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흥망 : 진나라 - 최초의 천하통일 천추흥망 3
쑹창빈 외 지음, 거지엔슝 엮음, 고예지 옮김 / 따뜻한손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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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수도의 동도 이전이후를 춘추전국 시대로 이야기 하는데 진나라는 주나라의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기는데 군사를 동원 하여서 왕을 호위하고 수도의 안착을 도와서 주나라의 왕이 진의 진양공에게 제후의 위를 주고 당시 융족의 땅 이던 풍,기 일대를 진의 용지로 주면서 진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진은 건국의 초기부터 이민족과의 전쟁을 통하여 영토를 확보 하다보니 중국의 다른 제후국으로 부터는 이민족 취급을 받으며 대우를 못 받다가 효공 시기에 달하여 위나라 사람 상앙을 받아 들여서 법가 사상을 위주로 한 개혁 을 실행 하면서 진나라의 국력이 신장 되기 시작 하였다.

 

진나라는 자연지형의 덕을 많이 보았는데 그 덕은 험준한 자연 지형으로 인하여서 적의 공격을 적은 군사로도 막아내고 전쟁시 전,후로의 이동이 용이 하여서 천하 통일의 발판이 되었다.

 

진의 부국강병을 설명 하려면 일단 진의 농경을 소개해야 하는데 진은 비교적 일찍 우경을 시작했다. 소의 사육을 중시해서 매년 정월,4,7,10월에 소의 생육 상태를 검사하여 상을 주었다.

진의 법에는 전쟁에서의 공적만을 최고로 치기 때문에 백성들이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우는것을 최고의 미덕 으로 알고 부귀영화의 지름길이라고 인식 하였다.

 

진의천하통일을 알기 위해서는 시황제의 윗대 왕들의 업적을 알아야 하는데 효공 부터 시황제까지 7대의 왕들이 국력 신장과 영토 확보에 많은 노력을 하여서 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

효공의 상앙 기용으로 초석을 다지고 다음왕인 혜문왕의 상아변법의 꾸준한 시행과 소왕의 원교근공을 외친 범저의 기용으로 통일을 향한 발걸음은 더욱 속도를 내게 되었다.

원교근공은 가까운 나라부터 공격을 하여서 무너뜨리고 먼 나라와는 관계를 친밀히 하여서 국력의 신장을 도모 하였다.

 

시황은 많은 장수의 도움과 천하 백성들의 강력한 나라가 통일을 이루어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천하를 통일 하지만 자신감 과잉과 미신의 영향으로 아방궁 , 진시황릉 , 만리장성 축조등 많은 토목 공사의 동시 시행과 천하 순행에 따른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세금의 부과로 인하여 백성들의 통일 열망을 배신한 처사를 많이 하면서 다시 분열의 시기를 열었는데 그 분열을 앞 당긴것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첫째 왕자인 부소를 죽이고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올린 내시 조고와 승상 이사의 잘못이 크다.

 

만일 부소가 황제위에 올랐다면 평소의 생각대로 세금을 줄이고 토목 공사를 중단 시키어 백성의 마음을 어루 만졌더 라면 갑작스러운 진나라의 붕괴를 막을수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호해는 조고의 말을 듣고 자신의 형제 자매를 죽였는데 이러한 일들은 일반 백성 들에게 그들의 통치자인 황제의 가족도 하늘의 자식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피를 흘리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어서 고된 노역에 지친 사람들의 반란에 영향을 주어서 진의 멸망을 부채질 하였다.

 

만일 진나라가 법가 사상에 기반을 두지 않고 유가의 사상을 받아 들여서 법을 줄이고 문화를 이용한 전 백성의 인식의 변화를 서서히 진행 하였더라면 어떤일이 생겼을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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