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
성제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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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신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르네상스의 태동에 대하여서 많은 도시국가들이 자신들의 명성을 위하여서 움직였던 시기를 벗어나서 나름의 영역을 가지고 분열의 장을 걸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부를 획득을 하여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을 하였던 이탈리아 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예술의 도시인 피렌체에 대하여서 르네상스를 만들었던 시기의 시작과 끝의 부분에 현재에 남아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던 사람들과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을 하였던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의 시작은 지중해가 유럽의 모든 것을 좌우를 하였던 시기에 이루어진 이탈리아 상인들의 자본에 대한 융성과 많은 자금을 가지고 인생을 즐겁게 보내는 시기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내세에 대하여서 걱정을 하는 종교적인 분위기의 상인들이 자신들의 자금을 가지고 당시에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금의 부족으로 인하여서 어려움을 경험을 하고 있던 수도원에 자금의 지원을 하면서 만들어진 정경유착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건물만이 있고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성당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 황폐한 모습만을 남기고 그러한 상황에서 주변에 있는 대우를 받지는 못하지만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었던 상인집단에 대하여서 일종의 타협을 하면서 상인들의 돈을 이용을 하여서 성당에 장식을 하고 그러한 품목을 만들기 위하여서 고용이 되었던 장인들의 움직이과 자신들의 돈을 이용을 하여서 신심을 들어내고 있지만 최선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던 상인들의 행동이 보여주는 예술에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초기에 만들어진 아직은 종교가 지배를 하는 풍경에 대하여서 보여주고 피렌체를 대표를 하는 가문인 메디가의 형성과 그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만들어가는 진정한 르네상스의 과정에 대하여서 시간순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글을 모르는 많은 시민들을 위하여서 자신이 생각을 하는 바탕에 대하여서 그림으로 설명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서 만들어진 많은 작품들과 그 작품들에 대하여서 시간의 흐름으로 인하여서 들어나기 시작을 하는 각 가문의 숨겨진 생각과 권력의 향방에 대하여서 움직이는 시민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서 많은 자금이 들어가던 시기의 작품에서 돈이 많은 상인들이 자신들의 낮은 신분을 높이기 위하여서 많은 돈을 들여서 작품을 생산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서 자신들의 신분을 상승을 하게 만들면서 에술가들과 일종의 공생을 하는 과정과 자신들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자금을 지원을 하는 사람들의 흥미에 맞추어서 작품을 제작을 하였던 당시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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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사 이야기
스다 부로 지음, 이완진 옮김 / 나이츠나이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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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를 주름을 잡았던 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각자의 활동상을 담고만 있지 그 기사가 활동을 하던 시대의 상황과 주변의 상황에 대하여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책이 없었던것 같은데 중세의 대표격인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잘설명을 해주고 있는 책인것 같다.

기사의 시초라고 할수가 있는 프랑크인들이 만들은 나라인 프랑스를 배경으로 기사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살고 있엇던 시기의 시대상황을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기사의 시초는 게르만족의 전쟁을 하는 계층인 전사에서 유래를 하였는데 먹고 사는 문제가 기본이 되었던 시기에는 모두가 무기를 가지고 전투를 하였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되고 자원이 넘치는 시기가 도래를 하자 자연 스럽게 인구가 늘게되고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정착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하여서 전쟁에 동원이 되면 경제가 망가지므로 전쟁을 주업무로 하는 사람들인 계급인 전사 집단이 생겨나고 기술의 발전으로 그들이 사용을 하는 무기가 좋아지고 상대를 하는 집단의 방어력이 높아 지면서 많은 훈련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런 훈련을 해내고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있는 집단이 필요 하였고 그런 집단으로 뽑혀서 훈련을 받던 사람들이 바로 기사이다.

 

기사들의 위치는 귀족계급의 가장 아래를 차지 하면서 전투를 위하여서 존재를 하는 계급이었는데 기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인기를 끌면서 기사의 위치가 올라가고 많은 귀족들이 기사의 흉내를 내기에 이른다.

기사들이 자신들의 이름의 알리는 방법으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는 것이었는데 전쟁이 줄어들고 왕권이 강화가 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모의전투를 행하는 일명 토너먼트가 유행을 하였는데 영화사에 많이 나오는 둘이서 서로 상대방을 보고 창을 가지고 달려가서 쓰러트리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기사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서 갑주의 발달을 가져왔다.

 

기사들은 대체로 귀족가문의 차남부터 시작을 많이들 하였는데 그러한 이유는 장남들은 부모에게서 부를 물려 받았지만 나머지 형제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지를 마련하고 부를 이룩을 하여야 되어서 가장 쉬운 방법인 기사가 되었다고 한다.

