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밀레니엄 북스 39
루쉰 지음, 우인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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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이름은 '납함'이다.

광인일기, 아Q정전, 약, 공을기, 내일 등 자서와 서시를 제외한 13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저자인 루쉰은 청조 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 구교육을 받아오다 18세에 신학문에 눈을 떠 일본에 유학을 가게 된다. 유학중 수업시간에 교슈님이 보여주는 시사영상에서 충국인들의 어리석고 약한 모습을 보고 모든 학업을 접고, 인민의 정신개조를 위해 할 일을 찾게 된다. 인민의 정신을 뜯어 고치는데 문학과 예술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문예 운동을 제창하기로 마음먹고 <<신생>>이라는 문예지를 창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중국으로 돌아온 루쉰은 교원으로 이론가로 활동하다 1917년 <광인일기>를 발표한다.

 

<광인일기>는 루쉰의 첫 작품이면서 중국 근대 문학의 시초가 된다.

광인의 수기라는 일찌기 없었던 형식도 새로웠지만, 유교의 허위의식을 식인에 비유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인민 중 선지자는 미치광이일 수 밖에 없다는 설정으로 강도 높게 비판하는 이 소설은 당시 중국을 뒤흔들만큼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4000년 넘게 온 중국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된 유교 사상을 식인으로 깔아뭉개었으니, 그 사회적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아마 생명의 위협도 받았을 것이다. 루쉰이 <광인일기>를 쓴 때로 부터 9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우리 나라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쓴 교수도 한 동안 매장당해 잠수를 탈 정도로 사회적 역반응이 컸다고 하니, 당시에야 목숨부지한 게 용하다 하겠다. 첫 작품이 이런 소설이었으니, 이후로 루쉰이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며 논란거리가 되었음은 불보듯 뻔해 보인다. 혹시 루쉰이 이것도 노린 것이었을까?

 

<아Q정전>엔 '아Q'라는 정말 상식으로서는 이해 안되고, 감당하기 힘든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변변찮은 이 인물에게는 일명 '정신승리법'이라 불리는 아주 독특한 사고 방식이 있다. 지나친 자기 합리화. 정말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는 모습에 어이없기까지한 캐릭터인데, 이 모습이 당시 중국인민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무슨 일에서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좋을대로 말도 안대는 이유를 붙여서 자기 생각 속에서는 언제나 승리하고, 마음편하게 잠들 수 있는 긍정적이라고 하기엔 뭔가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정신승리법'.

당시 많은 중국인민들 이 소설 속 아Q를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라며, 작가가 자신의 지인이 아닐가 놀라워 했다고 한다.

 

루쉰은 문학을 통해 당시 인민의 모자란 모습, 부끄러운 현실을 처참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 보여주면서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생각을 바꾸고 제대로 살자.'고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좀더 강하고 충격적인 비유와 문체로 표현하고, 또 좀 더 많은 인민이 읽기를 원해 장편은 쓰지 않고 주로 단편을 썼을 거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 문예 운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민의 정신개조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으로 자신이 선각자적 입지에서 목숨을 걸고 밀고 나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루쉰에게 있어 문학은 결코 유희나 낭만일수는 없었겠다.

 

이 소설집 제목 '납함'은 '고함, 외침'이라는 뜻이다.

루쉰이 소설을 쓴 목적과 의도가 처절하고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제목이다.

'제발 이런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자!!!'고 온 인민을 향해 외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루쉰의 소설집을 읽고 함께 읽은 이들과 토론을 하면서 '내가 만약 작가라면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쓰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참 생각을 해 보니, 시작은 그저 내가 흥미있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주제를 가지고 재미를 나눌 수 있는 결국 재미을 위한 글쓰기를 하고자 하겠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상을 담고, 더 발전된 사회를 위해 영향력을 담은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길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나 개인보다 사회나 세상을 헤아리는 대승적 가치를 더 크게 보는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이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그 당시 루쉰 만큼의 용기를 낼 수 있을까란 생각에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예술성에 있어서 그다치 큰 점수를 주기 힘든 루쉰의 작품들이지만, 문학이 사회에 이토록 강렬하게 어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손에서 내려질 줄 모르는 것이겠다.

목숨을 건 루쉰의 필행,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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