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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ㅣ 소담 클래식 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인 이 소설은 단편적 기억과 회상 등 여러 인물과 사건들이 얽혀있는 콜라주 기법의 독특한 소설이다.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의 자아에 대한 의식을 탐구하고 있다. 복잡한 인간 의식의 흐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50대의 델웨이 부인은 정부고관의 아내로 외관상으로는 걱정할 것 없는 부유한 여자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몸살을 앓게 했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6월 어느 날 그녀는 파티를 위한 준비를 위해 런던 거리로 나선다.
거리에서 오래전 그의 친구 휴와 마주친다. 그리고 오래전 그의 연인 피터를 떠올린다. 피터와의 기억은 지금의 남편인 리처드와의 결혼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약간의 자유와 독립적인 부분을 원했다.
리처드 댈러웨이 부인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밤이면 자신의 조용한 시간을 위해 다락방으로 올라가 바느질을 하며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그녀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었다.
한편 셉티머스라는 인물은 전쟁 중 포탄의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전쟁에서 죽은 친구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힘들어한다. 요양소에 강제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자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주인공 클라리사는 셉티머스의 자살 소식을 듣고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의 남겨진 영혼 그대로를 끓어안고 삶을 끝낸 청년의 운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인공은 클라리사와 댈리웨이 부인 두 존재로 소설에 불려서 초반에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우리는 나의 이름으로 또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불린다. 클라리사는 정치가의 아내이기에 사회적으로 남편을 내조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도 했다.
그 여러 이름표 안에서 우리는 규정될 수 없는 각기 다른 성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상황과 떨어질 수 없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녀는 셉티머스와 감수성이 예민하고 낭만적인 피터의 모습 그리고 그의 옛 친구 샐리의 모습 등 여러 복잡한 양상의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이들의 삶의 일부를 동경하지만, 극한적인 반응을 거부하고 안정적인 삶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녀의 딸의 가정교사인 킬먼은 그런 그녀가 가식적이고 무지하며 그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위치와 풍요로움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 그녀는 세속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원한 건 안정과 자기 삶의 평화였다.
그녀가 다른 삶을 선택했다면 셉티머스처럼 창밖으로 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던 옛 친구 샐리가 다섯 아이의 엄마로서 안정된 삶을 선택한 것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댈리웨이 부인은 누군가가 보기에는 가식적이었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품위 있어 보였다. 그녀는 죽음을 동정하지 않았고 삶을 동경했다. 화려해 보여도 반짝이지 않는 무채색 삶이어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파멸하지 않는 결혼을 선택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 어머니로서 극복해야 하는 고독과 과거에 대한 아쉬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 등 혼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냈다.
소설은 과거로 현재로 여러 사람에게로 넘나들어 읽기가 편하지는 않다. 혼란스러운 우리의 의식과 닮아있다. 우리의 의식은 과거에서 현재로, 나의 삶과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삶으로 이어지며 이리로 저리로 옮겨 다닌다.
현대에도 개인과 사회의 여러 역할 속에 주어진 한 사람으로 자신의 영혼을 지켜내는 일이 쉽지 않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영혼을 지켜낸 댈러웨이 부인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살았다.
댈러웨이 부인처럼 살고 싶었지만 셉티머스처럼 죽음을 선택한 울프였지만 그녀는 클라리스처럼 혼란스럽고 모순된 세상에서 삶을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