기사들은 영화상으로만 보면 약자를 위하는 멌있는 사람들로 표현이 되고 있는데 약자란 같은 계급의 귀족층을 말하고 그 이하인 일반 평민들은 사람으로 대접을 안하고 자신들과는 다른 인종으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기사계급으로 인하여서 변화된 모습은 ?

기사들의 몸을 보호하고 적을 쉽게 무찌르기 위한 무기의 개발로 인하여서 야금술의 발달을 가지고 왔고 계급 사회를 구성을 하는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알리기 위하여서 예절을 중시를 하였고 음식등 문화의 발달이 이루어 졌다고 생각을 한다.

기사들을 기르고 그 집단을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 갔는데 그러한 돈을 만들기 위하여서 농민들은 전투에 참가를 하지않고 농사일에만 집중을 하여서 농업 생산력이 늘어났고 인구의 멸실이 줄어 들었다.

 

전쟁을 기사계급만으로 하는 분위기가 이루어 지면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집단인 기사들은 100명 정도의 소규모로 전투를 하게되고 인명의 살상이 줄었지만 그들의 무기들을 만들기 위하여서 많은 돈이 들어가서 농민들의 생활은 변화가 없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기사들은 영향력을 키우려는 왕들에게는 맞지가 않았고 왕들은 기사대신 전쟁시에만 고용을 하는 용병을 선호를 하였고 무기의 개발로 인하여서 기사계급이 사라지게 된다.

 

중세의 기사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에 대하여서 잘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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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과 20세기 중국 선인한국학 연구총서 47
박강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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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쇄국정책을 끝을내게된 계기가 된 아편전쟁이 중국에 남긴 상처를 그리고 있는데 일반 국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그리고 있다.

 

중국에서 아편을 상용을 한 시기는 명나라 시기에 시작이 되었는데 그당시에는 영향력이 적다가 청나라 옹정시기 부터 아편의 문제가 많이 발생을 하여서 금연을 강제를 하였지만 영국의 중국과의 무역역조로 인하여서 적자가 심하여지자 영국의 이익을 위하여서 인도에서 생산을 한 아편을 공급을 하였고 그러한 밀무역으로 인하여서 중국의 은이 영국으로 많이 들어가서 중국의 경제문제가 심각해 지자 중국은 아편을 금하는 정책을 반포를 하고 영국과 아편 전쟁을 일으키는데 영국에게 전쟁에서 패하고 아편의 자유로운 유통이 일어나자 국민들이 아편에 취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상류층이 자신들의 멋을 위하여서 아편을 상용을 하면서 상류층의 모습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하류층의 사람들에게도 아편의 폐해가 미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경제가 망가지기 시작을 하자 세수의 확보를 위하여서 아편에 세금을 매기는 정책을 하기 시작을 한다.

중국 정부의 세수에서 큰 부분을 아편무역이 차지를 하면서 민간경제에 문제가 발생을 하고 아편의 문제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지자 중국에 아편을 공급을 하는 영국이 국내와 국외의 여론으로 인하여서 청나라 정부와 아편을 근절 하기로 약정을 하고 실행을 하였지만 청나라가 혁명으로 무너지고 민국이 탄생을 하면서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편에 대한 규제는 강화가 되었지만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원세개가 칭제를 하면서 각지방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군벌들이 자신들의 독립을 위하여서 군비경쟁에 빠져들고 세수의 확보를 위하여서 군벌들이 아편을 이용을 하여서 군자금을 마련을 하는 방법으로 사용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아편을 금지하는 정책이 통하지를 않았고 중앙권력을 가지고 북벌을 추진을 하던 남경의 장개석 정부도 자신들의 손에 있는 지방이 적어서 세수의 확보가 적었고 북벌을 위하여서 많은 군자금이 필요 하면서 아편을 이용을 하여서 군비로 마련을 하는 정책을 행하였고 북벌의 완성후에는 아편을 금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으나 중일 전쟁과 국공 내전을 경험을 하면서 정부에서 아편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성공을 못하였다.

 

일본이 지배를 하던 만주국에서 아편이 횡행을 하였는데 일본정부가 핑계로 하던 그전의 정부인 장작림과 장쉐량의 부자 군벌들은 동북 지방의 특산물인 대두를 이용을 하여서 세수의 문제를 해결을 하였기 때문에 아편을 이용한 세수의 확충에 신경을 쓰는 경우는 없었다.

 

상해의 연관 : 외국의 지배를 받는 조계지가 많은 상하이에서는 아편을 이용을 하여서 조계지에서 사용을 하는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서 중국의 법에 관계를 하지 않는 조계지에서 아편을 피우는 연관이 성행을 하였는데 그곳의 연관들은 변두리의 누추한 가게들만 있는것이 아니라 엄청난 규모를 자랑을 하는 설비를 갖추고 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이 아편을 피우는 곳이 있었는데 연관에서는 아편만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사교를 위하여서 들르는 곳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세계적인 아편과 마약의 해악을 이야기 하면서 국외,국내의 소리를 의식한 외국 정부의 관리로 연관들은 뒷거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요즘에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담배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담배도 백해무익한 물건이고 중독성이 있지만 그러한 중독성이 마약류보다는 폐해가 적다는 이유로 합법적인 물건으로 대접을 받고는 있지만 실상은 담배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많은 세금이 주 목적인것 같다.

