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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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시대]는 표지와 제목의 느낌과는 달리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고,
고상하고 우아한 로맨스 소설을 읽는 느낌의 책이었다.
성도(聖徒)와 같은 지고지순한 천성을 지니고, 희생을 타고난 숙명과도 같이 받아들이는 여인 천상.  

데님 재킷에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 얄포름 한 붉은 입술을 지닌 한송이 꽃과도 같은 예러우.
두 여인은 망허라는 이름의 시인과 얽히지만
한 여인은 그로인해 절망에 이르게 되고,
또 다른 한 여인은 망허와
모든걸 내던진 채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매혹적인 장면이 있을까 .(...)

대팻밥 사이로 뚫고 나온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훌륭한 장식품이 되었다. 

-63 p

 

바다를 마주하고 화창한 봄을 맞이하리(...)

바다만은 바로 눈앞에서 그 짙푸르고 풍만한 나신을 드러낸 채 넘실거리고 있었다.

-241 p

 

여류작가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여성스런 필체의 문구들이 마음에 파고든다.



첫장부터 흥미진진하게 엮어지는 두 남녀의 관계속에
시가있고, 광할한 대지가 있어 그 깊이가 더한 느낌이다.

 

'역사속의 저우시커우'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기위해 현지답사를 함께 떠난 예러우.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 낯선 자극을 원하는 시인.

그런 시인인 망허와 사랑이란 감정에 휘말리고 싶지않아 그를 떠나지만

여우위 현에서 사후커우로 나가는 경로를 택한 덕분에

망허와 재회를 하게된다.

 

예러우의 행로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중국의 광활한 대지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하고있는데

산 아래를 굽어보면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베이구산.

명나라때 옛 만리장성의 부서진 잔해가 구불구불이어진다는 핑루성,등이 그렇다.

 

한편 순수하고 고결한 시인 망허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희생의 길을 선택했던 천상.

그녀의 행동과 선택이 잘 이해되지 않는 구석은 있지만

그녀곁에 있어 늘 그녀를 지켜주는 친구 밍추이가 나오는 대목에선 가슴이 따뜻해지고,

천상의 절망을 감싸안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된 라오저우의 프로포즈 대목은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게 한다.

 

황금빛 수양버들이 한들거리고

샛노란 은행잎이 팔락이며

네 발등으로 내려와 앉는다면(...)
어떤사람들은 왜 평생토록

그런 순수한 길만 걷고싶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거야.

바로 네 생부처럼 말이지

-83P

 

특히나 천상이 자신의 아들이자 망허의 아들인 샤오촨에게 쓴 편지 귀절에서는
아들과 망허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현재 남편 라오저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대목이어서

읽는 내내 감동이 밀려오게 된다.

 

색 바랜 종이 위에 홍경천이 있었네

왼쪽에선 금화가 요염한 기생처럼 선들선들 춤을 추고,

오른쪽에선 관중이 강호의 협객처럼 (...)

당신은 쇠처럼 단단하고 차디찬 세월을 거두어 감추고

제겐 온후한 치료만 들려주셨군요.....

-110p

 

시인의 시대였던 80년대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나오는 싯귀절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중간중간 나오는 소박한 음식묘사에 대한 귀절도

읽는 내내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잘익은 술이 시큼하게 톡 쏘는 향내를 풍기며 투박한 대접에 담겨져 나왔다.)

(나귀곱창도 야들야들하고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났다.)

(안주라고 해야 껍찔째 볶은 땅콩과 술에절인 대추,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화제가 전부였다.)




하지만 인생은 늘 해피앤딩이 아닌가보다.

예러우는 망허와의 여행중에 급작스럽게 죽게되고,

그로인해 망허는 시인의 삶을 포기하고 사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천상의 결말도 그에 못지않게 비극으로 치닿게 되는데....

 

책장을 덮고나면 가슴한편으로 아련하게 남는 감동이 고스란히 밀려온다.

 

천상, 예러우,두여인과

망허, 라오저우,

밍추이,

그리고 예러우의 답사에서 인터뷰하며 만나왔던 노인들에 대한

노곤한 삶의 이야기로 인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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