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앨리슨 위어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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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일대기를 나타내는 책인데 엘리자베스의 공적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왕의 숨겨진 사생활을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구성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영왕의 시대는 여왕의 선친인 헨리8세가 후계자를 얻기위하여 만든 영국 국교회로 인하여 권력과 부를 얻은 계층과 부와 권력을 읽은 카톨릭 세력의 싸움이 이어지는 시기인데 헨리8세의 뒤를 이은 소년왕 에드워드6세의 국교회 계승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상태에서 죽고 그후 메리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카톨릭의 세력이 부흥을 하면서 숙청이 이어져서 피의 메리 라는 별명을 가지게된 메리1세를 뒤이어 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는 국교회를 부흥 시키고 카톨릭의 세력을 누르지만 피를 보기 싫어한 천성으로 무자비한 종교 탄압은 없고 나라는 평화를 유지한다.

 

여왕의 뒤를 이어 나라의 안정을 유지 하기 위하여 대신들은 여왕에게 결혼을 권하지만 여왕은 권력의 분점을 가지고올 결혼을 미루고 처녀로써 생을 마감한다.

 

1. 여왕이 결혼을 안 하고 처녀 여왕으로 죽은 이유는 ?

결혼을 하면 여왕의 권력이 남편에게로 쏠리면서 여왕은 얼굴 마담으로 전락할 확율이 너무 높았음 그 이유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여성은 집에서 가정을 돌 보는것이 최고의 미덕인 사회여서 여왕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결혼과 동시에 실제 권력은 남편에게 향하는 문제가 발생

 

2. 그러면 여왕은 남자를 싫어하는 사람인가 ?

여왕은 젊고 잘생긴 남자를 무척 좋아하는 일반적인 사람이지만 결혼에 대하여 서 많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결혼을 미루고 남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행위를 무척 좋아하는 나르시즘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3. 여왕의 성격

여왕은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서 우유부단함을 많이 보여서 여러 대신들을 힘들 게 하였는데 그러한 행동으로 말미 암아서 사후 영국에 많은 문제점을 남긴다.

스콜틀랜드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의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어서 구 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희망을 주어서 여러 번의 반란이 발생함

메리 스튜어트의 반란 소식을 여러번 용서를 하였으나 구교인 그녀의 지배욕을 감당하지 못한 대신들과 의원의 권고로 처형을 함

 

4. 외교 문제

당시의 유럽 사항은 영국은 3류 국가이고 프랑스와 스페인이 패권을 겨루는 상 황에서 여왕은 자신의 혼인 문제를 가지고 여러 나라와의 외교 문제를 풀려는 행 동을 하면서 영국의 국력을 높이기를 기다리는 행동을 함

당시의 상황은 종교 문제로 온 유럽이 혼란을 격는 상황에서 유럽의 패권은 구교 를 믿는 나라들이 가지고 있어서 신교를 믿는 영국을 힘들게 하던 상황이 발생함

 

5.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억하게 만든 무적 함대와의 전투가 있는데 이책은 그 부분은 적게 다루고 있고 여왕은 생전에 전쟁을 혐오 하는 경향을 보임 이유는 전쟁에 소모되는 재원과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음

 

전체적으로 여왕의 사생활을 잘 보여주는 훌융한 책 입니다. 하지만 여왕 당시의 영국과 외국의 전쟁등은 미미한 부분을 차지 함으로 여왕의 생애를 잘 나타내는 책으로 보시면 만족을 할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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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의 청제국
마크 C. 엘리엇 지음, 김선민.이훈 옮김 / 푸른역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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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구의 주류인 한족에 비하여 350분의 1로 소수 민족 이었던 만주족이 300년 동안 거대 제국 청을 유지할수 있었던 이유를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청 보다 먼저 중국을 지배 하였던 몽골족의 원제국은 내부 분열로 100년을 버티고 중국인의 명나라에 자리를 내 주었는데 만주족의 청제국은 초기 강희,옹정,건륭 3대 황제의 전성기 를 100년을 유지하고 이후에 서태후의 세계 정세를 인식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제국을 서양 식민주의자 들에게 분할이 되는 수모를 당하고 한족인 손문의 개혁 운동으로 제국의 막을 내렸지만 원 나라와는 틀리게 청 나라 시기에는 다수의 한족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살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인구의 폭팔적인 증가를 들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책은 그러한 청제국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만주족의 구성원을 이루고 민족적 모습을 유지하게 만들어준 팔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청제국의 팔기는 만족 팔기 , 몽골 팔기 , 한족 팔기로 나누어 지는데 이러한 구분은 만주족을 한족에게 동화 시키어서 민족의 뿌리를 없애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도 사용이 되었고 군사적 운용을 위한 군사제도로 이용 되었습니다

