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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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흐르는 음악과 주변의 공기, 빛과 온도, 앞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기 위해 온 감각을 집중이 한다."

커피를 굉장히 좋아한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는 정반대로 없는 말이지만 나는 더죽따(더워 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파다. 대부분은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선호하지만, 가끔 기분이 울적하거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는 달달한 커피에 휘핑크림이 듬뿍 올라가 있는 커피로 기분을 달래기도 한다.

향기 좋은 커피는 나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좋은 친구다. 나도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고 나면 목좋은 곳에서 예쁜 카페를 하나 차리고 싶다.

뜨거운 물에 추출한 에스프레소 샷을 넣어 섞일 틈도 주지 읺고 후루룩 마시곤 했다. 이런 무지한 나에게 물과 커피도 서로가 섞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막연하게 물과 에소 샷이 잘 섞이는 것들이니 섞이기를 기자려 주는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그들 각각의 입장에서 보면 이질적인 것과 섞이는 커다란 변화일텐데 조금도 기다려주지 못한 배려없음이 왠지 폭력적으로 비춰진다. 그들도 나에게 최상의 맛을 전하고 싶었을 텐데 그 잠깐을 못기다려준 조급함이 미안해 진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 처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p.142)

별다방, 콩다방 심지어 편의점 커피까지 가세해서 거리를 점령해 버린지 오래다. 이런 이유로 특별한 향기를 풍기는 동네 카페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이런 와중에 간혹 발견하게 되는 맛있고 예쁜 분위기 좋은 카페는 나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만의 비밀 아지트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꽁꽁 숨겨두고 싶은 음흉한 마음을 품게 하면서 말이다.

볕 좋은 휴일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책읽는 시간을 사랑한다. 뚝뚝 묻어나는 게으름을 침대에 떼어두고 세수만 겨우 한 얼굴어 모자를 눌러 쓰고 에코백에 좋아하는 책 두어권을 넣고 어슬렁 거리며 카페를 향하곤 한다. 그렇게 찾은 카페는 나에게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긋한 커피와 자유로움을 선물한다.

"나는 여전히 커피는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묘약'으로서의 역활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카페라는 장소 또한 맛있는 커피를 파는 가게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어지는 편안하고 분위기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82)

한동안 집에 온갖 커피 도구들을 사모았던 때가 있다. 모양이 다른 드리퍼와 포트, 분쇄기에 이어 반자동, 전지동 머신에 이르기까지. 아쉽게도 살때만 반짝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구석에 처박히기 일쑤다.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한뒤 새로운 커피도구를 들이는 일을 멈추었다. 그대신 맛있는 원두를 찾아 핸드드립으로 잘 내려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가끔은 흙맛도 엉뚱한 풀맛도 느껴가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챕터 마다 소개된 카페에서 소개된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욕구가 퐁퐁 샘솟는다. 플랫화이트가 이런 느낌이었나? 별다방의 블랙글레이즈라떼와는 치원이 다른 맛이겠지? 갑자기 플랫화이트의 눈이 내리는 모슺이 보고 싶어진달까... 솔트커피를 처음 맛봤을 때의 느낌이 스친다. 휘휘 저어저려서 단짠의 커피맛을 느끼지 못하고 여느 라떼와 다를바 없는 커피맛에 실망했었다. 휘젓지 말고 그대로 마셔서 단맛과 찬맛을 동시에 느꼈어야 했는데 무지했던 탓에 휘휘 저어버리고는 똑같은 맛에 실망하는 우를 범했던 웃지 못할 경험이었다.

책은 손에 잡히자마자 쉼없이 읽혀진다. 따뜻하고 예쁜 사진은 김성 충만하게 눈을 즐겆게 해주고, 그때 그때 이야기하고 있는 커피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다른데는 어딘지 노르겠으니 삼청동 블루보틀에 가서 당장 뉴올리언즈를 마셔봐야 겠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격한 공감과 함께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는 책이었다.

The Best Coffee is The Coffee You Like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가 최고의 커피입니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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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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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책으로 발간되기 전 따끈따근한 가제본분을 받아서 읽게 된 책이다. 죽음을 앞둔 한 집안의 가장에 대한 마지막 정리를 시끌벅적하게 그리고 있다. 암선고를 받고 마지막 생일파티를 위해 미국 전역의 대가족을 소집하는 데라크루스 집안의 가장 빅 엔젤. 생일 일주일을 앞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국 빅 엔절은 특단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기상천외하게 여겨졌던 빅 엔젤의 특단의 결정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자신의 생일과 함께 진행하기 위해 일주일을 미루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장례식과 빅 엔젤의 생일 두가지 행사에 참여해야 했던 가족들은 부족한 휴가 등 여러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해준 빅 엔젤의 결정에 기쁘게 동의하며, 하나둘씩 모인다.

