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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서점직원 경력 10년의 쓰치다. 존재감이 약하지만 성실하고 누군가를 대할 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나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활을 하면서 내가 주체가 아닌, 그저 주어지는 것들 속에 묻어가는. 그래서 어제나 오늘, 내일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다시 또 숨어들고 마는. 이렇게 단순하고 대책 없어 보이는 삶의 우주는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을지.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며 쓰치다의 생활을 함께 하는 재미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책에 대한 이야기로 짧지만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읽었던 책은 되짚어보고 읽지 않은 책은 메모를 해두어 읽어보고 싶게 한다.
거기에 책 속에서 쓰치다와 마스다 미리의 만남은 생각지도 못했던 특별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책의 겉표지 안에 실려 있는 작가의 이력보다는 작가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깝게 해준다.
20대 후반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만화스토리는 혼자 정하고, 작품을 앞에 두고 개인적인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만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이 특별하다는 생각도 갖게 해주었다. 작가의 만화 대부분이 이런 맥락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 속에서 만난 쓰치다의 모습은 처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뚜렷하게 존재감이 확실한 그를 보며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쓰치다의 또 다른 면은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심성이 바르다는 것, 정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따뜻함을 품고 있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 아버지가 늙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아들, 부자의 모습으로 훈훈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선물해주어 책을 가깝게 하는 계기를 주었던 큰아버지, 병문안을 가서 아이 노릇을 하는 모습 역시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하고 있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방 한 칸에서 7년을 살면서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쓰치다의 삶은 작은 부분들,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부분을 채워감으로써 알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직원이지만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은 물론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직접 다른 서점에 찾아가보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실함과 진심이 더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쓰치다를 보며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며 언젠가는 끝이 나지만 누구보다 나은 인생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인생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생이 바로 우주라는 것도.
위로는 상사의 눈치에 아래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사원으로 긴장된 날을 보내면서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움켜쥐고 있는 내 모습에 부끄러워졌다. 쓰치다는 나에게 무심한 어조로 말을 건넨다. 그저 자리에 앉아서 내일을 예측하기 보다는 스스로 미래가 되어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을 .일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패스파인더가 되라는.
쓰치다가 우주에 도달하기 까지 그 거리가 먼 것처럼 나도 내 우주에 도달하기에는 그 거리가 멀다는 동질감에 크게 숨을 내쉬어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아직 무엇 하나 실패하지 않은 내일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