 

만족 팔기의 구성은 만주에 살던 건주,해서,야인 여진을 주 구성원으로 성립 되고 한족 팔기는 원래 변방에 살던 한인과 전투로 인한 포로들과 항복한 한인을 주 구성원으로 성립이 되어서 하나의 사회적 특권 계층으로 황실의 보호와 관심을 받으면서 팔기만 모여사는 분리적 정책을 사용 하였는데 그 이유는 유약한 한족 문화를 받아 들여서 간겅한 팔기의 문화를 침식 시키지 않기 위한 고유 지책으로 작용을 하였습니다.

 

팔기의 주둔지는 수도인 북경을 중심으로 변경 지방의 국경선을 위주로한 곳과 수로를 중심으로한 경재와 교통의 요지에 군사 주둔지를 두어서 한족의 반란을 막고 청 제국의 강건함을 백성들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이러한 방식을 사용 하였는데 팔기 의 지방 주둔지는 한인과의 유대를 줄이기 위해서 만성 이라는 이름의 주둔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게 하였다.

 

팔기의 지방준은 주방으로 불렸는데 그곳의 수장인 장군은 황제와 주첩을 이용한 대화가 가능 하여서 그 지방의 많은 정보를 황제 에게 보고 하는 역할을 하였고 그 지방의 민간 관리와 협력을 하여서 많은 일도 하면서 만주족의 기상을 한인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기인은 나라에서 월급을 주고 대를 이어서 기인으로 살면서 나라의 군사를 담당 하였는데 18세기로 들어 서면서 많은 숫자로 늘어난 기인으로 인한 나라의 재정 압박이 강하게 작용 하였다 전쟁이 없어지고 나라에서 생활을 보장 하자 많은 기인들은 나태 해지면서 제국의 군사력도 떨어지는 영향을 주기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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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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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미동 출판사에서 서평을 목적으로 제공을 받은 도서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등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악한 부분을 강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을 할 수가 있는 선한 부분을 넘어서는 더욱 보편적으로 인류사에 활용을 할 수가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는 사람들이 남긴 것이 바로 경전이고 많은 경우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서 일정한 공동체가 형성이 되어지고 더욱 발전을 거듭을 하면서 완성이 되어지는 것이 현실에 존재를 하는 종교집단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구자들이 남긴 말들이 바로 경전이 되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종교색을 표방을 하고 있는 경전에 대하여서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왜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집단을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무리속의 외톨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과 함께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서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참모습을 실현을 할 수가 있는지에 대하여서 과거의 인물들이 남기고 간 어록을 통하여서 그것을 바탕으로 실천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수가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특정한 종교적인 부분을 강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기독교,유교,힌두교의 경전과 우리나라의 고유종교인 천도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하여서 각자의 경전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왜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고민을 하였던 부분들과 그러한 고민들을 해결을 하기 위하여서 선택을 하였던 각자의 방식에 대하여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바라볼수가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으면서 그러한 방식에 대하여서 거부감이 없이 자신에게 맞는 경전을 찾아서 원전을 보면서 공부를 할 수가 있는 여지를 많이 주고 있는 책입니다.

 

 

 

 

 군자는 정도를 걸어간다는 의미가 많은 경우에 왜곡이 되어서 재생산이 되어지고 있는데 자신이 군자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진정으로 정도를 걸어가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볼수가 있는 글인것 같습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하여서 기본적으로 무의식속에서 추구를 하고 있는 숨쉬기를 활용을 하여서 인격적으로 수행을 할수가 있는 너무나 쉬운 방법인것 같지만 실제로 이러한 수행을 완수를 하는것이 어려운 현실인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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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흥망 : 청나라 - 중화의 황혼 천추흥망 8
쉬홍씽 지음, 정대웅 옮김 / 따뜻한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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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년을 자랑을 하는 중국의 역사를 지배를 한 세력들이 바로 봉건왕조 국가들인데 그러한 국가의 마지막을 장식을 하는 나라가 바로 만주족이 건국을 한 청나라이다.