데라크루스 집안의 하느님과 같았던 빅 엔젤은 가족들에게 '아부지'로 불리며 군림(?)했지만, 지금은 힘이 많이 빠진 아기같은 모습이다. 두덜거리면서도 힘이 빠진 빅 엔젤을 안타까워 하는 걸 보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지 간에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뭐랄까... 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절대적인 것 같다고 여겨진다.

암을 선고 받은 빅 엔젤은 서서히 무너지는 육체를 느낀다. 사랑하는 페를라와의 관계도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어렵다. 시간이 정확하지 않은 멕시코타임을 싫어하면서 살아왔는데, 제어되지 않는 몸뚱이로 엄마의 장례식에 늦을 지도 모른다. 빅 엔젤의 일상에 찾아든 암은 그의 모든 일상을 바꾼다. 남은 시간 한달,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가족과의 이별을 위해 빅 엔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성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온몸이 체계적으로 붕괴할 겁니다. 신장이 기능을 못하겠지요. 심장도요. 아니면 폐렴에 걸릴 겁니다. 본인의 의지는 강할지 몰라도 몸은 이미 지쳤어요." (p.78)​

빅 엔젤 가족들의 시선으로 엄마의 장례식부터 빅 엔젤의 생일 파티까지의 시간들을 차례대로 풀어 낸다. 때로는 가족에 대한 불만 -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미국여자를 따라간 이유 -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만 했던 이유 - 페를라에게 이미 아들이 둘이 있고, 함께 살아야 하는 동생이 둘이 있러도 - 다시 그녀를 만나야 했던 이유 등 대가족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다. 가족, 무심한 듯 내곁을 지키고 있다. 애증의 관계가 되기도 하고 슬픔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빅 엔젤이 마지막 시간을 그들과 보내고 싶은 이유였을 것이다.

"하루만 더요
하루는 더 살아야 한다. 가족파티까지는"​

데이브는 빅엔젤에게 몰스킨 수첩 세권을 선물하면서 감사할 거리를 적으라고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무엇이 됐든 상관없다는 말과함께.

죽음을 앞둔 빅 엔젤의 감성인 걸까, 감사할 일들은 많아지고 덕분에 미니는 작은 수첩 세트를 빅 엔젤에게 계속 사다주곤 했다. 작은 수첩에 쓰여지는 감사의 말들이 가족들에게 진심이 되어 남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수첩을 읽은 적이 있다. 투병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음에도, 아빠가 돌봐 주고 계셨던 우리 아이들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시간이 지난 후 빅 엔젤의 수첩을 읽게 될 랄로와 미니의 마음을 토닥여 주고싶다.

"새차 -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좋은 음악 - 반드시 로큰롤 아닌 걸로
스페인어 -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바나나를 얹은 피에도 스프
라 미니!!!
나의 가족" (p.337)​

가족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글이다. 빅 엔젤이 마지막 생일 파티를 준비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처럼 100세까지는 너끈히 살아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70세에 갑자기 죽음에 맞닥뜨리게 된 빅 엔젤이 모든 가족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같은 이틀이었다.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는 조금 다른 것 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건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간단해. 잘 죽 는다는 건 불알 두 쪽으로 배짱을 부려야 하는 일이야. 불알 두 쪽을 걸고 깡으로 믿는 거라고." (p.366)

"우리가 하는 건 말이다, 얘야.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이 답이야. 아무것도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 사랑에는 경계도 없고 죽음도 없지." (p.372)​

빅 엔젤을 중심으로한 가족들이 대거 등장해서 관계도를 머리속으로 그려내기까지 오래 걸려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가족관계도가 앞에 위치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죽음과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빅 엔젤이 하얀 날개를 달고 인자한 얼굴로 하늘에서 가족들을 내려다 보고 있을 것 같은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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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휘둘리는 당신에게 - 관계에 서툰 이들을 위한 심리학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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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공룡(?) 세마리가 대화를 하고 있다. 얼굴에 미소를 띄고 대화에 참여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말풍선을 갖고 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임무를 어쩔 수 없이 수행하고 있지만 각자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기왕지사 각자의 생각을 할 꺼면 대화에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처음 접했을 때의 표지에 대한 인상과 책을 읽고 난 후의 인상이 달라진다.

