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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 -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600억 자산가 이야기
박지형(크리스)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위암 4기 복막 전이 환자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10년의 시간 동안 죽을 확률이 아닌 살 확률에 모든 것은 배팅했다. 불가능한 기적을 만들어낸 그는 자신과 비슷한 이들에게 그리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 위해 글을 썼다.
많은 책에서 죽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러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더 잘 살기 위해서지 내일 죽음과 마주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선고받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100세 시대에 37세에 암 선고를 받을 거라고 상상인들 했겠는가. 그는 죽는다고 했을 때 슬프지 않고 짜증이 났다.
'그래.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자.
눈앞에 놓인 것만, 오직 그것만.'
살아서 사망보험금을 받고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했다. 남은 시간을 누워서 죽은 듯이 보내기 싫었던 그는 병원 휴게실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며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죽는 순간까지 무기력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워서 죽지 않으려고 뛰다가 죽으려고 했는데 뛰다 보니까 계속 살게 되었다. '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그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태어날 아이를 보고 싶어서, 아버지보다 먼저 죽을 수 없어서, 회사의 성장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서 살고 싶었다.
보통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5단계를 거쳐 다가올 죽음을 결국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오기와 독기 그리고 힘의 의지가 보통을 넘어섰다. 찾으면 찾을수록 죽음의 증거만 나왔지만 그는 자신이 희망의 증거가 되기로 다짐한다.
절망하지 않고 살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절망하기에 여러분은 아직 너무 이르다. _74p
긍정의 힘은 강철보다 단단했다. 인간의 의지의 힘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죽기 전까지 몸이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손톱을 창틀에 박고 서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 조르바. 그의 나이가 삼십 대였다면 그는 결코 죽음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사업을 하면서 긍정의 힘을 이용했었고 그 결과 얻어냈던 경험이 있었기에 삶 또한 끝나는 순간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고 해도 미쳐보기로 했다. 삶을 위한 투쟁과 의지로 0.1%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돈키호테처럼 자기 삶의 수호자가 되고자 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다음 계절을 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이었다.
"나는 암에 굴복당하지 않았던 한 사람으로서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그는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해 치료와 일에 균형을 위해 치열한 생존 싸움을 해야 했다.
독기와 힘의 의지로 병마와의 고통과 매일 싸운 그의 이야기는 암 등의 병마와 싸우는 이들과 가족에게는 희망을, 평범한 하루를 절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삶의 희망을 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치열하게 삶을 갈망한 자는 죽음과 삶을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감사한지 알게 되었다. 소중한 이들과의 값진 시간과 타인에 대한 이해 등 그렇게 그의 삶은 변해갔다. 잘 벌고 잘 쓰는 돈에 대한 철학은 효율적인 삶이 주는 풍요로움을 얻게 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 숨겨진 보물은 찾고자 하는 자에게 보인다. 작고 소박한 반짝이는 행복들이 이 삶에 가득하다. 우리는 살아 있다. 그리고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간절히 바래온 그 삶을.
그처럼 이 삶이 보너스라고 생각한다면 '오늘'은 더욱 특별해진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지독하게 투쟁한 한 사람에 의지는 태산처럼 컸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삶이라 해도 살아 있기에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투쟁은 죽음과의 투쟁에 비하면 힘이 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강한 삶의 의지가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