몽골족의 원나라를 멸망을 시키고 한족들이 성립을 한 명나라가 내부의 혼란으로 붕괴를 하면서 손쉽게 중원으로 진출을 할 수가 있었는데 현재의 언어로 만주라고 부르는 평원지역을 지배를 하고 있던 여진족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구분을 하여서 3개의 세력으로 구분이 되었는데 조선과 국경을 붙이고 생활을 하였던 야인여진이 아닌 명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건주여진의 족장의 한명이 누르하치가 자신이 충성을 하고 있던 명나라의 힘과 지배 기술을 배우고 그러한 것들을 자신의 부족에 적용을 하고 한족의 기술을 이용을 하여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그러한 힘으로 명나라의 혼란기에 중원을 정복을 하였다.

 

1. 청나라의 융성기

강희. 옹정. 건륭의 130년을 청나라 최고의 흥성기로 기록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 현재의 국경이 완성이 되었고 나라의 혼란을 진압을 하여서 인구가 폭발적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책에서는 대략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고 옹정시대를 강희와 건륭의 과도기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보면 강희와 건륭은 자신의 뜻에 따라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신하들의 부패를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아서 나라의 국력을 신장을 하는데 는 일조를 못하였고 국력을 나타내는 국고의 건 정성은 옹정황제가 13년 동안 이륙을 하였다고 할 수가 있다.

 

세 명의 황제들이 소수인 만주족의 지배체계를 위하여서 당시의 지식인들의 욕망을 억압을 하는 문자 옥을 만들고 사상을 억압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을 보호를 하는 정책도 많이 만들어서 평화를 유지를 하고 문화적으로 성장을 하였다는 사실이 누락이 되어있다.

 

2. 외세의 침략

서양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서 중국에 아편을 유통을 하면서 많은 양의 은들이 서양으로 넘어가고 중국의 경제력이 망가지는 등 문제를 야기를 하였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를 하기 위하여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서 상황을 개선을 하려는 노력에 대하여서 거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국의 상황이 악화가 되었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현재의 모습을 개선을 하려는 사람들을 소개를 하는 장이 있는데 그들의 저작과 사상을 말을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러한 일들을 하였고 실패한 이유에 대하여서는 개론서라는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인 것 같다.

 

중국 역사에서 마지막 봉건 국이라는 역사를 보아서도 청나라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는데 왜 청의 역사가 중요한지에 대한 개론서로 볼수가 있고 자세한 내용들이 필요하면 다른 책을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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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흥망 : 명나라 - 대항해의 선구자 천추흥망 7
안쩐 지음, 정근희 옮김 / 따뜻한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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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족인 몽골족이 지배를 하던 원나라의 시기를 벗어나서 한족이 지배를 하는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왕조를 건국한 황제중에서는 한나라의 유방과 더불어서 가장 미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주원장 :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연재해로 부모와 형제를 읽고 어린나이에 부잣집의 머슴으로 들어 가지만 그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황각사의 승려로 들어간다.

당시의 재해는 광범위 하여서 숙식을 해결을 하려고 들어간 절에서도 안정을 못찾고 행각을 하는 신세로 전락을 하는데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서 민간의 어려움과 관리들의 부정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확고히 하였다.

 

군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주원장은 자신이 만든 나라인 명나라가 영원토록 후손에게 승계가 되기를 바랬는데 그러한 일환으로 자신의 뒤를 이어서 황제가 될것으로 확정이된 태자의 나약함이 마음에 걸려서 많은 공신들을 죽이는 옥사를 일으킨다.

 

호유용과 남옥을 위시한 공신들의 문제를 해결을 하기 위하여서 많은 사람들을 연좌를 시키어서 죽였는데 이러한 행위는 절대황권을 만들어서 명나라가 유지가 되는 동안에는 황권에 반대를 하는 신하들이 발생을 못하고 멍청한 황제도 자신의 천수를 누리는 경우가 발생을 하여서 황제에게는 좋았지만 나라에는 안 좋은 일이 되었다.

 

금의위 : 주원장이 자신의 뜻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숙청을 하기 위하여서 만들어진 정보기관으로 중국영화에 많이 등장을 하는 동창과 함께 악명을 떨치게 된다.

