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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과 20세기 중국 ㅣ 선인한국학 연구총서 47
박강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0년 11월
평점 :
중국의 쇄국정책을 끝을내게된 계기가 된 아편전쟁이 중국에 남긴 상처를 그리고 있는데 일반 국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그리고 있다.
중국에서 아편을 상용을 한 시기는 명나라 시기에 시작이 되었는데 그당시에는 영향력이 적다가 청나라 옹정시기 부터 아편의 문제가 많이 발생을 하여서 금연을 강제를 하였지만 영국의 중국과의 무역역조로 인하여서 적자가 심하여지자 영국의 이익을 위하여서 인도에서 생산을 한 아편을 공급을 하였고 그러한 밀무역으로 인하여서 중국의 은이 영국으로 많이 들어가서 중국의 경제문제가 심각해 지자 중국은 아편을 금하는 정책을 반포를 하고 영국과 아편 전쟁을 일으키는데 영국에게 전쟁에서 패하고 아편의 자유로운 유통이 일어나자 국민들이 아편에 취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상류층이 자신들의 멋을 위하여서 아편을 상용을 하면서 상류층의 모습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하류층의 사람들에게도 아편의 폐해가 미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경제가 망가지기 시작을 하자 세수의 확보를 위하여서 아편에 세금을 매기는 정책을 하기 시작을 한다.
중국 정부의 세수에서 큰 부분을 아편무역이 차지를 하면서 민간경제에 문제가 발생을 하고 아편의 문제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지자 중국에 아편을 공급을 하는 영국이 국내와 국외의 여론으로 인하여서 청나라 정부와 아편을 근절 하기로 약정을 하고 실행을 하였지만 청나라가 혁명으로 무너지고 민국이 탄생을 하면서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편에 대한 규제는 강화가 되었지만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원세개가 칭제를 하면서 각지방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군벌들이 자신들의 독립을 위하여서 군비경쟁에 빠져들고 세수의 확보를 위하여서 군벌들이 아편을 이용을 하여서 군자금을 마련을 하는 방법으로 사용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아편을 금지하는 정책이 통하지를 않았고 중앙권력을 가지고 북벌을 추진을 하던 남경의 장개석 정부도 자신들의 손에 있는 지방이 적어서 세수의 확보가 적었고 북벌을 위하여서 많은 군자금이 필요 하면서 아편을 이용을 하여서 군비로 마련을 하는 정책을 행하였고 북벌의 완성후에는 아편을 금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으나 중일 전쟁과 국공 내전을 경험을 하면서 정부에서 아편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성공을 못하였다.
일본이 지배를 하던 만주국에서 아편이 횡행을 하였는데 일본정부가 핑계로 하던 그전의 정부인 장작림과 장쉐량의 부자 군벌들은 동북 지방의 특산물인 대두를 이용을 하여서 세수의 문제를 해결을 하였기 때문에 아편을 이용한 세수의 확충에 신경을 쓰는 경우는 없었다.
상해의 연관 : 외국의 지배를 받는 조계지가 많은 상하이에서는 아편을 이용을 하여서 조계지에서 사용을 하는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서 중국의 법에 관계를 하지 않는 조계지에서 아편을 피우는 연관이 성행을 하였는데 그곳의 연관들은 변두리의 누추한 가게들만 있는것이 아니라 엄청난 규모를 자랑을 하는 설비를 갖추고 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이 아편을 피우는 곳이 있었는데 연관에서는 아편만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사교를 위하여서 들르는 곳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세계적인 아편과 마약의 해악을 이야기 하면서 국외,국내의 소리를 의식한 외국 정부의 관리로 연관들은 뒷거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요즘에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담배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담배도 백해무익한 물건이고 중독성이 있지만 그러한 중독성이 마약류보다는 폐해가 적다는 이유로 합법적인 물건으로 대접을 받고는 있지만 실상은 담배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많은 세금이 주 목적인것 같다.
담배도 중독성이 있는 물건이라서 계속하여서 흡연을 하고 그러한 일들을 나라에서 막자는 말들이 나오고 광고도 활용을 하여서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담배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의 문제로 인하여서 담배회사를 없애는 처방을 하고 있지는 못하는것 같다.
당시의 중국도 세수의 부족으로 아편이 나쁜 물건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물건에 세금을 붙혀서 나라의 살림을 유지를 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었는데 민국으로 바뀌면서 북진정책의 성공으로 남의 시선을 신경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자 그제야 아편에 대한 벌금과 징역형을 신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무리 나라의 세수가 부족을 하여도 정당한 방법으로 세수를 늘려야지 아편과 같은 백성들을 나쁘게 만드는 물건을 이용을 하는 방법은 정당화가 될수 없을것 같다.
군벌과 정부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서 아편을 판매를 하는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막기 위하여서 민간에서 활동한 거독회가 나오고 있는데 당시의 아편과 마약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서 민간에서 먼저 그러한 폐해를 막고자 노력을 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일본의 동북지방과 대만에서 행한 아편판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일본 정부는 식민지 정부의 세수를 늘리기 위하여서 아편을 정부에서 판매를 하는 방법을 사용을 하였는데 밀매되는 것들을 막기 위하여서 다른곳에서 생산을 한 아편을 수입을 하는 역활을 개인 기업에 맡기어서 당시의 미쓰이 상사와 미쓰비시 상사가 아편 무역을 두고 많은 쟁탈전을 벌였다고 한다.
아편을 약으로 사용을 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아편의 해악에 모르고 빠져 들어가면 그러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되는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하여서 그러한 사실에 눈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당시가 혼란한 시기였다고 하여도 정부의 책임을 벗어날수는 없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