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다는 아니에요
미바.조쉬 프리기 지음 / 우드파크픽처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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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파크 픽처북스의 책들은 웃지 않는 예쁜 아이 같다. 미바 작가의 사랑스러운 그림은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끌어당긴다. 하지만 겉모습에 이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본 사람들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발 더 가까워져야 보이는 눈물 그득한 아이의 눈을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될 테니까.


티 없는 눈밭의 하얀색, 부드러운 하늘색, 거기에 사랑스러운 분홍색 제목까지 더해져 마치 표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우드파크 픽처북스의 책을 여러 권 접해본 나로서는 시린 눈 밭 위에 서서 높고 메마른 산을 마주한 두 사람에 더욱 시선이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분명 저 두 사람이 느끼고 있을 매서운 추위, 그리고 눈앞에 닥친 두려움과 지금껏 지나온 슬픔이 이 책에 담겨 있을 거라고.


이 책은 두 사람의 어린 시절과 가족, 사랑과 이별, 추억과 상실, 그리고 셀린과 엘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늘 궁금했다. 왜 셀린과 엘라였는지, 작가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얼마나 녹아 있는지, 인물들을 공감해 내는데 작가들의 삶은 어떻게 관여했는지... 책을 읽는 내내 두 작가와 카페에 앉아 조용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진지해지는 것을 꺼린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서도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많지가 않다. 깊은 이야기에는 늘 슬픔이 묻어 있어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모자람이 드러나더라도 마음 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행복한 순간조차 조금은 슬펐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반가웠다. 


46p. 우리는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랑을 하는가. 


​"책을 읽는 게 좋아요."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늘 취미, 취향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이야기를, 그리고 책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 말하는 작가의 글은 마치 오래된 친구라 생각한 누군가를 사실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타인의 말처럼 느껴졌다. 

"맞아요. 단순히 좋아하는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 있어요.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지만 내 삶의 끝에서 '의미'라는 것을 찾는다면 분명 글을 읽고 쓰는 것에서 그 답을 찾을 것 같아요."라고 나는 속으로 답했다. 

어릴 때 미래란 항상 희망이었다. 더 크면, 나중에는, 그때가 되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미래가 '끝'으로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오늘은 금세 과거가 되고 미래는 더 급히 현재가 된다. 사랑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작가의 말이 나를 응원하는 것 같다.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마음이 조금 더 조급해졌다.


67p. 니오.


보자마자 반려동물의 이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뒷이야기를 읽기 전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내 눈물샘은 반려동물 이야기에 늘 격하게 반응한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동안 얼마나 울게 될까. 내일 눈이 부으면 안 되는 일이 있나. 

저자는 덤덤해지는 것이 두려워 니오를 떠나보낸 슬픔과 고통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또다시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흘러내리지 않고 찰랑거리며 담겨 있는 그 아이의 눈 역시. 

빛을 따라간 니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작가들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낸다. 아버지의 얇아진 입술, 어린 시절 눈 내리는 날, 돌아가신 할머니와 건강했던 부모님과의 추억...

연민은 슬프지만 늘 다정하다. 저자들이 세상을 얼마나 다정하게 바라보는지 그 따스함은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잔뜩 묻어난다. 


135p.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을 한 겹씩 벗겨내며 함께 걸어갈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보았다. 여전히 높은 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한 사람은 서 있고 한 사람은 앉아 있다. 자세히 보아도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신발 끈을 고쳐매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셀린과 엘라가 '오랫동안 행복했다'라고 생각할 만큼 순수하진 않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한 겹씩 벗겨내며 함께 걷겠다는 미바 작가의 말이 그들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두려움을 앞에 두고 이번에도 서글프겠지만 몇 번이고 울겠지만 결국은 저 산을 넘어가야 한다는 걸 알기에 마음을 다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예쁜 얼굴로 판단되기 쉬운 책이지만 이 표지에 눈길을 주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게 다는 아니에요."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은 티가 난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다. 

두 작가가 닿게 될 자신들만의 미래에도 신발을 고쳐 신을 수 있는 평지가 자주 나타나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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