'인간은 하드코어한 사회적동물이다'라면서 이 책의 목적은 이런 인간의 이상하고 신기한 속성을 이해하고, 나도 잘모르는 너와 나의 모습을 알고, 나다운 모습을 설계해 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고 듣던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드코어가 덧붙여 졌다. 기왕지사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야하니 잘 살아 보자는 의미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던지 누군가와 함께 묶여있지 않으면 심리적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저자는 이를 '살기위한 선택 소속의 욕구'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잠깐이라도 혼자있고 싶지않아서 항상 몰려 다니고, 심지어 초등학교 다닐때는 화장실 조차도 함께 다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화장실에 혼자가는 것만으로도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지금도 여전히 혼밥이나 혼공, 혼술 같은게 익숙해 지지 않은 것을 보면 소속의 욕구는 유전자의 힘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나보다. 그럼에도 어디에든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태초의 욕구라고 기술하고 있는 글 덕분에 소심한 마음이 조금쯤 위로를 받는다.

"여러 사람일 필요도 없이,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p.39)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때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갑자기 누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러갈때와 같이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거의 대부분 먼저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주로 하는 대답이 '아무거나' 또는 '나도 좋아'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주도적 선택을 미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사람을 나 자신보다 남들의 눈에 만족스럽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든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물건, 유행하는 옷, 잘나간다는 학과나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된다." (p.92)

나는 지금 내 성격대로 살고 있나?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Yes 보다는 No에 가깝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너무 많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서, 간혹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의미없는 미소를 띄우며 '괜찮다'는 말을 전하곤 한다. 그 이후 참다가 지쳐서 나의 성격을 그대로 들어내도 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폭발하듯 성질을 낸다. 이런 일련의 나의 행동을 보면 내 성격대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지 않을 까 싶다. 그려면 내가 자기통제를 잘하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도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휩쓸리지 않고 단단하게 나답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주로 타고난 성격대로 행동하면서, 그리고 때때로 성격대로 행동해선 안 될 때에는 전두엽을 사용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보통 우리의 행동은 타고난 성격,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발휘하는 자기 통제력에 의해 좌우된다." (p.173)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게 아니라, 인간 자체가 하드코어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다 그런거라고, 너만 그런거 아니니까 쿨하게 눈치보고 살아도 된다고(?) 위로하는 글이었다. 행여라도 소외될까봐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나에게 '다 그렇다잖아'라고 셀프위로를 건내 본다. 남들에게 휘둘리고 눈치 좀 보면 어떠랴! 나만 괜찮으면 되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드코어한 사회적 동물로 씩씩하게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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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 사랑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연애 심리 에세이
우연양 지음, 유지별이 그림 / 서사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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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끼리 한마음으로 좋아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 만큼 축복 받은 일은 없다. 연인, 부모자식, 친구 등 어느 관계에서든지 서로가 마주보며 같은 무게로 서로를 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서로간 마음의 무게가 다른 것으로 상처 받기도 하고, 반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며 용기내 다가가기도 한다.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따뜻하지만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은 보통 사람들간의 연애,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눈이 반짝거리게 하는 새로운 에피소드는 아니었지만 마음 한켠을 움직이게 하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글이다. 내가 첫사랑을 할때는 어떤 모습이였는지, 짝사랑을 할때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 내옆에서 (코골고 자고) 있는 남편을 만났을 때는 어땠었는지... 그 시절 겪었던 풋풋한 설레임이 떠오른다.

에피소드 마다 만화처럼 그려진 삽화는 그 자체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레고, 애틋하고, 가슴아프고 저마다의 서툰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결 더 따뜻하게 해준다.

어린시절의 풋풋한 시기를 지나 만나게 된 사람과 아무 조건없이 용기내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제일 먼저 나이라는 벽을 만날 것이고(살다 보면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시기가 오지만 나이라는 벽이 결코 넘기 쉬운 벽은 아니다), 이어서 구차한 변명같은 경제적 수준(이 조건은 살다보면 생각보다 커지는 조건이다)이라는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글에서 보여주고 있는 일들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때 가장 많이 맞닥트릴 뿐만아니라, 별거 아닌것 같으면서 무심코 넘기기 힘든 조건들이다.

"확실한 건 스스로의 약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 법이고 나보다 어린 사람을 더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을 법이란 또 없는 것이다." (p.48)

남편가 종종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신경전을 하게 된다. 참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신경전이라 해도 시작하고 나면 별거 아닌 일도 자존심 싸움이 되어 버린다. 절대로 먼저 말하지 않고, 없는 듯 생활하면서 아쉬운 것도 불편한 것도 없는 듯 일상을 채운다. 서로가 거슬리고 신경쓰여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말이다. 정말 져주는게 이기는 걸까. 한번 시작한 신경전은 쉽사리 거둘 수 없다.