원래는 황권을 보호하기 위하여서 만들어진 기관이지만 황제의 눈을 속이고 자신들의 권한을 이용을 하여서 많은 부정과 부패를 만들어낸 공포정치의 산물이다.

환관들이 지배를 하던 동창은 3대 황제인 영락제가 자신의 허물인 황위 찬탈로 인하여서 신하들을 믿을수 없게되자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인 환관을 이용하여서 만들어진 정보기관으로 환관을 우두머리로 하였는데 많은 인원들을 금의위에서 지원을 받아서 금의위와 권력투쟁을 벌이게 되는 빌미가 된다.

 

영락제 주체 : 주원장의 아들로 당시에는 변경이던 연경에서 북원군을 상대로 하는 전투를 이끌던 왕이었는데 자신의 조카인 건문제가 등극을 하여서 각지의 번왕들의 권력인 군사력을 빼았고 봉지를 몰수를 하자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4년간의 전투를 통하여서 황제위를 차지를 한다.

 

자신이 피로 물들인 남경의 민심이 자신을 거부를 하자 근거지인 연경으로 수도를 이전을 하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기용을 하였지만 많은 신하들이 거부를 하자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처지인 환관들을 이용을 하여서 많은 업무를 처리를 하면서 명나라치세 동안 계속 문제가 되었던 환관의 우대가 시작된다.

 

정화의 대항해 : 무력으로 탈취한 자신의 권위를 만백성에게 보이기 위하여서 많은 배를 건조를 하였는데 배를 건조를 하는데 사용하는 목재의 반입으로 인하여서 당시의 여러곳에서 많은 반란이 발생을 하였다고 한다.

대 함대를 이끈 정화는 정란시기전 부터 주체와 같이한 믿을수 있는 심복 환관이었고 불교와 이슬람교 양쪽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여서 각국의 종교문제에 대처가 쉬워서 책임자로 되었는데 명나라의 위력을 알리고 많은 안 알려진 곳까지 항해를 하여서 해상을 통한 무역의 거점이 만들어 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초기에 너무 많은 돈이 투자가 되었지만 투자대비 수입이 저조를 하여서 정화가 이룩한 성과는 폐기가 되었고 명나라는 쇄국을 하게 되면서 국제사회에서 멀어지게 된다.

 

명나라의 황제들을 보면 다른왕조에서는 발견이 안되는 해괴한 황제들이 많이 발견이 되는데 이러한 황제들이 지배를 하면서도 나라가 유지가 될수 있었던 이유로는 초대 황제인 주원장이 신하들을 길거리의 잡초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신하들은 대전에서 폭행을 하는등 황제의 권위에 대항을 할수가 있는 방법들을 제거를 하여서 황당한 황제들이 많았던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에 군대를 파견한 명나라의 만력제는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황제의 자리를 지키었지만 조정에 얼굴을 내밀고 신하들과 이야기를 한 경우는 몇번에 불과를 하여서 조정대신들이 황제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황제들이 멍청하고 신하들이 무능 하였지만 그당시 명나라를 공격을 할만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은 이유는 다른 단명황조와는 다르게 주변에 외세들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적었고 황제의 감시망인 동창과 금의위의 위세가 너무 강력하여서 백성들을 감시를 하는 체제를 만들고 감시를 하였기 때문에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라를 유지를 한것으로 보인다.

 

명나라의 정치체제는 그전의 승상이 모든것을 관리를 하는 체제에서 황제의 일인독재로 변경이 되었는데 황제가 모든 일을 처리를 하면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점들을 보강을 하기 위하여서 내각대학사라는 장치를 만들어서 비서진을 만들고 그들을 통하여서 정치를 하였다.

 

일명 내각과도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던 비서진들은 초기에는 황권에 눌려서 자신의 역활을 못하엿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권한이 강하여지고 내각으로써의 기능을 하였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는 신하들의 면면이 능력이 아닌 황제와의 관계로 결정이 되면서 자신의 역활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명나라의 유명한 신하들과 나라를 괴롭게 만들었던 여러가지의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황조 국가의 우두머리인 황제에 대하여서는 주원장과 영락제 두명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나머지의 황제들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인물들로 묘사가 되는데 그러한 인물들이 오랜시간동안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정도로 체계를 만들은 주원장의 능력도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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