 

담배도 중독성이 있는 물건이라서 계속하여서 흡연을 하고 그러한 일들을 나라에서 막자는 말들이 나오고 광고도 활용을 하여서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담배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의 문제로 인하여서 담배회사를 없애는 처방을 하고 있지는 못하는것 같다.

 

당시의 중국도 세수의 부족으로 아편이 나쁜 물건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물건에 세금을 붙혀서 나라의 살림을 유지를 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었는데 민국으로 바뀌면서 북진정책의 성공으로 남의 시선을 신경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자 그제야 아편에 대한 벌금과 징역형을 신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무리 나라의 세수가 부족을 하여도 정당한 방법으로 세수를 늘려야지 아편과 같은 백성들을 나쁘게 만드는 물건을 이용을 하는 방법은 정당화가 될수 없을것 같다.

 

군벌과 정부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서 아편을 판매를 하는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막기 위하여서 민간에서 활동한 거독회가 나오고 있는데 당시의 아편과 마약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서 민간에서 먼저 그러한 폐해를 막고자 노력을 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일본의 동북지방과 대만에서 행한 아편판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일본 정부는 식민지 정부의 세수를 늘리기 위하여서 아편을 정부에서 판매를 하는 방법을 사용을 하였는데 밀매되는 것들을 막기 위하여서 다른곳에서 생산을 한 아편을 수입을 하는 역활을 개인 기업에 맡기어서 당시의 미쓰이 상사와 미쓰비시 상사가 아편 무역을 두고 많은 쟁탈전을 벌였다고 한다.

 

아편을 약으로 사용을 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아편의 해악에 모르고 빠져 들어가면 그러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되는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하여서 그러한 사실에 눈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당시가 혼란한 시기였다고 하여도 정부의 책임을 벗어날수는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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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도둑질 - 중세 성유골 도둑 이야기 역사도서관 교양 15
패트릭 J. 기어리 지음, 유희수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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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는 대륙을 안정적으로 지배를 하던 세력인 프랑크왕국이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기도 전에 내부의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망가지자 세속의 권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던 교회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고 영역을 넓히고 싶은 마음에 그 지방의 교회에서 보호를 하는 성인들의 유골이 필요한 시기가 왔는데 그러한 유골을 입수하는 경위에 대하여서 연구를 한 책이다.

 

1. 성 유 골 이란 ?

초기 기독교의 유포시에 자신이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와 그러한 시체를 보고 믿음을 얻어서 기적을 얻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체를 성인으로 기렸는데 성인들이 남긴 사체를 성유골이라고 하여서 교회에 두고 자신들의 지역을 보호하는 성인으로 믿었다.

 

2. 성인 숭배

초기의 기독교는 동방쪽에서 강력한 비잔틴제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교세의 안정화가 이루어 지고 유럽쪽에서는 이단으로 판명이된 네스토리우스파의 영향으로 그들을 믿는 종족이 많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정통파를 믿는 세력이 부족이 되었는데 그런 로마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하여서 프랑크 왕국의 왕을 멸망한 로마의 황제로 만들어 주고 자신들의 세력만을 정통으로 하고 이단을 박해를 하면서 세력을 떨치던 시기라서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심이 없고 기존의 종교방식인 눈에 보이는 신을 믿는 방식이 많아서 그러한 사람들을 설득을 시키고 전향을 시키려면 눈에 보이는 물건이 필요로 하여서 죽은 순교자들의 유골을 교회에 모시고 그것을 이용을 하여서 교세를 확장을 하였는데 프랑크 왕국의 왕들이 자신들의 중앙집권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처사로 각 교회에 성유골을 안치를 하라는 법령을 반포하고 각 교회는 자신들의 세력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성유골을 구하기 시작을 하는데 초기 기독교의 본산인 로마에서 많은 유골들이 프랑크 왕국으로 흘러 들어 왔는데 이러한 유골들이 진짜로 성인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그 유골을 가지고 기적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진짜로 판명을 하였다고 한다.

