 추억들을 간지럽게 건드려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만드는 느낌이 너무 좋아 아직도 콩닥콩닥 마음이 뛴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문장 하나하나가 그 어제의 뭉텅이를 하나 하나 펼쳐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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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영우.최양현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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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일본은 진주만 공습 이후 그 기세를 몰아 독일, 이탈리아 등 추축국과 연합을 맺어 식민지배의 야욕을 더 거세게 불지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어 전장으로 나아가는 상황. 나름 명망있고 지식인이었던 지역 유지 최씨 가문에 들이닥친 비극. 누군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고 장남인 형을 전쟁으로 보낼수도 그렇다고 어린 동생을 전쟁으로 내몰 수 없던 그는 모두를 대신해 ‘포로감시원’이라는 직책으로 고국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포로감시원으로서의 삶은 수많은 내적 갈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감시자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포로들의 노역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에는 물자 공급도 생각보다 원활해 식량공급 등에서 문제를 겪지 않았지만 전세가 점점 연합국 쪽으로 기울어가면서 물자 공급이 줄어가며 관리에 차질이 생겨갔다.
모두가 알다시피 1945년, 전세가 역전되고 연합국은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곳에서 일본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수용생활. 역설적이게도 그는 일본이 사로잡은 연합국 포로를 관리하던 곳에 추축국 포로로 갇히게 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꿈이 그리던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반겨줄 이는 가족 외에는 없었다. 이제 막 독립한 신생국가의 어수선함, 피지배국민이면서도 전범국에 동조했다며 남은 꼬리표. 시대가 할퀸 상처는, 그리고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5년이란 시간은 꿈많고 호기심 많던 그를 바꾸어 놓았다.
여전히 일본군과 포로감시인, 포로감시인과 포로들과의 관계는 정확한 진상이 규명된 것이 없다고 한다. 그 전쟁의 피해를 사과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채 살았을 수많은 이들. 2000년대 들어서야 진상규명을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생경한 포로감시원. 누군가 소리내어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을 기억하지 않았을 이름. 그들의 소리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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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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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펼치고선 적잖이 당황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여전히 현대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내로라하는 작가들(헤밍웨이, 보들레르, 랭보, 모파상, 카뮈,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파묵과 피츠제럴드 등)도 많았지만 로랑생, 플로베르, 모디아노, 라히리, 솔닛 등 생소한, 아니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도 여럿 보였다.

당황스럽고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고 차분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문학 여행의 시작점 ‘파리’. 예술과 문학, 문화의 중심지. 예술가들의 고향이자 요람, 무덤이자 종착지. 작가님은 파리의 유명하지 않은 미라보 다리를 거닐던 기억을 회상하며 파리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 다리를 수없이 건넜을 아폴리네르가 쓴 시 ‘미라보 다리.’ 시를 음미해본다. 직접 그 다리를 건너본 건 아니었지만 고즈넉한 놀이 지던 저녁 미라보 다리를 건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로랑생이 서로를 만나기 위해 미친듯이 뛰었던, 각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가운데 위치해 있던 곳. 둘의 격정적인 사랑을 담은 곳이 바로 미라보 다리였다. 누군가에겐 단지 강을 건너게 해줄 수단으로써 존재하던 것이 사랑과 설렘을 가득 담은 공간으로 변한다는 것. 뭔지 모를 감동이 찾아왔다.

그리고 무대는 서서히 대서양을 건나 미국 시카고로 바뀌어간다. 그곳에서 전세계를 무대로 한 짧으면서도 강렬한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 헤밍웨이를 만난다. 헤밍웨이의 소설의 요람이었던 북오크파크거리 339번지. 왜 그가 작품에서 죽음의 서사를 강렬하게 그리는지, 그의 남성적인 강인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에 대한 강의가 끝나고 다시 무대는 파리로 바뀌어간다.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의 주요 무대가 파리로 귀결되긴 하지만 시선은 꼭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프랑스 내 중소도시, 소도시로도 향한다. 그리고 꽤 많은 여정을 소화해 내는 곳 중 하나가 노르망디 지역이다. 4년 전 여름 정말 운이 좋게도 노르망디 지역에 갈 일이 생겼다. 그때 마주한 광활히 펼쳐진 지평선과 손에 닿을듯 가깝게 내려앉은 구름, 푸른 초원과 그곳을 여유롭게 거닐던 가축들. 여행 내내 우중충했던 그곳이 왜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는지 이제야 새삼 이해가 된다.

그리스와 터키, 상트페테부르크를 거친 여행은 마무리되고 이제 그 무대는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문예지 새내기 기자시절이었던 때 부터 글을 쓰는 현재까지 작가님이 겪어왔고 겪고 있는 한국 문학에 대한 견해를 들어볼 수 있다. 젊은 청년 작가들이 당면하며 느낀 시대상과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방식, 그리고 그 문제들을 청년들은 그리고 장년들은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내게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장을 덮은 후 남은 두근거림. 다채롭고 신나는 여행을 마치고 온 느낌이다.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사유를 했던 것 같다. 방대한 문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사유하는 작가님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일기도 했다. 내 얕고 짧은 순수문학에 대한 견문과 독서 편식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여러 위대한 순수문학을 다채롭게 맛보았던 시간. 다채로움은 더 깊고 진하게 순수문학을 접해보고 싶은 아쉬움과 열망을 남겨주었다. 자기개발서나 경제/주식 서적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해줄 책이 될 것이리라 감히 장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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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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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위대한 순수문학을 다채롭게 맛보았던 시간. 다채로움은 더 깊고 진하게 순수문학을 접해보고 싶은 아쉬움과 열망을 남겨주었다. 자기개발서나 경제/주식 서적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해줄 책이 될 것이리라 감히 장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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