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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추리소설 같은 분위기를 폴폴 풍기면서 내게 온 책. 하지만 추리소설 보다 훨씬 더 긴장감을 자아내는, 상상이지만 어쩌면 어딘가에서 추악한 모습을 숨기고 있는 사회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는 글이었다. 일이 너무 바빠서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고 있던 중 읽기 시작한 책이다. 바쁜와중에도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로 긴장감이 이어진다.
"순수"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에게서 목소리를 빼앗아 버린 어처구니없는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의 저녁식사자리에서 들리는 것은 아빠를 비롯한 남자들의 목소리 뿐이다. 엄마와 딸은 그들의 물음에 그저 고개짓으로 대답하고 있을 뿐이다. 평범한 가족의 저녁식사 자리가 이렇게 기괴한 모습을 띄게 된 사정이 있는 걸까. 외형적으로 평범함을 갖추고 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며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결혼 17년차, 아들 셋과 딸 네아이를 둔 엄마 진 매클렐렌은 신경학과 언어학의 권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어느날 순수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국민들, 특히 여자들을 길들이고 싶어하는 집단에게 장악되고 만다. 집안 곳곳의 CCTV들과 족쇠처럼 채워진 손목의 카운터는 그녀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그녀들에게 하루 100단어만이 주어질 뿐이다. 100단어 룰을 무시하는 어설픈 치기와 긴박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카운터는 무시무시한 응징으로 그녀들을 다루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함은 쌓여간다. 어쩔 수 없는 통제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칠흑같은 어둠속의 딸이 안타카운 진은 그들로부터 소니아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기괴한 저녁식사 시간의 침묵은 진과 그들의 숨막히는 밀당으로 이어진다.
"결국, 언젠가는 내 딸도 장을 보고 집안 살림을 돌보며 헌신적이고 충실한 아내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딱 그만큼의 셈법만 필요할 뿐이다. 글자도, 문학도 필요 없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p.11)
100단어의 카운터 삶을 살게된지 1년이 넘은 어느 날, 사고로 언어능력을 상실한 대통령의 형을 위한 베르니케 실어증 연구를 위해 그들로 부터 잠깐의 일탈기회를 얻게 되고... 그들의 압박과 알 수 없는 거대한 음모는 그녀의 잠재된 저항의지를 깨우고 그녀는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기위해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기긴 하지만,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핍팍이 낯설지 않은 불편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읽다보면 진의 분노에 공감하게 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가벼이 여기고, 나 또한 진처럼 바쁘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지키는데 소홀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휴일의 무료함을 달래준 흥미롭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이었다.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이 승리한다." (p.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