 

3. 성스러운 도둑질

성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은 숫자가 적고 교회의 숫자는 많으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생기고 그러면 공급을 맞추기 위하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숫자가 한정된 성유골을 가지기 위하여서 이민족의 공격으로 망가진 교회에서 모시고 있던 유골을 그곳을 지나던 신앙심이 강한 수도사가 꿈에 성인의 응답을 듣고 자신의 성당으로 유골을 모시고 돌아오면 그런 성인을 위하여서 그 지방에서는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돈을 주고 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 돈을 주고 사는 행위는 속세적인 분위기를 많이 풍기어서 신앙심이 강한 수도사가 성인의 계시를 듣고 어렵게 구해온 유골을 더욱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 때문에 많은 성인들의 유골을 둘러싼 교회의 분쟁이 많았고 자신들의 교회를 부유하게 만들어 줄만한 것이 있으면 어떠한 수단을 동원을 하여서 라도 가지고 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4. 당시의 성유골의 공급처

교황청이 있고 초기의 순교자가 있는 로마와 아랍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동방의 초기 교회에서 많은 유골이 들어왔고 그당시에 아랍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순교자가 배출이 되었던 이베리아 지방에서도 신선한 유골들이 유럽으로 들어왔다.

성인들이라고 하여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는 성인들의 유골만이 있던것이 아니고 그 지방에서도 모르고 있던 유골을 가지고 와서 이름난 사람을 동원을 하여서 전설을 만들고 기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성인들도 많이 만들어 졌는데 신앙이 눈에 보이는 물질을 필요로 하던 시기이고 자신들을 보호를 하던 중앙권력이 망가지면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성인들의 유골이 필요 하여서 많은 성유골들이 만들어 지고 숭배를 받았다고 할수가 있는데 교회가 로마를 중심으로 안정이 되어 가면서 성인을 교황이 인정을 하는 경우에만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지방에서 인정을 하는 성인은 등록이 안되자 각자의 성인을 가지고 있던 풍습에서 성경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지 아니면 그나라에서 많은 이적을 일으키어서 이름을 날린 사람을 여러곳의 교회가 합쳐서 모시는 방식으로 변형이 되었다.

 

자신들의 세력의 강화와 부를 위하여서 전설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전설에 현혹이 되어간 사람들과 전설을 만들기 위하여서 이용이된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유골과 그러한 것을 왜 이용을 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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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옛상인의 지혜 인간사랑 중국사 5
리샤오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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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서평을 목적으로 지원을 받은 도서입니다.

 

상업으로 유명한 세계의 민족중의 하나에 속하는 중국인들이 과거의 명성에 비하여서 현재의 모습은 상업에 속하는 많은 부분을 제거를 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하여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서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과거부터 내려오는 고전적인 상인의 모습에 대하여서 고전에 등장을 하는 거부들의 일생을 통하여서 상인이 무엇이고 그들이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행동을 하였는지에 대한 시점을 보여줍니다.

 

중국도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를 확립을 하고 그에 맞추어서 경제를 운용을 하면서 상인층보다는 농업에 종사를 하면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노역에 종사를 하는 민중을 우대를 하였지만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영역의 확정과 함께 과거부터 내려오는 돈에 대한 욕망으로 인하여서 나름의 상인들이 계속하여서 등장을 하였고 그들이 움직이는 재화의 물결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발생을 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노예제가 운용이 되었고 이익을 위하여서는 권력층이 민감하게 대응을 하였고 그들의 시선을 벗어나서 거대한 부를 얻는 것이 어려운 시절에 발생을 하였던 지배층이면서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아래에 속하는 인민을 위하여서 부를 이룩을 하였던 선구안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역과 이익에 대하여서 눈을 감고 있던 당시에도 무역과 이익을 위하여서 움직였던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의 번영을 위하여서 움직인 행적을 보여주고 있고 권력층이 아닌 개인의 노력으로 인하여서 얻을수가 있었던 부의 크기를 보여주는 일면도 함께 소개를 하면서 상인들이 자신을 위하여서 부를 획득을 한 것이 아니라 이룩한 부를 활용을 하여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노력을 하였던 모습과 함께 지배층이 만들었던 책에 이름을 알릴수가 있었던 이유에 대한 분석이 들어갑니다.

 

고대의 시대에는 책을 만들수가 있는 식자층도 적었고 책을 읽는 사람들도 적었는데 그러한 인물들이 자신의 책에 기록을 하였다는 사실은 오직 부을 위하여서 모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서 건립을 하였던 기업이 아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서 많은 일을 하였다는 사실과 그들이 이룩한 부를 바탕으로 하여서 어려움에 처한 민중을 위하여서 행하였던 일들이 무엇인지와 자신의 대에서 일군 부를 바탕으로 하여서 계속 부를 전하기 위하여서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한 사상과 같은 이익만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을 하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서 확립을 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상업을 바탕으로 하여서 권력을 잡은 인물들과 권력을 잡았지만 그것을 버리고 민중의 품안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일군인물의 서로 상반이 되어지는 경우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을 위하여서 작동을 하였는지에 대한 사정과 함께 고대부터 가지고 내려오는 신의성실에 대한 전통을 현대에도 받아들여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저자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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