"나는 밀당 같은 거 할 줄 몰라.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어렵게 연애할 줄 모르거든. 좋아하니까 표현하는 거고, 귀찮게 수 싸움 하는 것도 싫어." (p.139)

이성이든 친구든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용기내서 먼저 다가가기 어렵다. 혹시라도 거절 당할 것을 염려하고 미리 피해버리기 일쑤다. 어쩌면 그 사람도 내가 먼저 말걸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서 망설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존감 때문일 수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괜히 겁이 나서 스스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곤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면서 말이다." (p.68)

서로가 더 많이 좋아해 달라고 조르고 나만 바라보라고 보챈다. 왠지 내가 더 잘해주면 나한테 소홀해 질 것 같고,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우리 아이들을, 우리 엄마를, 우리 남편을 시시때때로 떠올리는 걸 보면 내가 그들을 훨씬 더 많이 사랑하나 보다. 조금 손해보면 어떤가! 손톱만큼이라도 더 사랑하는 내가 한수접어야지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으니까." (p.233)

누구라도 붙잡고 당장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가슴이 몽글몽글 따뜻해 지는 책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은 외로운 싱글들, 남편과 아내가 괜히 미워지는 기혼자들은 따뜻하고 상큼한 레몬차 한잔을 친구삼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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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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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의혹도 하나의 증거는 될 수 없다. (도스토앱스키의 죄와벌)"

책을 한권 한권 읽을 때마다, 책을 한줄로 소개하는 메인카피와 소설의 내용이 정확하게 일치할 때마다 소름끼치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끝없는 살인도 맨 첫장의 소개글로 한줄이 정리된다. 물론 다 읽고 난 뒤의 개인적인 소감이긴 하지만, 소설 메인카피를 정하는 출판 관계자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된다!

독자투고 매니아 이치로이 고즈에가 새로운 독자투고를 생각하면서 귀가도중 겪은 살인미수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살인범을 추적하기 위한 단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에키나가 고등학교의 학생수첩, 발자국 그리고 살인무기로 사용되었던 덤벨 뿐이다. 연기처럼 사라진 살인범과 부족한 단서, 그리고 그즘 발생한 불특정 다수를 살해한 사건과 동일한 패턴으로 실행된 범죄는 연쇄살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살행 방법 꼭 통일한다.

머리를 갈겨서 정신을 못차리게 한 다음 목을 조른다.

꼭 흉기를 지참한다.

증거품은 매스컴이나 경찰에 보낸다.

손가락으로 할까? 귓볼로 할까?

신체 일부는 번거롭지 않을까?

그럼 머리카락은 어떨까?

임팩트는 약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아저씨가 대머리면 어떻게 하지?

체모로 할까?

끝없는 살인(p.30)

사건현장에 남겨진 주요 단서, 연쇄살인 피해자와 살인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학생수첩 한사람의 범인을 가르키고 있지만 연쇄살인범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얼굴을 들킨 살인범이 수사의 무게에 짓눌려 자살한 걸까? 아니면 다른 연쇄살인범 용의자X가 있는 걸까? 사건은 점점더 미궁속으로 들어가고, 4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버린다.

연쇄살인 사건에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이치로이 고즈에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현재까지도 불안에 시달리며,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살인범의 살해동기가 궁금하다. 살해동기라도 알아야 살인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아닌가!

미제사건으로 남게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담당형사 나루모토는 연쇄살인범의 살해동기를 추리하기 위해 추리전문가 모임 연미회를 소집하게 된다.

새해를 하루 앞둔 마지막날, 한자리에 모인 연쇄살인의 유일한 생존자, 미스터리 작가와 전직형사는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범의 범행동기를 추측한다. 한자리에 모인 다섯명의 연미회 회원들은 각자의 가설을 바탕으로 증거를 보완해서가면서 살인범을 추적한다. 각각의 추리마다 새로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추리전문가 집단답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발한 의혹을 제안하고 각각의 의혹에 대한 반박의견을 더해가면서 하나의 사건을 완성하는 듯 하다.

하지만, 첫장의 문장처럼 그들의 추리는 증거가 아닌 범인을 예측하기 위한 하나의 의혹일 뿐이다... 과연, 이들의 의혹은 미싱링크,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용의자X는 이들을 비웃 듯 또다른 살인을 이어간다.

"마치 '동기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자.'라는 느낌이네요. 평소에도 사람을 죽이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길 계기를 찾지 못해서 근질근질하던 사람이 이른바 '살인을 위한 살인'이라는 행위가 가능한 구실을 발견해서 기쁜 마음으로 뛰어들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p.352)

정말 결말이 끝내주는 스릴러였다. 긴장감 있는 접근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안고 있는 글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결론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챕터 중간중간 포함되어 있는 흑백사진을 감상하면서 서늘해 지는 느낌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연쇄살인범을 끝까지 알 수 없는 스릴러, 쫀쫀한 긴장감 보다는 추리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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