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시 -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엮음, 임상희 그림 / 나무생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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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시를 제대로 읽어본 게 전무했다. 시는 그 속에 내포된 함축적 의미와 이야기가 많기에 마냥 어렵다고만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10년 만에 읽어본 시는 완전히 상반되는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다른 형식의 글보다 짧지만 소설 한 편의 이야기만큼이나 참 많은 의미와 깊은 감정들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돼서 시를 읽는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나. 그리고 <맛있는 시>는 음식에 관한 시라서 그런지 더 재미있고 또 내 마음에 더 와닿았던 거 같다.

이 시집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인 정진아가 엮은 책인데 저자가 지은 시를 비롯해 모두 음식에 관한 시들로 채워져 있다. 비빔밥, 죽, 김밥, 라면, 사과, 순대 국밥, 된장 등등 음식을 제목으로 내 걸고 있는 시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었다.

나도 라면의 힘을 안다. 신혼 초 우리 부부는 오이 한 개, 물 한 병, 초코바 한 개 그리고 중요한 컵라면 한 개와 약간의 밥을 싸가지고 이 산, 저 산 많이도 다녔다. 등산 초반에는 아직 워밍업이 되지 않아 헥헥 거리며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나면서 몸이 가뿐해져 훨씬 수월해진다. 중반 이상 올라가면서 또 한차례 고비가 온다. 정상은 언제 나오나 하면서 말이다. 하늘과 맞닿은 산꼭대기에 도착해 야호 한 번 외쳐주고 가방을 풀어 라면에 물을 붓고 국물과 함께 한 젓가락 먹으면, 크! 끝내준다. 3~4시간을 걷고 또 걸으며 숨이 차오르고 너무 힘이 들어 다시 돌아갈까 싶다가도 이렇게 시작했는데 기운 내서 가야지 스스로 다독이다 어느새 정상에 올라와 물 한 모금, 라면 한 젓가락, 경치 한 사발 먹으면 세상에 이런 기쁨은 없다. 이 라면을 먹기 위해 산에 오른다. 지금은 육아로 인해 등산을 못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시를 읽으며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아주 풉! 하고 웃음이 터질 때도 있고, 그 시의 시인이 되어 웃으며 마음 아파하며 공감도 하고, 그래도 역시나 시는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가 있어서 몇 번이나 읽기를 하고도 그냥 넘어간 적도 있었지만 시집을 이렇게 재미나게 읽기는 처음이었다. 시 한 편을 읽고 그에 연관한 어떤 일들이 떠올라 시를 소화시키기가 어렵지 않았던 거 같다. 맛있는 시여서 그런가.

남편이 책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밤마다 시 읽고 배고파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배고팠다. 먹고 싶었다. 하지만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잡으며 참았다. 왜냐하면 시를 읽고 나면 곧 내 마음은 한가득 채워질 테니까.

<맛있는 시> 맛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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