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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리커버)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평점 :
쥰세이의 직업은 복원사이다. 이 직업의 설정은 이 소설의 필연적인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복원일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유일한 직업이며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리는 직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복원하듯 아오이와의 잃어버린 8년이라는 기간을 복원하기 위해, 무너져버린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재생시키기 위해 그녀와 약속한 두오모를 기대와 불안 속에 오른다.
모든 것이 아오이와 반대인 메미, 몇 사람분의 쾌활함을 가지고 있는 메미의 가슴에 깃들인 어두운 그림자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메미에게서 아오이와 사귈 때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맹목적으로 쥰세이를 사랑했고 오직 그만이 그녀에게 빛을 줄 수 있었다.
나만이 기억하는 약속, 그 주술적인 올가미에 묶여있는 나 자신,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 줄 알면서도, 과거에 발이 묶인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도 과거가 기다리고 있다. 서른 살 생일날, 5월 25일...(94p)
봄이 오길 바라면서 바라지 않는 마음,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 오길 바라면서도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과거에 발이 묶인 쥰세이의 마음이었다.

이 책의 다른 묘미는 작품 속에 그림 작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그림들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감정을 전하여 주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메미와 함께 간 산마리코 수도원에서 안젤리코의 대표작 <수태고지>를 보며 재미없고 추악한 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힘들 가진 그림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그런 힘을 가진 것이라고 말하는것 같다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상>은 쥰세이에게 아오이였다. 다른 어떤 화가의 성모보다 상냥하고 풍성하며, 이상적인 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궁금해서 그림들을 찾아보았다.)

쥰세이는 현재의 메미에게도 과거 속의 아오이에게도 위로와 구원을 받았다. 스스로를 위선자라고 생각했다. 쥰세이는 선생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당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눈을 뜬다. 그리고 메미와 헤어지면서까지 모든것을 걸었다.
과거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를 이길 수는 없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일순간이며, 그것은 열정이 부딪쳐 일으키는 스파크 그 자체다.
사랑 속에 우리는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어 한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만나 연애를 한다는 것은 설렘과 기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대, 절망, 우울 등 도 함께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 속에서 존재했던 사랑이 현재가 되면 과거에서 현재로 복원시켜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과거에 애달팠던, 잊지 못했던 사랑이 다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 소설 속에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사랑에는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정의 시간이 공존한다. 냉정과 열정이 반복되며 그 사이에서 열정만을 현재에 남겨 지속해 갈 때 그 사랑이 미래로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변치 않는 사랑을 지속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사랑의 의미를 알아가는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